스웨덴의 나토 가입 사실상 확정, 격변하는 유럽의 안보 지형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자국 EU 가입 지원 조건으로 스웨덴 나토 가입 동의 러-우 전쟁에도 친러 행보 보이던 튀르키예, 경제회복 위해 서방 선택 나토의 러시아 압박 공고화, 신냉전 뚜렷해질 것이란 우려도
10일(현지 시각)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본 회의에 앞서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 동의안에 사실상 합의했다. 미국을 비롯한 나토 측 관계자들은 튀르키예의 결정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편 러시아와 인접한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으로 러시아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압박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중립국 ‘스웨덴’ 32번째 나토 가입 가시화
지난 5월 28일 튀르키예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 중 유일한 친(親)서방 국가이자 친러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간 튀르키예는 이 같은 외교적 입지를 활용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하 우-러 전쟁) 전쟁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지난해 7월에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UN, 튀르키예 간 4자 협상을 주도하며 오데사 항구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건을 합의했고, 올해 1월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를 중재해 양국 간 포로 교환도 성사시켰다.
아울러 서방 국가들과 달리 우-러 전쟁 발발 이후에도 러시아와의 무역을 강화해 전년 대비 무역 수출액 87%를 달성했다. 또 중립국을 표방하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전쟁 발발 이후 나토의 가입을 선언하자 스웨덴 내 튀르키예 비판 세력을 언급하며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 동의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에 서방국들은 튀르키예의 ‘이단아’적인 행보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튀르키예가 요구하는 F-16 전투기 수출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가 하면, 옌스 스톨텐베르그(Jens Stoltenberg) 나토 사무총장은 7월 11~12일 리투아니아에서 개최될 나토 정상회의 전까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결정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며 압박했다. 토니 블링컨(Tony Blinken) 미국 국무부 장관도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 성사를 촉구했다.
이처럼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는 지난 10일(현지 시각) 에르도안 대통령과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의 3자 회담 이후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완성했다’는 공식 성명이 발표되면서 급변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완성하는 것은 이 중요한 시기에 모든 나토 동맹의 안보에 도움이 되는 역사적인 발걸음”이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선택을 치켜세웠다. 외신에서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 등을 논의하는 11~12일 본 회의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결정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결이 한층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가 받을 압박이 강화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러에서 친서방으로, 실리외교 택한 에르도안 대통령
현지 보도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 동의의 조건으로 ‘튀르키예의 EU 가입 지원’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는 지난 1987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 신청 후 1999년 EU 후보국 지위를 얻었지만 EU 회원국인 키프로스와의 분쟁 및 자국 내 인권 침해 문제 등으로 인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튀르키예가 스웨덴에 EU 가입 지원을 조건으로 내건 이유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즈(NYT)는 11일(현지 시각) “에르도안 대통령의 움직임은 국내외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승부수로 보인다”며 “그동안 친러시아 행보를 보이던 에르도안이 결국 경제회복을 위한 실리를 택하며 푸틴을 저버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 통신 역시 “스웨덴의 나토 가입 찬성을 지렛대 삼아 튀르키예의 EU 가입을 구체화해 대규모 외국인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속내가 깔려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최근 리라화 가치가 90% 이상 하락하고, 소비자 물가는 80% 이상 치솟는 등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이번 튀르키예의 결정은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러시아와의 막대한 무역 관계와 중국, 북한과의 안보 문제로 인해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는 미국·일본과의 동맹 강화를 비롯해 2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사실상 반러시아·친서방국가의 행보를 걷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국을 모델로 전후복구를 다짐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미국과 유럽 내에서 우리 기업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할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각별한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나토가 완전히 확보한 발트해 제해권, 러시아 압박 강화
한편 스웨덴의 나토 가입, 튀르키예의 반러·친서방으로의 노선 선회로 인해 향후 유럽의 안보 지형 역시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스웨덴의 가입으로 나토는 러시아와 유럽 모두에 중요한 ‘해상 운송로’ 역할을 하는 발트해 제해권을 완전히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러시아 공군·해군의 역내 활동은 크게 제약될 것”이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G)도 나토가 러시아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핀란드, 스웨덴과 함께 대러시아 단결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뿐만 아니라 양국에 대해 선택적인 협력을 고수했던 튀르키예가 친서방국가로 돌아선 만큼 우-러 전쟁에서도 이전과 다른 위상의 중재자 역할이 부각될 가능성도 점쳐졌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EU를 위시한 미국의 방어 시스템에 들어간 튀르키예가 러시아에 자국 해협 이용을 허가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지중해-흑해 전략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합류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던 완충지대가 사라지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나토와 러시아가 직접적인 긴장 관계에 놓일 경우 유럽에서의 전쟁 위험이 고조돼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한 신냉전 체제가 보다 명확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