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헌법불합치 조항 효력 상실, 길거리 수놓은 ‘있는 자들’의 막말 현수막
헌법재판소, 지난해 7월 「공직선거법」 일부 조항 위헌·불합치 판결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내놓은 정개특위, 여야 공방 끝 ‘무산’ 지난 1일부터 불합치 조항 효력 상실, ‘막말 현수막’ 등 정치권 폐해 가시화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 선거운동 등에 관한 규정 일부에 대해 단순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가운데, 다가오는 제22대 총선거를 고려해 신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입법처)는 7일 발간한 ‘선거운동 규제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 단순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 조항을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헌재의 불합치 결정 이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문제 개선을 위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의결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심사 단계에서 여야 간 의견을 좁히지 못한 끝에 개정이 무산됐다. 지난 1일부터 헌법불합치 조항들의 법적 효력이 상실되며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2024년 4월 총선 전에는 법률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헌법재판소의 선거운동 규제 ‘위헌’ 판단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에 공직선거법 선거운동 등에 관한 규정 제68조 제2항(어깨띠 등 소품), 제90조 제1항(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 제93조 제1항(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제103조 제3항(각종 집회 등의 제한)의 일부에 대해 단순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적절한 규제를 통해 선거에서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지나친 경쟁 과열과 금권선거를 방지해 공정한 선거를 치르는 데 목적을 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필요 이상으로 포괄적인 선거운동을 금지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는 점 △비용, 종류, 방법 등 다른 제한 수단을 통해 기회균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중대하다는 점을 지적,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제103조 제3항에 대해서는 단순 위헌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해당 조항은 바로 기효력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누구든지 선거 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으로 향우회 등 법에서 정한 모임을 제외한 집회 및 모임을 개최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세 개 조항에 대해서는 정치적 표현의 허용 범위를 정하기 위한 개선 입법 시한을 2023년 7월 31일까지로 정하고, 개선 입법 시한까지 법률의 효력이 유지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여야 공방 속에 결국 무산된 정개특위 대안
이에 정개특위는 지난달 13일 관련 개정안들을 반영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의결했다. 해당 대안은 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 기간(제90조 제1항),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제93조 제1항) 등의 금지 기간을 180일에서 120일로 단축했다. 아울러 본인 부담으로 제작하거나 구입한 소품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허용하되 규격은 선거관리위원회 규칙으로 정하고(제68조 제2항),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그 밖의 집회나 모임에 대해 참가 인원이 30명을 초과할 때만 한정적으로 금지하도록(제103조 제3항) 했다.
하지만 의결 이후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다 폭넓게 확대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제90조와 제93조의 경우 금지 기간만 줄였을 뿐, 선거운동 방법에 있어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3조 제3항에 대해서는 폭넓은 정치적 표현보다 인원수 제한으로 문제를 축소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개특위 대안에 관한 법사위 심사단계에서도 유사한 지적이 제기됐다.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된 것은 제103조의 제3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집회 규제’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여야는 해당 조항을 놓고 끝까지 서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개정안 처리는 무산됐다.
헌법불합치 조항들의 법적 효력 상실, 정치권 혼란 가중
개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 채 개선 입법 시한이 지났고, 지난 1일부터 헌법불합치 조항들의 법적 효력이 상실됐다. 이에 정치권의 혼란 역시 점차 가시화하는 추세다. 특히 정치 현수막 및 벽보 등에 대한 금지 조항을 담은 제90조 제1항이 효력을 잃은 가운데,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옥외광고물법」의 영향이 겹치며 ‘정치 현수막’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통상 정당 활동으로서 보장되는 정책 등을 표시하는 정당 현수막에 대한 신고 등 규제를 전면 배제해 사실상 ‘사전 선거운동’을 무제한 허용하고 있다. 정당 정책, 정치 현안에 관한 현수막이 신고나 허가, 수량과 규격에 대한 규제 등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타 정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현수막이 난무하고 있음에도, 지자체는 가이드라인과 대통령령에 명시된 바를 지키지 않는 현수막만을 철거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옥외광고물법이 정당 소속 기존 유력 정치인들에게 무분별한 사전 선거운동을 허용해 정치에 뜻이 있는 청년 정치인을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수막이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 알리기’ 수단으로 악용돼 무소속 후보자 및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이 아닌 당원들, 특히 정치에 뜻이 있는 청년 및 정치 신인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오는 2024년 4월 제22대 총선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관련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우리나라는 공직선거법 일부 조항의 효력이 상실된 상태로 선거를 치르게 된다. 단순 ‘정치 현수막 난립’을 넘은 혼란 속에서 선거운동 및 선거가 진행될 위험이 있는 셈이다. 원활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서라도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