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개혁] 기금 고갈 막기 위해 더 내고, 늦게 받자? 학계·노동계 반발 격화

재정계산위, 연금 고갈 시점 2055년에서 2093년까지 미룰 수 있다 연금개혁안, 보험료율 인상·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기금 운용 수익률 개선이 골자 연금 실수령액 높이는 소득대체율 향상안은 제외됐다, 국민 부담만 높이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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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한국노총이 국회 앞에서 최근 발표된 연금개혁안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펼치고 있다/사진=한국노총

윤석열 정부의 3대 사회개혁 과제 중 하나인 ‘국민연금 개혁’이 보험료율을 올리고, 연금 받는 나이를 늦추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연금개혁안이 기금 안정성 측면에만 집중하고 소득대체율 향상 여부는 고려하지 않은 탓에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국민연금 개혁 본격 시동

지난 3월 보건복지부는 5년에 한 번 실시하는 국민연금 제5차 재정추계에서 직전 조사 때보다 연기금 고갈 시점이 2년 빨라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저출산·고령화 심화로 인해 재정추계 결과가 더 비관적으로 나온 것이다. 여기에 젊은 세대로부터 ‘돈은 낼 대로 내고 정작 받을 돈은 못 받게 생겼다’는 우려 섞인 반발이 거세지면서 연금 개혁 논의는 더욱 불이 붙게 됐다.

이에 지난 1일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이하 재정계산위)는 ‘연금개혁안 보고서’를 발표하고 정부에 개혁안을 제안했다. 국민연금 기금의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보고서는 ▲보험료율 인상 ▲2033년부터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상향 ▲기금 운용 수익률 개선 등을 골자로 한다. 이를 통해 현재 국민연금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시점인 2055년을 최대 2093년까지 연장하겠단 구상이다.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사전 설명회에서 “국민연금의 적립 기금이 오래 유지돼야 젊은 사람도 안심하고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금 운용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의 명확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더 내고 덜 받아라? 소득대체율 향상 빠진 연금개혁안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정계산위 보고서에 소득대체율 인상 내용이 빠졌다며 반쪽짜리 보고서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득대체율은 연금 가입 기간의 평균 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의 비율로, 지난 2008년 연금 개혁에 의해 매년 0.5%P씩 인하되고 있으며, 올해 소득대체율은 42.5%다.

본래 재정계산위 보고서에는 보험료율을 올리되 소득대체율도 50%로 올려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안이 포함됐다. 하지만 검토 막판 보고서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정계산위에서 소득대체율 강화를 주장했던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재정위원회가 노후 소득 보장 강화 필요성을 부정한다”며 위원직에서 사퇴한 바 있다.

재정계산위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두고 민간 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20일 오전 한국노총·민주노총·참여연대·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한 300여개 단체는 국회 앞에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중단 및 사회적 합의 기구 설치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히 항의했다. 이재강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위원장은 “매달 4조4,000억원의 연금보험료를 국민들이 부담하고, 매달 3조1,300억원의 연금을 국민이 받고 있다”며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을 위해 더 내고, 늦게 받으라고 하는 건 가입자·수급자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연금 개혁은 기금 고갈을 막는 것이 아닌 소득대체율을 높여 노인의 생활을 보장하려는 노력으로 실현돼야 한다”며 소득대체율 상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번 연금개혁안의 기반이 된 ‘3-1-1.5 개혁’

앞서 지난달 16일 국회 연금특위는 이번 재정계산위의 모 보고서 격인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인 김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3%P 올리고, 매년 연기금에 지출되는 정부 재정을 GDP 1%로 고정하고, 기금 운용수익률은 1.5%P 높이는 일명 ‘3-1-1.5’ 연금개혁안을 제안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3-1-1.5 개혁을 단행할 경우 연기금은 약 2,000조원대 수준을 유지하며 100년 이상 소진되지 않는다. 즉 영구적으로 연기금이 유지되는 셈이다. 김 교수는 “만일 기금의 장기운용수익률을 1.5%P까지 끌어올리지 못하고 1%P에 그치더라도 정부 재정 투입을 1.5%로 늘리면 연기금이 100년 이상 소진되지 않는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재정계산위가 2030년까지 9%에 형성돼 있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매년 0.6%P씩 올려 15%를 달성하고, 현행 63세(1969년생부터 65세)인 수급 개시 연령을 68세로 맞추고, 기금운용 수익률을 현 4.5%에서 5.5%까지 개선한다면 2093년까지 기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다만 연금특위는 이 같은 재정계산위의 제안에 공감하면서도 소득대체율을 동결해 연금 실수령액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연금특위 소속 김수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은 보험료 인상에 대한 정치·사회적 수용성이 낮다”며 “우선 기금 안정을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동결한 뒤에 수급 개시 연령 조정 등 추가 개혁을 논의하는 방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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