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감축 사업에 매몰된 정부, ‘탄소중립’ 실현은 머나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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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탄소중립' 흐름,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현황은
우상향 곡선 그리는 국내 제조업 탄소 배출량, 韓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기후 협약 아래 '제조업' 엔진 꺼져가는 韓

현재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 ‘신 기후체제’로 불리는 파리기후변화협정 채택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193개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후 각 국가들은 파리협정의 장기 온도목표 달성을 목적으로 스스로 결정한 기후변화 대응 및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일제 상향하고 나섰다. 우리나라 또한 상향된 2030 NDC를 제출하며 탄소중립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으나, 정작 탄소 감축이 피부에 직접 와닿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적 탄소 감축에만 집중하다 보니 내부 탄소 감축은 실질적으로 전무한 상황이라는 목소리도 쏟아진다.

2억9,100만 톤 탄소 감축 시사한 韓, 하지만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NDC 상향안은 2030년까지 2억9,100만 톤의 탄소 감축이다. 연평균 약 4%씩 감축하겠다는 게 현 정부의 구상인데, 이는 미국(2.81%), EU(1.98%), 일본(3.56%)의 연평균 감축률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우리 정부는 2030 NDC 상향안을 달성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준비가 상대적으로 더딘 산업 부문의 감축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자 산업 부문 목표치를 하향함과 동시에 부족한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국제감축 부문을 2030년까지 3,750만 톤 확보로 상향조정했다. 국제감축이란 개발도상국 등을 대상으로 국가 간 협력 및 우리 기업의 기술투자를 통해 녹색성장을 지원함으로써 이를 온실가스 감축분으로 인정받는 개념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탄소 감축이 국제감축에만 지나치게 몰려 있다는 점이다. 국가 간 협력 사업의 경우 두 국가가 감축 실적을 어떻게 나눌지 국제적 기준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감축 사업은 우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협정 체결로부터 시작했다. 이후 선진국 정부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과 사업에 공동 투자한다. 사업 후엔 두 나라가 협의를 거쳐 감축실적을 나누고, 그렇게 가져온 온실가스 감축실적(ITMO)에서 정부는 투자한 지분만큼 회수해 2030 NDC 중 국제감축 목표 달성에 활용한다. 이때 감축실적을 가져오기 전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두 국가가 어떤 비율로 나누는지 정하는 과정을 ‘상응조정’이라고 한다.

국제감축은 2005년 교토의정서 시절부터 등장했는데, 당시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줄인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모두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나 파리협정 이후 개발도상국도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지면서 선진국이 실적을 전부 회수하기 어려워졌고, 양국이 감축실적을 이중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상응조정이 필요해졌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파리협정에서 상응조정과 관련한 규칙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국제감축의 불확실성은 기술이 아닌 제도적 기반의 부재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파리협정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도 부여된 상황에서 선진국이 감축실적을 원하는 만큼 잘 끌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기후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기술과 돈을 투자해도 5:5는커녕 더 적은 감축분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확실하게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산업 부문을 놔두고 국제감축만 늘리는 건 불확실한 책임만 떠안는 계획”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9월 25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서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서 열린 ‘2023년 온실가스 국제감축 사업 협약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국제감축 사업도 ‘지지부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감축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정부는 지난 2021년 베트남과 ITMO 협약을 시작으로 몽골과 가봉까지 총 3개 국가와 국제감축 협약을 맺었는데, 구체적으로 국제감축 사업이 진행 중인 곳은 몽골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목표 국제감축분 총 3,750만 톤 가운데 실질적으로 확보한 감축분은 50만 톤에 불과하다. 목표 대비 부족분인 3,700만여 톤을 2030년까지 추가로 확보해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감축량 확보 속도로 보았을 때 달성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감축 3,750만 톤 자체가 애초에 비현실적인 목표였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국제감축 성과 자체가 미미한 상황에서 무작정 목표만 높게 잡아 실패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실제 개별 기업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으로부터 사업(청정개발체제·CDM) 승인을 받으면 탄소 1톤당 탄소 감축인증(CERs) 1개를 받을 수 있는데, 지난해 발행된 CERs는 1억4,900만 개에 불과했다. 탄소 약 1억4,900만 톤을 감축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작년 전 세계 탄소 배출량 368억 톤과 비교하면 미미한 실적이다. 지난 1월 기준 전 세계 CDM 사업은 총 7,845건으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따르면 한국 사업은 40여 건에 불과하다.

오는 2026년엔 각국 정부가 개별적으로 협정을 맺어 국제감축실적(ITMOs)을 거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긴 하나, 결국 우리나라에 호재가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불과 4년 안에 3,700만 톤에 달하는 물량을 구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나라가 양자 기후변화협력 협정을 체결한 국가는 베트남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 인도네시아는 자국 NDC를 달성하지 못하면 국제감축거래를 금지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인도네시아가 국제감축거래에 대한 직접적인 금지책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실적 거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감축 목표 달성 가능성이 더욱 떨어졌다는 의미다.

“‘내부 탄소 감축’이 탄소중립의 시작”

결국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내부 탄소 감축’이 이뤄져야 한다. 국제감축에 치중하지 않고 우리나라 자체의 탄소 배출량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밝힌 바에 따르면,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된 2015년 이후 국내 제조업 기업의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으로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줄었음에도 제조기업이 실질적인 배출량을 줄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제조기업들이 실질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보다 배출권 거래제 활용을 선택했기에 오히려 배출량이 늘어난 것”이라며 “배출권 거래제의 환경개선 효과가 매우 미비하게 나타난 이유”라고 설명했다.

탄소 감축을 위해선 우리나라의 산업 체계 전반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나라 산업 체계의 중심은 제조업이다. 실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경제가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성장률(-3.3%)을 기록했을 때도 우리 경제는 제조업이 버팀목 역할을 하며 성장 둔화를 억제(-1.0%)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연간 누적 489억 달러(약 66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종전 최대치였던 1996년 206억 달러(약 28조원)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제조업 수출을 엔진으로 두고 있는 우리 경제가 새로운 위기 국면에 다다랐음이 드러난 셈이다.

이는 친환경 글로벌 경쟁과 관련이 깊다. 세계적인 이상기후 현상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을 촉발시켰고, 이로 인해 각국은 자국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EU의 탄소 국경세다. EU는 탄소 국경세를 도입해 수입품 중 역내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을 채택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오는 2026년 탄소 국경세가 실제 적용되면 우리나라는 철강, 자동차, 해운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내부 탄소중립에 소극적이던 우리 정부·기업의 ‘원죄’가 위기로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이란 국제적 정세에 우리나라는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탄소 국경세 시행 등 ‘커트라인’은 훌쩍 앞으로 다가왔다. 사실상 앞뒤가 가로막힌 신세로 전락했단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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