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자율등급제 시행, 연령인증도 안 하는데 무슨 소용?
지난해 도입된 ‘자체등급분류제도’ 연령인증 없이 결제수단 입력 가능한 왓챠와 웨이브 OTT 시장 급성장에 유해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
만 14세 미만의 아동이 부모의 승인 없이도 OTT 플랫폼 회원가입 및 결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왓챠 △웨이브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등 OTT 플랫폼의 회원가입 프로세스를 조사한 결과, 일부 플랫폼은 ’14세 이상’ 옵션을 선택하기만 하면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가입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OTT 자율등급제 도입됐지만
윤석열 정부는 OTT 정책 핵심 국정과제이자 문화체육관광부 5대 규제개선 과제 중 최우선 과제로 OTT 자체등급분류제(자율등급제)를 추진했다. 이에 국내 OTT 업체들은 지난 4월부터 제한관람가 등급을 제외하고는 자체적으로 등급을 분류해 원하는 시기에 온라인 비디오물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로 지정된 후에는 자체 분류한 온라인비디오물의 등급과 내용 정보 등을 표시하고 이를 영상물등급위원회에 통보하는 등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영상물등급위는 분류된 온라인비디오물이 제한관람가 또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경우 직권으로 등급 분류 결정을 하거나 등급 분류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
OTT 자율등급제 도입은 업계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그간 국내 OTT들은 10일가량 소요되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받게 되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적시에 공급하기 어렵다고 토로해 왔다. 그러나 자율등급제가 도입됐음에도 대다수 OTT 들은 사용자 연령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자율등급제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홍균 국민대학교 교수는 지난 5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5G 시대 콘텐츠 공급 서비스 개선 방안’에 대한 토론에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현행 제도를 개정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 교수는 특히 ‘영화진흥법’,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등 오래된 법률에서 비롯된 기존 등급분류 체계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유통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기존 법률은 온라인 콘텐츠의 급증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관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영상물을 접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각종 디지털 기기를 통해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새로운 환경에 맞춘 영상물 등급분류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14세 미만 인증 ‘실종’
각 사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왓챠와 웨이브에서는 ’14세 이상’ 항목에 체크하면 회원가입뿐만 아니라 결제 수단 등록도 가능하다. 놀랍게도 미성년자의 부정 등록을 제한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단, 미성년자가 결제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법정대리인이 결제 절차를 취소할 수 있다. 웨이브에서는 본인인증을 할 경우 할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본인인증을 유도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넷플릭스나 디즈니+는 가입 과정에서 성인 인증을 의무화하는 등 보다 강력한 인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는 결제 수단이 인증된 성인만 구독 구매를 허용한다. 디즈니+도 사용자가 ‘19세 이상’임이 확인돼야만 결제할 수 있다. 티빙 역시 사용자가 휴대폰 또는 아이핀으로 본인 인증을 거쳐야 결제를 완료할 수 있다. 다만 미성년자가 성인의 생년월일을 입력해 확인 절차를 우회할 수도 있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방통위의 가이드라인과 허점
지난해 7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만 14세에서 18세 사이의 개인은 회원가입 과정에서 생년월일을 입력하거나 ‘만 14세 이상’ 항목에 체크해야 한다.
방통위는 발표 당시 “영화관과 같은 공공장소에서는 아동이 부적절한 콘텐츠에 노출되는 것을 통제할 수 있지만, OTT 콘텐츠가 주로 소비되는 사적 공간에서의 접근을 통제하는 것은 법적 집행의 한계로 인해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OTT 업체의 자체 등급 분류와 같은 제도 시행에 발맞춰 부적절한 콘텐츠에 대한 아동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기업과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연령 확인 방법은 허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강제성 없이 사용자의 양심에 믿을 뿐인 현행 시스템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만 14세 미만의 무단 사용을 막기 위해 추가적인 인증 절차나 사용자 간 모니터링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