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 폭행 사례 ‘심각’한데, 국회 정책 논의는 ‘지지부진’

119구급대원 폭행 사례 점차 ↑, 처벌도 ‘미미’한 수준 관련 법안 제출됐지만, 결국 국회 통과 못 해 무방비로 당하는 구급대원들, 폭행 방지 대책마저 ‘무의미’

160X600_GIAI_AIDSNote
경기도소방 특별사법경찰의 활동 모습/사진=경기도 소방재난본부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특별사법경찰(이하 경기소방 특사경)이 구급대원 폭행과 악성 민원 등 소방 활동에 방해가 되는 행위에 대해 선처 없는 수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급대원 폭행 사례는 오히려 늘고 있다. 제한된 법률 범위 내에서 ‘선처 없는 수사’를 이어간다 한들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경각심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구급대원 수난사, 특사경 “수사에 선처 없을 것”

경기소방 특사경은 올해 1월부터 6월 말까지 도내에서 발생한 구급대원 폭행을 비롯한 소방 활동 방해행위 33건을 수사해 32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3년간 소방 활동 방해행위 193건을 모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 결과 실형 37건, 벌금 78건이 확정됐다. 나머지 78건은 현재 법원 판결 진행 중이다.

경기 소방대원의 수난사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앞서 지난 1월 성남의 한 도로에서 깨진 병으로 주변을 위협하다 손을 다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은 A씨에게 얼굴을 폭행 당했다. 그런가 하면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폭언을 하며 병원 이송을 거부한 B씨는 소방기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돼 검찰에 송치됐다. B씨는 해당 소방서에 무려 100여 차례 전화를 걸어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등 구급 업무를 방해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상반기 접수된 소방 활동 방해사건 33건 가운데 주취자로 인한 사건이 22건(66.7%)에 달했다. 3건 중 2건은 주취자에 의한 사건인 셈이다. 주취 폭행 가해자들은 경기소방 특사경이 수사를 시작하면 폭행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발뺌하곤 하나, 지난해 1월부터 구급이나 구조활동 등 소방 활동 방해에 대한 ‘형법상 감경 규정에 관한 특례’ 시행에 따라 음주나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폭행 등 소방활동 방해를 저질러도 감경받을 수 없다.

끊이지 않는 구급대원 폭행

구급대원 폭행 사례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어난 수준이다. 구급대원 폭행 사례는 지난 2020년 196건에서 2021년 248건으로 늘었다. 처벌도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2020년부터 2022년 6월까지 2년여 동안 발생한 구급대원 폭행 597건 가운데 진행 중인 사건을 빼면 31%는 벌금형에 그쳤다. 혐의없음이나 증거 불충분으로 처리된 경우도 21%에 달했고, 징역형은 단 4%, 29건뿐이었다.

문제는 처벌 수준만이 아니다. 폭행을 막기 위해 강화된 대책이 나왔음에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임호선 의원이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구급차 폭행 경고·신고 장치 설치율은 전국적으로 53.7%에 그쳤다. 구급대원 폭행을 막으려고 내놓은 장치지만 정작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운영하는 구급차 수나 출동 건수가 가장 많은 도시 가운데 하나인 서울의 설치율도 37.4%에 불과했다.

지난 2018년 국회에 취객 등이 구조 구급 중인 119구급대원을 폭행할 경우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경찰-구급대원 동시출동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119구조 구급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긴 했으나, 결국 국회를 통과하진 못했다. 국회의 미지근한 대응에 ‘매 맞는’ 구급대원들이 더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구급대 폭행 STOP’ 피켓을 들고 있는 소방대원의 모습/사진=김천소방서

서울 외 지역서도 폭행 발생 ‘다발’

이같은 문제는 비단 서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주도 구급대원 폭행 피해 현황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 폭행 피해가 34건에 이르고, 매년 평균 6명의 구급대원이 폭행 피해를 입고 있다. 가해자들은 95%가 주취 상태였고 벌금과 징역형에 처한 경우는 30%에 불과했다. 현재 서귀포소방서는 구급대원 폭행 피해 예방 및 대응을 위해 웨어러블 캠 등의 보급을 확대하고 사례를 바탕으로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등구급대원 폭행 피해 관련 대책을 꾸준히 마련하고 있으나, 역량이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폭행이 일어나는 만큼 구급대원들은 방어할 여력도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치아 손상이나 안면부 열상이 생기기도 하며, 여성 구급대원의 경우 남성 주취자로부터 성적 발언이나 성기 노출 등 성희롱을 당해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도 많다. 우리 사회에서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건 다른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구급대원 폭행에 대한 보다 신속한 대책 마련을 이뤄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