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개인정보 침해 최소화하겠단 정부, 막상 업계는 “결국 ‘주먹구구’식”
‘울상’ 짓는 AI 업계, 개인정보위의 불명확한 규제 언제까지 가이드라인 투명성 제고하겠다지만, “그래도 불안해” 글로벌 혁신 특구 지정했지만, ‘한계치’ 명확하다
정부가 인공지능(AI)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은 최소화하면서 AI 혁신 생태계 발전에 꼭 필요한 데이터는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방향을 수립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오는 10월 중 AI와 관련된 사항을 전담하는 원스톱 창구 ‘(가칭) AI 프라이버시팀’을 신설하고 올해 안에 ‘(가칭) 사전 적정성 검토제’도 도입할 계획이다. 다만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 유지되는 이상 업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개인정보위, ‘AI 개인정보 활용 정책방향’ 발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공지능 시대 안전한 개인정보 활용 정책방향’을 발표하고 AI 단계별 개인정보 처리 원칙 제시 및 신속한 법령 해석과 컨설팅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책은 AI 환경에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을 어떻게 해석·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준칙과 함께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향후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규율체계를 공동 설계해 나가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지난해 11월 챗GPT 등장 이후 의료, 교육,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활용한 서비스가 고도화됨에 따라 AI가 가져오는 편익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지만, 한편으론 정보 주체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데이터가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우려가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주먹구구식’으로 행해지던 개인정보위의 행정 처리 방식 때문에 업계에서도 골치 아픈 일이 많았다. 이에 개인정보위는 합리적인 정책 방향성 정리를 통해 AI 업계 발전 및 개인정보 보호 등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계획이다.
‘급성장’ 이룬 AI 산업, 정부도 보조 맞춘다
국내 AI 산업은 매출 규모가 2020년 1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4조원 가까이 증가할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 쓰임새 또한 국민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전문 영역에까지 다양해졌다. 해마다 AI 산업에 뛰어드는 기업들도 느는 추세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데 있어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계 법령의 저촉 여부를 둘러싸고 불확실성이 증대되며 업계와 소비자 사이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 형국이다.
이에 개인정보위는 변화 속도가 빠르고 데이터 활용 범위, 방식이 고도로 복잡한 AI의 특성을 고려해 규정 중심이 아닌 원칙(principle) 중심의 규율 체계를 정립해 나가기로 했다. 개인정보위는 우선 먼저 오는 10월에 AI 모델·서비스를 개발·제공하는 사업자와 소통창구를 마련하는 ‘(가칭) AI 프라이버시팀’을 신설할 계획이다. AI 프라이버시팀은 사안별로 개인정보 처리의 적법성, 안전성 등에 대한 법령 해석을 지원하거나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컨설팅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행정적 불확실성을 대폭 축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올해 중 ‘(가칭) 사전 적정성 검토제’도 도입한다. 사업자 요청 시 비즈니스 환경을 분석해 개인정보 보호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적용 방안을 마련하겠단 취지가 담겼다. 사업자의 이행결과에 대해 개인정보위가 적정하다고 판단한 사안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게 개인정보위의 입장이다. 특히 사업자가 신청서를 제출한 시점부터 적용방안 통보까지 원칙적으로 60일 이내에 이뤄지도록 해 민간에서 느끼는 법적 리스크를 신속하고 확실하게 줄여 나갈 방침이다.
개인정보 처리 기준도 구체화한다. 그동안엔 AI 개발·서비스를 위해 데이터를 수집·이용할 때 개인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별도의 기준이 없어 불편함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불확실성을 대폭 개선하겠단 계획이다. 개인정보위는 먼저 AI 모델·서비스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개인정보 보호 중심 설계 원칙을 반영해 모델링·학습·운영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안내할 예정이다.
데이터 수집 단계에선 개인정보의 처리 원칙을 일반 개인정보, 공개된 정보, 영상정보, 생체인식정보로 나눠 제시토록 했다.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으로 오는 9월 15일부터 시행 예정인 이동형 영상기기 규정과 관련해 드론·자율주행차 등을 통한 영상의 촬영, 원격관제, 저장, AI 학습 등이 가능한 경우도 안내했다. AI 학습 단계에서는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 별도의 동의 없이 AI 연구개발이 가능함을 명확히 했다. 이외에도 △분야별 가이드라인 마련 △국제적 공조체계 강화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정책 방향성을 설정하겠다고 개인정보위는 밝혔다.
“포지티브 규제 유지되는 한 바뀌는 건 없을 것”
다만 일각에선 개인정보위의 세부 규정이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한 현실적인 한계치는 여전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그간 정부가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난 5월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권역별로 10개의 ‘글로벌 혁신특구’를 지정해 네거티브 규제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네거티브 규제 특구를 지정해 신기술을 활용한 실증을 보다 구체적으로 지원하겠단 취지인데, 결국 특구로 지정된 특정 지역에서만 네거티브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부는 정확히 어느 분야에 대해 시범 사업을 허용할지 그 대상도 정해놓지 않았다. 대상이 정해지지 않으니 거기에 적용할 적당한 네거티브 기준 목록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 혁신특구에 들어갈 대상을 정부가 결정한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됐다. 정부는 해외 시장에서 성과 낼 수 있는 분야부터 점진적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혔으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신기술이 등장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경직된 정책으로 인해 ‘네거티브 규제 전면 도입’이란 정책의 근본조차 무너져 내렸단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경제 비상 상황에 놓여 있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날로 떨어져만 가고, 무역수지는 수개월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AI 업계마저 규제 아래 무너진다면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기술의 무덤’이 될지 모른다. 성장 동력을 ‘Turn on’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 차원의 구체적이고도 합리적인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