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 보호와 맞바꾼 임대인 권리, 계약갱신청구권은 어쩌다 ‘해지권’으로 변모했나

‘갱신권’과 ‘해지권’ 사이, 임차인의 ‘정당한 권리’? 눈물 흘리는 임대인들, 임차인의 ‘권리 남용’ 언제까지 임차인 악용 가능성만 높은 법안, 시급한 개정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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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freepik

세입자가 최장 4년을 살 수 있도록 하겠단 취지로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 제도가 역전세(전세 시세가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현상)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복병으로 등장했다. 세입자가 언제든 퇴거할 수 있도록 규정한 독소조항 때문이다. 임차인의 악용 가능성이 높은 반면 임대인의 권리는 누락된 법안인 만큼 시급한 법안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

임대차 해지 독소조항, 하락장 가운데 ‘말썽’

지난 2020년 7월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은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통보하는 경우 계약 기간을 2년 늘릴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청구권 도입 당시까지만 해도 세간에선 보증금 상승률이 5%로 제한돼(전월세상한제) 전세 상승장에서 임차인에게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표출됐다. 그러나 여기에 임대차 해지 조항이 독소조항으로 들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상승장에 있어선 존재감이 없던 조항이 ‘언제든 자유롭게 퇴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잇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임대차보호법 6조의 2에 따르면 임대차 계약이 끝난 뒤 서로 아무런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 계약이 연장된 묵시적 갱신의 경우 세입자가 언제든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다. 특히 계약갱신청구권을 법에 신설하면서 국회는 해지와 관련해 묵시적 갱신 조항을 준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세입자는 2년을 전부 채우지 않고도 중간에 언제든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고, 집주인은 3개월 안에 전세금을 내줘야 한다. 반면 신규로 전세 계약을 체결하거나 서로 합의해 전세 계약을 갱신한 경우엔 2년이 만료되기 전 세입자의 일방적인 중도 해지가 불가능하다.

갱신권, ‘신축 입주’ 위한 ‘수단’으로 변질

이렇다 보니 신축 입주 등이 많은 지역에선 일단 전세 계약을 2년 연장해 놓고 주변에 더 싼 전셋집이 나오면 해지권을 활용해 갈아타는 세입자가 적지 않은 형국이다. 이와 관련해 양천구 목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갱신권 사용 여부는 온전히 세입자 권한이기 때문에 집주인이 갱신권 미사용을 강요할 수 없다”며 “다만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해 일찌감치 퇴거를 통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솔루션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은 총 12만8,821건으로 집계됐는데, 이 가운데 신청구권을 사용한 계약은 3만1,968건으로 전체의 약 24.8%였다. 전세가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전월세 계약 4건 중 1건은 갱신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세입자들의 갑작스러운 퇴거 통보에도 집주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존 전세가격보다 신규 전세가가 낮은 지역에선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계약 해지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보증금을 내줘야 하고 중개료 등 수반된 비용을 청구할 수도 없다. 만일 임차인이 이사를 나갔는데도 보증금을 내주지 못하면 향후 지연이자가 붙거나 법적 싸움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임차인 보호 위한 법안이라지만

당초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임대차보호법 자체가 상대적 약자인 임차인을 강하게 보호하기 위한 명분을 담고 있기에 임대인 입장에서 재산권을 침해받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임대인도 임차인과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임대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도 분명히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임대차보호법이 임차인에게 꼭 유리하지만도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대법원에선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전세계약을 연장했다고 하더라도 임대인이 집을 파는 경우 새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판례가 나왔다. ‘임대인이 실거주하려는 경우에는 임차인이 정해진 기간 안에 계약갱신을 요구해도 거절할 수 있다’는 임대인의 갱신거절권을 근거로 한 것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전셋값이 급등하던 시기엔 임차인을 보호하는 효과를 십분 발휘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하락장에선 큰 의미가 없다. 제아무리 임차인 보호를 위한 법이라 해도, 임차인 마음대로 계약을 해지하는 만큼 임대인의 지위가 불안정해지는 건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 결국 임차인의 악용 가능성이 높은 반면 임대인의 권리는 누락돼 있는 셈이다. 언더도그마에 빠져 임차인의 권리 남용을 방관해선 안 된다. 정부·국회 차원의 시급한 개선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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