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GATT 제21조 허점 활용하는 강대국들
안보적 예외 조항을 독단적으로 해석하는 강대국들 조항 해석 오남용 계속되면 국제 무역 질서 악화 가능성 다자간 합의를 통한 간접적 규제 질서 구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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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6일 세계무역기구(WTO)는 미·중 갈등으로 촉발된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고관세 부과에 대해 부당한 관세 부과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중국은 WTO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WTO 상소기구 항소 시간까지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불법 관세를 계속 부과 중이다. 이에 무역 전문가들은 미국이 GATT 제21조에 취해온 입장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았다고 평가했다.
GATT 제21조란 무엇인가
GATT 제21조는 관세와 무역 협정 조항에 대한 안보 예외(Security Exception) 조항이다. WTO 및 국제 무역 협정이 확대되면서 국제 협약에 참여하는 각국 정부 관계자들은 자국의 필수적인 안보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무역 조치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안보적 차원의 예외 조항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입안자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해당 회의를 통해 자국의 안보적 상황 발생 시 무역 규제를 취할 수 있고 기 체결 무역 협정의 모든 의무에서 면제받을 수 있는 GATT 제21조가 도입됐다. WTO 협정에서도 GATT 1994를 통해 동일한 조항이 수용된 바 있다. 현재 GATT 제21조는 서비스무역일반협정(GATS),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협정(TRIPS) 및 정부조달협정 등에 포함됐으며, 일부 자유무역협정(FTA), 기타 투자협정에도 안보 예외 조항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GATT 제21조 (b)호다. 제21조 (b)호에서는 [자신의 필수적인 안보이익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자신이 간주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GATT 제21조를 발동하는 국가가 소위 ‘자기판단(self-judging)’을 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포함된 것이다. 해당 문구의 해석에 대해 미국은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행정부에서 “자국의 제21조 사용은 WTO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온 바 있다. 이같은 의견에 동의하는 국가로는 러시아가 있다. 반면 한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은 WTO가 제21조 사용에 대해 실제로 해당국의 안보적 이익에 연관성이 있는지 조사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WTO는 제21조와 관련해 전쟁 또는 국제적으로 비상 상황 발생 시에만 취할 수 있는 조치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앞서 WTO는 제21조 발동이 확산할 경우 글로벌 무역 시스템이 크게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WTO 회원국에 제21조 사용 자제를 요구해 왔다. 미국도 WTO의 요구에 따라 2014년 전까지 역사상 단 2건(1961년 쿠바에 대한 무역 제재, 1985년 니카라과에 대한 금수 조치)의 제21조 발동을 한 바 있고, EU 역시 단 2건(1982년 아르헨티나에 대한 무역 제재, 1992년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의 발동만을 진행했다.
크림반도 침공으로 급부상한 제21조
하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에 따라 전쟁 또는 기타 국제 관계에서 비상사태 문구를 근거로 무역 제재에 대한 안보 예외 조항 발동돼 GATT 제21조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집중됐다. 2018년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에 대해 ‘군사 시설에 공급할 목적으로 직간접적으로 수행되는 무기, 탄약 및 전쟁 도구의 운송’을 제한한다는 명분으로 제21조를 발동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다. 대상국은 러시아와 러시아의 우방국인 중국이었다.
이에 러시아도 강경한 무역 제재로 대응했다. 일부 국가에선 미·러 양국의 무역 제재에 대해 제21조가 국제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시행됐는지 의문을 표했지만, WTO 상소기구의 위원 수 부족으로 심사 절차를 진행할 수 없었다. 미국 정부가 2019년 12월 11일부터 WTO 상소기구에 대한 임명권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미국의 무역 제재에 대응해 일부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고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은 제21조를 발동하지 않는 대신 제16조와 제19조에 명시된 ‘세이프가드’(Safe Guard·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수입품에 고관세를 부과하는 긴급 수입 제한 조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제재가 제21조 발동이 아닌 세이프가드였다고 주장하며, 그에 따라 자국 역시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응수한 것이다.
제21조 남용의 위험성과 극복 과제는
이렇듯 미국, 러시아, 중국은 제21조를 포함한 국제 협약의 조항을 임의로 해석해 안보 예외 상황을 독단적으로 판단하거나 우회하는 행위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는 글로벌 무역 질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제21조 해석에 대한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한, 미국과 대립하는 국가는 똑같은 명분으로 제21조를 발동해 보복성 무역 조치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개는 안보적 상황을 가장한 폐쇄적인 보호무역주의로 발전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제21조 및 국제 협약 조항의 오남용 이슈를 막기 위해 제21조의 내용을 인정하고 이 세부적 상황을 추가 명시하는 부가 조항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조치는 글로벌 무역 시장에서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WTO의 권한이 국가 안보라는 예외 상황에선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제21조 해석에 대해 견해가 다른 한국, 미국, EU, 일본, 호주 등이 WTO 외부에서 만나 제21조 사용을 포함한 정돈된 무역 원칙 합의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상황에서 미국은 안보 예외를 규정할 수 있는 어떤 원칙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 분명하지만, 동맹국 간의 무역 균형을 위한 일종의 중재 시스템엔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같은 별도의 협의를 통해 제21조 발동에 따른 구체적인 사유와 범위, 파급 효과 등을 주변국에 전파하는 의무를 추가하는 것만으로 간접적인 규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제21조를 포함한 WTO 조항에 대한 국가 간 입장과 실행 사례를 살펴보면 해당국의 글로벌 영향력에 따라 국제법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극도로 복잡해진 현재 정세에서 제21조와 같은 규정은 크게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규정조차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면, 많은 국제기구에서 제정한 국제법과 원칙도 함께 붕괴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간과해선 안 된다.
Working around the Article XXI loophole
On 16 August 2023,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WTO) ruled that China had wrongfully imposed duties on US imports. Despite this, China continues to impose its illegal duties, pending its appeal to the defunct Appellate Body. China is exploiting a situation that the United States created.
The security exception, Article XXI, was included in the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 to allow for otherwise illegal measures taken purely for security reasons. The Obama, Trump and Biden administrations have all made clear that the US position is that a country’s use of Article XXI cannot be challenged in the WTO. Russia supports the US view, but China, the European Union and South Korea are among those who argue that the WTO has a right to investigate whether a country has made a plausible link between its use of Article XXI and an actual security interest.
The specific wording of Article XXI implies that there are standards to judge whether it has been used appropriately. It states that countries can take any action necessary for the protection of ‘essential security interests’, which among other things, includes actions taken during a time of war or emergency in international relations. If the protection of security interests had been intended to be a blanket exception, it would have been worded more simply.
As the GATT and WTO members understood that a snowballing use of Article XXI would endanger the world trading system, for 70 years they exercised self-restraint. The United States only invoked Article XXI to embargo Cuba in 1961 and Nicaragua in 1985, and the European Union used it to restrict imports from Argentina in 1982 and Yugoslavia in 1992.
Article XXI only surfaced again in 2014, when Russia invoked Article XXI(b)(iii) as taken in time of war or other emergency in international relations after its invasion of Crimea to justify its ban on the transit of goods from Ukraine destined for Kazakhstan and Kyrgyzstan through Russia.
In 2018, the Trump administration invoked Article XXI(b)(ii) — which allows states to protect access to their materials by restricting ‘the traffic in arms, ammunition and implements of war […] carried on directly or indirectly for the purpose of supplying a military establishment’ — to impose import restrictions on steel and aluminium. This was pure protectionism, as only a small portion of domestically produced or imported steel or aluminium is used for military purposes.
We may never learn how the Appellate Body would interpret US and Russian use of Article XXI, because since 11 December 2019,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has blocked all appointments to the Appellate Body. The Appellate Body has not had enough members to hear a case for almost five years.
As international trade is increasingly entwined with the concept of economic security, allowing the security exception to be self-judging could be devastating to global trade. As the United States is almost certainly not going to change its opinion on the justiciability of Article XXI, one crude workaround might be for countries to retaliate by invoking their own self-judging right to resort to Article XXI. But it is easy to imagine that becoming a downward spiral toward protectionism under the guise of security.
China tried a different approach. In 2023, China imposed duties on several US products to offset US restrictions on trade in steel and aluminium. China did not invoke Article XXI but instead argued that the US had enacted a de facto safeguard measure cloaked as a security exception, which permitted China to right the balance by using Article XIX, regarding ‘safeguards’.
Another solution might be for the WTO to clarify its rules to make them conform with US and Russian opinion that the security exception is self-judging, while at the same time implementing new or existing processes to allow for counterbalancing measures. But this would concede that use of national security exceptions is beyond the WTO’s purview, despite the plain wording of Article XXI.
A more palatable approach might be for the United States, the European Union, South Korea, Japan and Australia to meet outside of the WTO to agree on trade rules, including the use of Article XXI. The United States would be unlikely to agree to any mechanism that could rule against security exceptions, but it might agree to an arbitration system to rebalance trade among economic allies. Short of that, even a requirement to explain and consult among like-minded countries might impose some brake on the abuse of the security exception, which would also benefit the wider trading community.
Maybe in the international environment of 2023, this is too arcane to matter. Rules and norms are in tatters everywhere. But the uses of Article XXI in recent years at least makes clear that the world is not neatly divided into countries that respect the rule of law and those that do not. The United States should acknowledge with humility that its abandonment of self-restraint in its use of GATT Article XXI and its sabotage of the WTO dispute settlement mechanism show that, barring a solution to the Article XXI problem, even its commitment to an international rules-based order has limits.
원문의 저자는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한미경제연구소(Korea Economic Institute)의 마크 토콜라(Mark Tokola) 부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