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조원 규모 금융 지원’ 정부, 경기 회복 위해 수출강화에 총력
정부 ‘수출 활성화 추가지원 방안’ 발표 추 부총리 “우리 경기, 회복 초입 단계 있어” 진단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확실성 지속, 전문가들 의견은 ‘암울’
정부가 수출 기업들의 자금난 해소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약 180조원 규모의 무역금융을 공급한다. 또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면제를 시작으로 전국에 위치한 7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성장에 총력을 기울인다. 팬데믹 종료 후에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기를 수출 활성화로 반전시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수출 활성화 추가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우리 수출의 반등을 앞당겨 경제회복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범부처 정책역량을 집중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산업 경쟁력 강화 절실, 용인산단 예타 면제 추진
먼저 정부는 무역금융, 마케팅, 통관·물류 등 수출 기반(인프라) 지원 보강에 나선다. 수출기업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올해 연말까지 최대 181조원의 무역·수출 금융을 공급하고, 수출기업의 수요가 많은 수출 바우처와 해외 전시회 지원 규모도 확대한다. 또 중소기업에 대한 보세공장 특허기준을 완화하고, 중소 화주에 대한 부산항 신항 내 수출 컨테이너 무상 사전 반입 기간을 현행 최대 4일에서 5일로 확대한다.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해서는 중동을 비롯한 신흥시장에 수주지원단을 파견하고 정책금융을 확대해 수출 및 수주를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우디 원팀코리아, 인도네시아·콜롬비아 녹색산업 수주팀 등을 현지에 파견하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저신용 국가 수주를 지원하는 수출입은행 특별 계정에 2,500억원을 추가 투입한다. 더불어 연내 한중경제장관회의와 기업 간 한중경제협력교류회를 개최해 최대 수출국인 중국과의 경제협력에도 박차를 가한다.
구조적인 수출 확대를 위한 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팔을 걷었다. 내년부터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첨단전략산업 분야 유턴기업에 대해서는 투자금의 최대 50%까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비롯해 첨단반도체 제조 공장이 집적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이 조속히 구축되도록 공공기관 예타 면제를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또 글로벌 콘텐츠 시장 공략을 위해 1조원 규모의 K-콘텐츠 전략 펀드 신규 조성하고, 에너지 분야에서는 발전공기업이 해외 진출 시 국산 기자재를 활용하는 경우 경영평가에 가점을 적용하는 등 인센티브를 확대한다.
이날 추 부총리는 “우리 경기는 월별 변동성은 다소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바닥을 다지면서 회복을 시작하는 초입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8월에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감소 폭이 크게 완화된 만큼 9월에는 무역수지 흑자기조와 함께 수출 감소 폭이 추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수출기업 지원에 민간 은행도 힘 합쳐주길”
정부의 수출기업 지원 확대 방안은 지난 8월 중순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동안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에 집중됐던 수출금융의 유동성 확대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당정이 공공·민간 협력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다. 당정은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출금융 종합지원대책 민당정협의회’를 열어 우리 수출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수출금융을 22조원 추가 공급하는 데 뜻을 모았다.
이날 회의 종료 후 언론 브리핑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그간 정부의 수출 지원 대책이 예산, 정책, 금융기관의 저리 대출 보증 등 공공 부문의 재원을 바탕으로 마련됐다면, 이번 대책은 민간의 힘까지 합쳐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도록 해 은행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의 해외 전기차 공장 신설을 예로 들며 “기업이 필요한 자금이 3,000억원이라면, 현대차와 신용보증기금, 은행권이 협력해 이 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16일에는 금융위원회가 ‘수출금융 종합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총 23조원 규모의 자금을 적재적소에 공급함으로써 우리 수출을 다시 한번 도약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해당 방안에는 △급변하는 글로벌 무역구조에 대비할 수 있는 전략적 금융지원 방안 △수출 산업의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금융 지원 △우수 수출기업의 무역금융 이용 시 부담 축소 방안 등이 담겼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수출금융 지원은 매우 의미 있는 사회 기여일 뿐만 아니라, 은행 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고객기반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수출기업 지원에 대한 은행권의 관심을 당부했다.
경기 회복 향한 엇갈린 전망, 더딘 글로벌 경기 회복이 발목 잡아
정부가 수출 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이자, 국민들의 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추 부총리는 일시적 부진은 있지만, 수출 회복과 서비스업 개선 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우리 경제가 ‘회복 초입 단계’에 있다고 진단했다. 4일 기자간담회에서 추 부총리는 “무역수지가 3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당초 예상보다 양호한 움직임을 보인다”며 “연내 수출이 플러스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어 “대중국 수출이 100억 달러(약 13조원) 선을 다시 넘어선 상황인데, 중국의 경제 상황 등 대외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만큼 과도한 낙관을 경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에 아직 먹구름이 껴 있다고 진단했다. 2분기 일시적인 회복세는 지난해 얼어붙었던 산업 전반의 기저효과에 따른 결과라는 이유에서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수출액은 아직 뚜렷한 반등세가 보이지 않는다”며 “수출 증가율은 반등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는 수출액의 증가라기보다는 지난해 기저효과에 따라 낙폭이 축소되며 보이는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수출 경기 확산지수는 다시 위축 국면에 진입했고, 8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도 하락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역시 전날 ‘상저하고 가능성 제고를 위한 경기회복 모멘텀 확보 절실’ 보고서를 통해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순환변동치가 6월을 기점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경기 저점이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고물가로 인한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약화함에 따라 수출과 내수가 모두 부진에 빠지며 L자형 장기 침체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시장이 더딘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이번 수출 활성화 추가지원 방안이 정부의 긍정적 경기 예측을 현실로 이뤄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