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인사 자율성 높이기 전에 ‘어공·늘공’ 포장지부터 뜯어 고쳐야
인사혁신처, 인사규제 폐지로 인재 영입 활성화한다 공직사회에 만연한 ‘어쩌다 공무원’과 ‘늘 공무원’ 문제부터 해결해야 ‘늘공’과 ‘어공’으로 포장된 사회, 기껏 유입한 인재도 놓칠 판
정부가 필요한 경우 공무원이 자율적으로 연봉을 책정할 수 있도록 연봉 상한 기준을 폐지한다. 근무 연차와 관계 없이 승진할 수 있도록 승진에 필요한 소요 최저연수도 대폭 단축한다. 제도 개선을 통해 민간 우수 인재를 유치하겠단 취지인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인재 유치를 생각하기 전에 ‘어공’이 공직사회를 점령한 현 세태를 먼저 타파하지 못하면 기껏 유치한 인재마저 다시금 놓치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인사처 “부처 인사 유연성 제고할 것”
인사혁신처는 1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제2차 부처 인사 유연성·자율성 제고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적시에 적임자를 선발·배치할 수 있도록 공무원 인사제도 및 운영 방식을 대폭 개선하겠단 것이다. 이번 계획은 ▲유연한 인사 구현(9건) ▲장관 인사권 범위 확대(12건) ▲인사 운영 효율성 제고(8건) ▲위원회 정비를 통한 적시인사 지원(3건) 등 4개 분야 총 32건의 과제로 구성됐다.
앞서 지난해 9월 인사처는 제1차 종합계획에 따라 각종 인사규제를 폐지·완화하고 부처 특성을 반영한 유연한 인사를 지원하는 총 47건의 과제를 발굴 및 개선한 바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사처는 급변하는 행정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 올해도 각 인사제도별로 개선과제를 추가로 발굴, 제2차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번 2차 종합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적시에 적임자를 선발·배치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와 규제가 대폭 간소화된다. 우선 우수한 역량을 지닌 인재라면 근무 연차와 관계 없이 승진할 수 있도록 승진 소요 최저연수를 대폭 단축한다. 현재 9급 공무원이 3급이 되기 위해선 최소한 16년을 근무해야 하는데, 이를 11년으로 단축하겠다는 게 인사처의 계획이다.
또 역량평가 등 채용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경력 채용 시 필기시험 과목을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한다. 민간 우수 인재가 각 부처에 적시 영입될 수 있도록 돕겠단 취지다. 부처별 자율과 책임에 따른 판단 및 인사 운영도 가능해진다. 먼저 각 부처에서 민간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필요한 경우 자율적으로 연봉을 책정할 수 있도록 상한 기준이 폐지된다. 다른 기관·지역 유사 직무 직위로의 전보를 위한 인사처 협의 절차도 폐지되고 각 부처가 필요한 경우 직무가 유사한 직위로의 전보 시 전보제한 기간을 완화해 적용할 수 있게 된다.
효율적 업무 수행을 위해 여건 조성도 이뤄진다. 인사처는 각 부처에서 응시부터 합격까지 채용 절차 전반을 신속·정확·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행정기관 공동활용 통합채용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로써 내년부터는 그간 수작업으로 진행되던 각 부처의 경력채용 절차가 시스템을 통해 진행될 전망이다.
이외에도 ▲출장·파견 시 업무 대행 공무원 지정 ▲신체검사 일반 건강검진 결과로 대체 ▲54개 비상설 위원회 대폭 정비 등도 함께 진행한다. 인사처는 이 같은 32개의 과제 이행을 위해 올해 말까지 ‘공무원임용령’, ‘공무원 인사 운영에 관한 특례규정’ 등 16개 법령과 10개 예규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김승호 인사처장은 “민첩하고 유연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각 부처의 자율적 판단과 책임 아래 알맞은 때,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쓸 수 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신속하고 원활한 인사 운영을 통해 ‘공정과 책임에 기반한 역량 있는 공직사회’가 구현되길 기대한다”고 힘줘 말했다.
“유연성 제고? 인재 영입에 도움 될까”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계획이 공직자의 자질을 갖춘 진정한 ‘인재’를 영입하는 데 도움이 될지 여부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입장이다. 애초 인재 영입에 목멜 게 아니라 공직사회에 만연한 ‘어공’ 문제부터 풀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공이란 ‘어쩌다 공무원’의 준말로, 각종 선거로 인해 승리를 거머쥐고 선출돼 온 공직자들을 의미한다. 어공의 반대말은 ‘늘공’이다. 늘공은 ‘늘 공무원’의 준말로,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돼 공무원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을 말한다.
어공은 말 그대로 ‘어쩌다’ 공무원이 된 것에 불과하기에 직무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짙다. 사실상 낙하산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당초 어공은 전문성 등을 통해 관료제의 타성에 젖은 공직을 혁신하기 위해 외부 인사를 기용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실제 어공들은 관료 사회의 콘크리트 같은 시스템과 복지부동을 해소하고 전문성을 발휘하며 시정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그 의미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최근엔 권력자의 힘을 배경 삼아 갑질을 일삼고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어공들이 늘고 있다.
전문성과 공직자로서의 자질 등에 대한 검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선거 과정에서의 공로나 권력자에 대한 충성심만을 보고 임용하니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 어공은 자신이 속한 기관을 우선에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민을 우선에 두지도 않는다. 그저 조직의 수장이나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뿐 국민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뿌리 깊게 박힌 공직사회의 문제는 덮어둔 채 인재만 영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분화된 어공·늘공, 진정한 문제는?
이들이 어쩌다 내놓은 정책들이 탁상정책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난 문재인 정권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 경제부처 장관 중 관료 출신은 각각 1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학계·정치인 출신이었다. 현실을 모르니 동화책 같은 비현실적인 탁상정책만 계속 찍어내게 되는 것이다. 어공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물론 늘공과 어공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어공만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있다. 어공 문제 해결에만 매몰돼서도 안 된다는 의미다. 현 공직사회는 상당히 경직돼 있다. 늘공 또한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어공의 ‘어정쩡한’ 위치를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어공을 낮게 보고 우월감을 가지며 어공이 날개를 펼치지 못하도록 막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감춰진 민낯이다. 능력과 실력이 늘공과 어공으로 나뉘어 포장된 사회, 막상 포장지를 뜯어 보면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별로 다를 게 없는 사람들. 기껏 유도해 낸 인재마저 놓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공직사회에 뿌리내린 ‘감자’ 덩어리들을 먼저 뽑아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