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성사된 북러 정상회담, 양국 간 무기거래·군사협력 가시화에 국제사회 우려↑
4년 만에 열린 북러 정상회담, 뒤바뀐 러시아와 북한의 위상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난 두 정상, 러시아서 첨단우주기술 필요한 북한 의식했나 30년간의 미-북 관계 정상화를 포기한 북한, 러·중과 실질적 관계 맺어 입지 강화할 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13일 러시아 극동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개최됐다. 국제사회는 지난 2019년 북러 정상회담 이후 4년 만에 성사된 정상회담 소식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해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제공받을 수 있단 점과 양국 간 군사협력이 강화될 수 있단 점이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북러 정상회담, 무기 거래 가능성 높아
13일 조선중앙통신은 러시아 공식 방문을 위해 김 위원장이 탄 전용 열차가 전날 오전 6시(현지 시각) 하산역 구내로 들어섰다고 보도했다.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 올레크 코제먀코 연해주 주지사 등 러시아 중앙·지방 간부들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위치한 하산역에서 김 위원장을 맞이했다. 러시아 육·해·공군 명예위병대와 군악대도 김 위원장 환영 행사에 동참했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 땅을 밟은 것은 지난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김 위원장은 “4년 만에 또 러시아를 방문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해외 방문지로 러시아를 택한 점에 대해 “조로(북러)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우리 당과 정부의 입장을 보여주는 뚜렷한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 소유즈-2 우주 로켓 발사시설 등을 둘러본 뒤 확대 정상회담에 이어 단독정상회담까지 진행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회담 장소를 고려할 때 러시아에서 북한이 원하는 군사 정찰위성 기술을 포함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핵 추진 잠수함 기술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이어 이번 김 위원장의 수행원이 군부 핵심 인원들로 구성된 점을 미뤄 볼 때 “무기 거래, 기술 이전과 관련된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다만 12일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에 따르면 두 정상은 회담 이후 공동선언문을 포함한 어떤 형태의 문서에도 서명하지 않는다고 밝혀 정상회담과 관련된 공식 문서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국제사회가 무기 거래를 우려하는 점에 대해 “두 주권 국가의 문제가 제3국의 우려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며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지적이나 고함에도 우리는 우리와 이웃(북한)에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관계를 건설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제유 공급량 늘리며 북한 환심 산 러시아
한편 국제사회는 러시아가 지난 7월 북한에 정제유 수출 규모를 확대한 점을 두고 무기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에 5월에 2,593배럴, 6월에는 2,305배럴의 정제유를 수출했다. 하지만 7월에는 1만933배럴로 전월 대비 5배가량 증가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대북 정제유 수출량은 총 7만9,904배럴이다.
7월은 북한의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체결일, 7월27일) 열병식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참석하면서 북러 간 무기 거래설이 무성했던 때다. 당시 김 위원장은 쇼이구 장관에게 북한의 핵·미사일 등 각종 무기를 소개하고 잇따라 회담하는 등 친밀감을 과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무기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북한에서 재래식 포탄, 대전차 유도 미사일 등을 제공받고자 정제유 공급량을 크게 늘린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것이다.
일각에선 페스코프 대변인이 12일 “필요하다면 북한 동무들과 대북 유엔 제재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러시아가 원활한 무기 수급을 위해 대북 유엔 제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단 우려를 제기한다. 북한과의 군사·경제교류를 위해 제재를 무력화할 수 있단 얘기다. 이에 국내 한 외교 전문가는 “러시아가 대북 제재 결정에 핵심적으로 관여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만큼 제재 완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북러 간 무기거래, 러-우 전쟁 더해 미-북 관계까지 영향 줄 수도
일부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북한이 지난 30년간 추진해 오던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포기하고, 러시아와 실질적인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제스처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12일(현지 시각) 로버트 L. 칼린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외교 전문지인 포린폴리시에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글을 기고했다. 이들은 북한이 1990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끈질기게 추구한 나라임을 환기하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보다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 재조정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지난해 3월에는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해 2018년 맺었던 북·미 정상 간 비핵화 합의를 깨트린 바 있다.
다른 전문가들 역시 과거에는 북러 관계가 국제사회에 외교적 위용 과시 목적이 컸지만, 이번 방문은 실질적인 무기 거래가 목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은 1953년 이후 전쟁을 치르지 않아 탄약이 남는 상태”라며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는 대가로 위성과 핵잠수함 등의 첨단기술 및 식량 제공을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상호 이익이 되는 합의가 이뤄진다면 양국 관계는 이전보다 실질적인 것으로 바뀔 수 있어 글로벌 안정에 많은 위협이 가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표도르 테르티츠키 국민대 연구 교수도 “양국 관계는 이전까지 말만 많았지 실제 거래는 없는 관계였다”며 “만일 러시아가 북한에 군수품을 제공하는 대가로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한다면 국제사회는 양국의 협력 양상에 이목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 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에 우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프리다 기티스 CNN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김 위원장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일종의 국제적 퍼포먼스라고 평가했다. 이어 북한이 중국을 향해 ‘북한이 가진 패가 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