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노팹센터 ③ 쟁점과 개선과제
전국 14개 나노팹, 국가나노인프라협의체 통해 하나로 묶여 있는 형태 법적 근거 및 권한 전무한 인프라협, 총괄 조정 기관으로서 한계 있어 대부분 나노팹들 예산 부족 문제로 장비 고도화 못해, 이용자들도 불만
정부가 21세기 미래 산업을 선도할 핵심기술로 꼽히는 나노기술의 집중 육성을 위해 나노팹센터(나노팹)를 설립한 지도 20년이 지났다. 나노팹의 소관 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로 나뉘며, 국가나노인프라협의체(인프라협)가 국내 나노기술인프라 간 협력을 통해 나노기술분야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나 소규모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지 못한 채 난립하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입법처)가 전국 14개 나노팹의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나노팹 간 공정 범위가 모호한 탓에 중복투자의 우려가 있는 데다 단독으로 반도체 집적 일괄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기관도 부재한 실정이다. 아울러 나노팹 자체 수입만으로는 장비 교체가 어려운 탓에 대부분의 기자재는 노후화 됐으며, 이로 인해 필요한 연구 등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입법처는 주요 쟁점을 검토해 나노팹이 우리나라의 나노 관련 기술과 산업 발전에 더욱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개선과제를 제안했다.
정부 주도로 설립한 나노팹인데, 범위는 민간 협의체가 결정
2002년 제정된 나노기술개발촉진법(이하 나노기술법) 제11조 제2항을 보면 정부는 산·학·연의 나노기술 관련 연구개발 시설·장비의 공동활용, 전문인력의 양성, 연구성과의 실용화 및 기업의 창업 지원 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나노팹을 구축·운영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나노팹의 범위가 규정돼 있지 않아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대상의 범주가 모호하다. 나노기술법의 입법 취지에는 과기부 주도로 구축한 나노종합기술원이 가장 부합한다고 할 수 있으며, 과기부와 경기도청이 지원한 한국나노기술원도 나노팹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외 조직들도 나노기술법에 따른 나노팹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법적 근거를 엄밀히 따지면, 나노종합기술원과 한국나노기술원만 나노기술법에 따라 구축된 나노팹이고 나노융합기술원, 전북나노기술집적센터, 광주나노기술집적센터는 산업기술혁신촉진법 따른 산업기술개발사업을 통해 구축됐으며, 나노공정기술센터는 산업발전법 지식서비스산업 육성에 따른 사업을 통해 구축된 것이다. 그러나 과기부가 매년 발간하는 ‘나노기술연감’에는 인프라협에 가입된 모든 조직을 나노팹에 포함하고 있다. 즉 과기부와 산업부를 주무부처로 하고, 인프라협을 통해 14개 나노팹이 하나의 유형으로 묶여 있는 셈이다.
나노팹은 정부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프라협을 통해 기존 나노팹의 대표자 등이 새로운 나노팹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정부 주도로 구축·운영하는 나노팹의 범위를 민간 협의체가 결정하도록 하는 체계가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입법처는 나노기술법에 나노팹의 범위를 고시 등으로 명문화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나노팹 지정을 위한 심의위원회 등 의사결정체계에 관한 규정 및 나노팹에 대한 주기적인 평가를 통해 개선 권고나 지정 취소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프라협의 경우에는 법령에 따라 지정된 나노팹만을 회원으로 가입하도록 하거나 나노팹의 범위와는 별개로, 다양한 유형의 조직들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담기관 필요 vs 옥상옥 될 뿐
현재 나노팹을 아우르는 조직은 인프라협인데 나노팹 간 총괄 조정 역할을 맡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프라협의 경우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나노팹에 영향을 미칠 만한 권한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나노팹 간 중복 투자 최소화 및 역할 분담, 그리고 장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를 조정하는 전담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총괄 조정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의 신설에 대해서는 우려가 나온다. 나노 분야의 시장 성숙도가 낮아 아직은 전담기관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여러 부처와 기관에 분산된 기능에 대한 재조정 없이 총괄 조정 기관을 구축할 경우 이른바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신설 조직의 유지를 위해 새로운 사업이 또 생겨날 것이며, 나노팹 성격이 크지 않음에도 지원을 받기 위해 현장 수요 이상으로 여러 조직들이 나노팹 지정을 요구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같은 현장의 목소리를 고려할 때 총괄 조정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을 신설하기보다는 대표적인 나노팹을 전담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입법처는 분석했다. 나노기술법 제13조 제1항에 따르면 나노기술전문연구소를 설립하거나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그동안 나노기술전문연구소는 지정된 바가 없는 만큼 이 조항은 사문화된 규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입법처는 해당 조항을 삭제하고 이를 대신해 총괄 조정 전담기관 지정과 전담기관의 사업 범위 및 지원에 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한국재료연구원에 설치된 국가나노기술정책센터를 이 전담기관으로 이관해 총괄 조정 기능의 수행을 촉진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고 부연했다. 국가나노기술정책센터는 △국가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 수립 △국가나노기술지도 수립 △나노기술영향평가 실시 등 정부의 정책 수립 업무 및 정보 수집과 분석 등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전담기관이 이같은 기능까지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법인은 한국나노기술원이 유일, 그 외는 부설기관 형태로 운영 중
나노기술법 시행령 제11조에 따라 나노팹을 법인으로 설립·운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국 14개 나노팹 가운데 법인은 한국나노기술원이 유일하다. 대표 나노팹인 나노종합기술원을 포함한 나머지 13곳은 여전히 연구기관 및 대학의 부서나 부설기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나노팹의 초기 설립 당시에는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부설기관 운영을 한시적으로 허용했으나, 설립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리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나노팹으로 합류시킨 부분에 대해서도 이견이 갈린다. 대학까지 나노팹으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정부 구축 나노팹, 대학의 나노팹, 출연연의 나노팹이 각각 주력하는 부분이 다른 만큼 특화 분야 지정을 통해 중복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나노기술법 제정 당시에는 정부 주도로 여러 나노팹이 구축됐지만 이후 일부 대학이나 출연연에서도 운영해 왔으며 모두 인프라협회원 형태로 합류한 상황이다. 최근에 합류한 나노팹 중에는 기존에 정부가 구축한 일부 나노팹의 시설 장비를 뛰어넘는 곳도 있다.
입법처는 대표 나노팹센터를 법인으로 지정해 협력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고, 정부가 구축한 나노팹 등 일부 조직들을 분야별로 특화해 운영하는 방식의 협력체계 등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사 입법례로는 국가초고성능컴퓨터 활용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분야별 초고성능컴퓨팅센터’ 사례를 제시했다.
이용료 수입만으로는 나노팹 운영 사실상 불가능
실태조사 결과 나노팹 이용자들의 대표적인 불만 사항으로 장비의 노후화로 인해 필요한 연구 등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이 꼽혔다. 그러나 나노기술법에는 나노팹에 대한 비용 지원 규정이 없는 데다 자체 수입만으론 장비를 교체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이용료를 인상하거나 수익성이 높은 서비스에 집중할 경우 재정이 개선될 수는 있지만, 공공부문의 기관인 만큼 수익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당초 정부가 나노팹을 구축할 때 기본 원칙은 정부가 장비를 구축해 주면 이후엔 자체 수입으로 재정을 자립화하는 것이었으며, 2005년 수립된 ‘제2기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에도 자립 기반 확보에 관한 내용이 있다. 하지만 자립화는 애초에 달성될 수 없는 목표였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용료 수입만으로는 조직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사업이나 과제를 수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로 인해 서비스 제공에 집중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시설 장비 운용에 따른 전기료 부담이 크며, 나노팹 가운데서도 교육용 전기요금이 아닌 산업용 전기요금을 적용받는 조직은 그 부담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나노팹 장비의 신규 도입이나 교체를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며, 유지 보수를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14개 나노팹 중 유일하게 정부의 출연금을 받는 나노종합기술원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하지만, 그 외 나노팹들에 대해서는 정상 적인 운영을 위해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입법처는 단기적으로는 나노팹센터를 지원하는 공동조직 등을 설립하거나 지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장기적으론 나노팹센터 운영체계를 명확히 세워 비용 지원에 관한 사항도 나노기술법에 마련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용료 수입마저도 장비 구매에는 못쓴다
한편 나노팹의 장비 고도화에 있어 예산 부족 문제가 가장 큰 장애물이지만 이용료 수입을 장비 구매 등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역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나노팹의 관계자는 “연구개발 시설·장비 표준지침이 있는데, 이 지침은 이용료를 행정 경비에도 쓰지 못하게 하고 장비구매도 하지 못하게 한다”며 “대학과 연구소가 장비를 보유한 경우 이용료는 가외수입일뿐이지만, 나노팹은 이용료가 핵심이다. 이 규정을 나노팹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 이용료 사용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입법처는 ‘국가연구개발 시설·장비의 관리 등에 관한 표준지침’ 제33조 제3항도 이용료 수입의 집행과 관련해 타 법령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 그 법령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한 점에 비춰볼 때 나노기술법 또는 그 하위 규범에서 나노팹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용료 산정과 집행에 관한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의했다.
과학기술기본법과 이 법 시행령이 위임한 연구개발 시설 장비의 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규범으로 ‘국가연구개발 시설·장비의 관리 등에 관한 표준지침’이 있다. 해당 지침 제2조 제13호를 살펴보면 연구시설장비 이용료란 이용자에게 연구시설장비 서비스를 제공해 획득한 금전적 대가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33조 제2항은 운영유지비에 연구시설장비 이용료를 집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즉 대학이나 연구소가 장비를 보유한 경우 이용료는 부수적인 수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나노팹의 경우 이용료 수입이 핵심적인 재원에 해당하는 만큼, 이용료의 사용 용도를 별도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