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개혁] 미 대법원의 대학 학자금 대출 상환 유예 취소와 한국 대학 교육

미국 연방 대법원, 학자금 대출 탕감 기각, 대출 기관의 재산권 보호해야 미국 내에 한국의 정부 지원형 모델에 대한 관심 커져 국내에서는 정부 지원 의존형 대신 미국식 시스템으로 가야한다는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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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대학 학자금 대출 상환 유예 및 대출 취소 정책이 결국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미화 10,000달러에서 20,000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을 실질적으로 감면해 주는 정책이었으나 미국 대법원은 대출을 제공한 은행 등의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바이든 행정부의 요청을 기각했다. 미국 곳곳에서는 거액의 학자금 대출을 받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일각에서는 한국, 일본과 같이 정부가 상당액의 정책 지원을 통해 학비를 낮추는 모델로 대학 교육 시스템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 가장 성공한 교육 시스템과 이면의 어두운 진실

교육계 전문가들은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사립 교육 기관의 폭넓은 재량을 인정해 준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을 갖춘 대학 교육 기관들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한다. 한국에서와 같이 정부 지원금에 의존했었다면 학생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아니라 정책 결정자들이 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원금을 받기 바빴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국내 대학들은 교육부 감사에서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되면 사실상 학교가 폐교 수순을 밟고 있다고 인식한다. 교육부 감사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전직 교육부 공무원들을 교직원으로 채용하는 사례도 잦다. 반값 등록금으로 인해 학생들 등록금만으로는 재정을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교육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미국 대학들은 등록금이 국내 사립대학 대비 최대 5배 이상에 달하는 만큼,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도 한국 대학보다 훨씬 더 고액 연봉을 약속하고 우수한 교수진을 채용할 수 있다. 교수들의 연구 역량과 더불어 강의 역량 평가를 통해 연봉이 매년 책정되는 방식이라 교수진들이 연구 및 외부 프로젝트에만 몰두하는 경향도 낮다. 또한 자금력을 통해 우수 인력을 계속 뽑을 수 있어 교수진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다. 경쟁을 통한 선순한 구조가 학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경쟁 대학들과도 이뤄지면서 주 단위, 혹은 국가 단위의 대학 역량 경쟁이 펼쳐진다.

이는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성공을 거뒀으나,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학비 부담은 무겁다. 연간 4만 달러(약 5,200만원)에서 7만 달러(약 9,100만원)에 달하는 학비를 부담해야 하고, 4년간 학부 과정을 마치고 나면 학생들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20만 달러(약 2억6천만원) 이상의 빚을 지는 경우도 있다. 급여가 높은 직장을 찾지 못한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 상환에 20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평생 짊어지고 가는 빚이 되는 것이다.

한국, 실패한 교육 시스템과 이면의 어두운 진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대학교 대부분이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덕분에 사립대학의 경우에도 한 학기 등록금이 미국 대비 매우 적다. 지난 2020년 국내 대학 평균 등록금은 사립대학 747만원, 국공립대학 424만원으로 알려졌다. 법학전문대학원, 의과대학 등의 예외를 제외하면 학부 4년간 학자금 대출을 받더라도 미국 대학생들의 1년 학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신 대학 재정이 어려운 탓에 우수 교수진을 채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해외에서 수요가 있는 전공의 우수 교수진들은 국내 대학교수로 귀국했다가도 다시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빠르게 느는 추세다. 익명을 요구한 호주의 한 대학교수는 국내 교수직을 알아보던 당시 연봉 6천만원의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호주를 선택했다고 답했다. 해당 교수가 선택한 대학은 10만 호주 달러(약 8,700만원)의 연봉에 더해 연구 프로젝트 지원 등의 추가 자금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쟁력 있는 교육 시스템에 정부가 지원에 나서면 학생들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경쟁력 있는 인재를 놓치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대학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스위스AI대학의 이경환 교수는 한국 대학의 교수직을 ‘명예직’으로 분류하고, 금전적인 이득을 대학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대외 프로젝트 등의 다른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정부 지원의 맹점, ‘네 자식의 교육을 왜 내가 지원하냐?’

미국 사회에서는 이번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이 자칫 ‘남의 자식 학비를 내 세금으로 지원하는 꼴’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에 경계하는 눈치다. 동아시아 국가들과 유럽 국가들에서 세금으로 대학을 지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들에게 연방 정부 기금을 활용한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은 반자본주의적인 정책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교육 개혁을 주장하는 집단에서 유사한 목소리가 나온다. 송도국제도시에 유치된 5개 영미권 대학에 대해 최대 연간 10억원의 교육 지원이 나가는 것이 알려지자, 송도 시민들은 “내 자식을 보내는 대학도 아닌데 왜 내 세금을 쓰느냐”는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2020년 7월에는 코로나-19로 대학들이 등록금을 반환하는 부분을 정부의 추경 지원으로 처리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청원은 “국민 혈세로 도와주는 건 배부를 사람은 계속 배불러야 되고 시민들은 착취당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추경”이라며 “세금은 대부분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곳에 쓰여야 올바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20년 10월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소위 ‘SKY대학’에 지원되는 정부 예산이 전체 고등교육재정의 1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생 1명에 세금 2,900만원인 셈이다. 교육 예산 독점에 대해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학 서열화를 고착시키는 행태라며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이 특정 대학에 집중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내 모 대학교수는 “이미 대학 교육이 학생들의 역량을 끌어올려 주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며 “개혁 의지가 관건인데, 지금처럼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대학 재정 구조상 정부가 적합한 개혁 모델을 갖고 오지 않는 이상 대학 개혁은 어렵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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