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규제 개선 위해 공모전 개최한 정부, 정작 국민·기업 참여 없어 ‘황당’

혁신 가로막는 ‘황당규제 공모전’ 통해 규제 개선 나선 국무조정실 정작 국민들은 모르는 ‘공모전’, 구리시만 2관왕 차지해 쓴소리도 기업 위한 규제 발굴·수정은 필요 없어, 혁신은 포지티브 규제 속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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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국무조정실에서 국민들의 일상 속 황당규제 개선을 위한 공모전을 개최해 지난 4일 우수작을 발표했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과제는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개선될 예정이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충분히 홍보되지 않아 공무원들만의 잔치로 전락해 버린 데다, 실효성 있는 개선안도 전무한 탓에 ‘보여주기식 이벤트’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국무조정실, ‘황당규제 공모전’ 수상작 10개 발표

국무조정실은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당규제 공모전 우수 제안과제 시상식’을 개최하고 수상작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 3월부터 한 달간 ‘일상 속 황당한 규제 개선방안 제안’을 통해 공모된 932건 중 전문가의 평가를 거친 10개 과제에 시민 5,290명의 온라인 투표를 거쳐 정해졌다. 국무조정실은 수상작을 순위대로 발표하며 “일상과 밀접하고 다수 국민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 중심으로 높은 호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안건은 ‘고령자 운전면허 대리반납, 주민센터에서도 허용’으로 뒤이어 ▲인터넷 포털 등에서 비밀번호 변경 의무 완화 ▲반려견 목줄 착용 의무 통일 ▲편의점에서 아동 급식카드 사용 시 봉투구매 허용 ▲청소년증 사진 규격 타 기준과 통일 ▲비현실적인 특수건강진단 검사 규정 현실화 ▲장애인등록 없이 아이돌봄서비스 장애아동 지원 혜택 부여 ▲통신판매업 신고증 온라인 재발급 허용 ▲기존주택 처분 전 농촌주택개량사업 융자 지원 허용 ▲외국인에 전입세대 확인서 발급 허용 등의 안건이 우수작으로 꼽혔다.

대상작 수상자는 “현행법상 고령자 운전면허의 대리인 반납은 경찰서에서만 가능한데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대다수 대리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제안 이유를 밝혔다. 국무조정실은 지자체 협의 후 오는 하반기부터 고령자 운전면허 대리반납 시 주민센터에서도 가능하도록 개선할 방침이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국민이 체감하는 규제혁신을 위해서는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정책에 직접 반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정부는 불편을 초래하는 규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개선하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한 소통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원만 참여한 ‘국민 위한’ 공모전

국무조정실은 공모전에 우수 제안과제로 선정되지 않았더라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은 개선작업을 거치겠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검정고시 응시원서 제출 사진 촬영 기한, 수능 응시원서와 동일하게 통일’, ‘주주총회 소집통지, 시대변화에 부합하도록 전자문서 방식 확산’ 등의 과제도 올 하반기 내에 개선을 추진할 전망이다.

다만 이번 공모전에서 구리시가 대상을 비롯해 2관왕을 차지하자 “국민들 의견 듣는 게 아니라 공무원들끼리 상금 나눠 먹기로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국무조정실은 보도자료를 통해 공모전의 목적이 ‘정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각지대 규제를 샅샅이 찾아내고,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지혜를 모으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을 대상으로 충분한 홍보가 이뤄지지 않아 공모전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데 실패했다. 이에 한 시민은 “공무원과 일부 시민단체만 참여하는 이벤트성 공모전을 통해 어떻게 국민의 일상 속 규제를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느냐”며 “말만 혁신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국민을 위한 혁신’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무조정실 주관 황당규제 공모전에서 구리시가 대상, 장려상을 수상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구리시

기업에 혁신 주문하지만, 규제 ‘혁신’은 절차 복잡하다고 미뤄

한편 국무조정실은 5일 경제 회복을 위해 기업투자를 저해하는 킬러규제 개선을 목적으로 범정부적 ‘킬러규제 혁신 TF’도 조성했다. 이는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제18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민간투자가 활성화되도록 적극적인 규제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앞으로 킬러규제 혁신 TF는 매주 회의를 거쳐 입지・환경・노동 등 규제로 인해 투자할 수 없는 사례, 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로 투자할 수 없는 사례 등을 중점적으로 발굴해 규제혁신 과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벤처기업 관계자들은 보여주기식 개선이 아니라 기업을 상대로 실효성 있는 규제 개선이 더욱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정부의 황당규제로 스타트업이 피해를 본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7년 온라인으로 육류 구매를 중개하는 스타트업 ‘미트박스’의 사례가 있다. 당시 미트박스는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사무실에 육류 보관용 냉장 시설을 갖추라는 정부의 명령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미트박스 측은 단순 육류 ‘중개업’이기 때문에 사무실에 고기를 보관하지 않아 냉장 시설이 필요 없다고 답변했으나, 정부는 법에 예외사항이 없다는 이유로 냉장 시설 구비를 강제해 결국 미트박스는 거대한 육류 보관용 냉장시설을 구비할 수밖에 없었다.

수제맥주 제조기기 전문업체 ‘인더케그’ 사례도 비슷하다. 지난 2021년 인더케그는 물에 캡슐만 터뜨리면 맥주가 만들어지는 가정용 스마트 맥주 기기를 개발해 국내외로 호평받았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판매조차 할 수 없었다. 가정에서 맥주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현행 주세법 제조면허 규정에 따라 약 1억원 이상의 발효 전후용 5,000L 이상의 저장 설비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인더케그 측은 발효와 숙성 과정이 없어 저장설비가 필요치 않다고 반박했지만, 정부는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여전히 많은 기업은 혁신을 가로막는 정부의 꽉 막히고 황당한 규제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 대표는 “이제는 개선할 규제를 찾는 방식이 아니라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규제가 없는 체계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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