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가 휩쓴 부동산 시장, 정부의 무모한 ‘일단 공급’ 정책
서울·경기·인천 나란히 역전세난 심화, 2년간 전세 시세 줄줄이 미끄러져 "아파트 대비 불안정하다", 보증금 미반환 공포에 빌라 기피 현상 심화 오히려 비연립·다가구주택 공급 늘리겠다는 정부, 무조건 물량 쏟아내도 괜찮을까
고금리 여파로 국내 주택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가운데, 수도권 중심으로 전세 시세가 계약 당시보다 낮아지는 ‘역전세’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바탕으로 서울·경기·인천 지역 연립·다세대의 2021년 7~9월 전세 거래 4만636건 중 올해 7~9월 거래가 발생한 8,786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52.5%(4,615건)가 역전세 주택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역전세 및 전세사기로 인한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례가 급증하는 가운데, 임차인들은 전세 및 빌라 거주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는 수요가 눈에 띄게 위축되며 ‘전세 소멸론’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비연립, 다가구 등에 대한 주택도시기금 대출 지원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에 일각에서는 무작정인 공급 증대보다 위태로운 현 시장 상황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세가 미끄러진다, 수도권 덮친 ‘역전세난’
스테이션3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역전세 주택의 전세 시세 차액 평균은 3,056만원이었다. 2년 사이에 전세가가 평균 14.05% 미끄러진 것이다. 평균치를 떠나 지역별로 살펴봐도 ‘역전세난’의 그림자는 뚜렷했다. 서울의 경우 동일 주소지와 면적에서 발생한 전세 거래 5,631건 중 52%(2,946건)가 역전세 거래인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1~5월 대비 18.3% 증가한 수치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역전세 거래 비율이 50% 이상인 지역은 12곳에 달했다. 역전세 거래 비중은 중구가 72%로 가장 높았으며, 이어 △강서구 71% △강남·양천구 69% △은평구 64% △영등포·성북구 62% △금천구 61% △구로구 58% △서초·중랑구 56% △마포구 53% 순이었다.
경기도의 경우 동일 주소지와 면적에서 발생한 전세 거래 2,494건 중 1,251건(50%)이 역전세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과천시의 경우 수도권 전반을 통틀어 평균 전세금이 가장 크게 하락한 지역으로, 2021년 3분기 5억591만원에서 올해 3분기 4억771만원까지 자그마치 9,820만원이 빠졌다. 역전세 거래 비율도 85%로 인천광역시 중구(9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과천 외에도 고양 일산서구, 고양 일산동구, 성남 분당, 김포 등도 높은 평균 전세금 하락폭을 보였다.
올 들어 ‘연쇄 전세사기’로 홍역을 치른 인천 역시 역전세 거래 비율이 높았다. 인천 내 동일 주소지와 면적에서 발생한 전세 거래 661건 중 역전세 거래는 63%(418건)에 달했다. 기존 보증금 대비 평균 전세금 하락률은 수도권 내에서 역전세 거래 비율이 가장 높았던 중구를 포함해 서구, 강화, 미추홀 등에서 특히 높았다.
“전세 살기 싫어요” 불안감 증폭
역전세난이 지속되자 임차인들 사이에서는 ‘전세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역전세가 발생할 경우 집주인이 보증금을 되돌려 주지 못할 가능성, 즉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역전세난은 불특정 다수의 임대인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전세사기’로, 오히려 범죄 성격이 짙은 전세사기보다 시장에 더 큰 피해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역전세 문제는 특히 빌라 등 비(非)아파트 건축물에서 두드러진다. 아파트의 경우 시세가 표준화돼 있고, 전세금 역시 표준화된 가격을 기반으로 산정된다. 전세가가 매매가를 추월하는 역전세가 발생할 위험이 비교적 적다는 의미다. 또한 자산으로서 가치가 높고 가격 상승 기대가 큰 만큼, 문제가 발생해도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에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빌라는 자산으로서의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시세도 명확하지 않은 편이다. 아파트 대비 투자 가치가 낮다 보니 시장 내 거래 역시 원활하지 않다. 빌라 전세가는 이렇다 할 ‘기준’ 없이 대부분 시세보다 높은 선에서 형성된다. 아파트보다 역전세가 발생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는 시장인 셈이다.
특히 최근 들어 빌라를 중심으로 ‘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심화하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부담 역시 가중되는 추세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HUG 보증보험 가입 건수는 16만3,222건에 달했다. 반년 만에 전년도(23만7,797건)의 68.6%에 달하는 가입이 몰린 것이다. 같은 기간 전체 세대의 발급 금액은 총 37조3,128억원으로 지난해(55조4,510억원)의 67.2%에 육박했다.
지금은 ‘더 지을 때’ 아니라 ‘수습할 때’
비아파트 거주에 대한 실수요자 거부감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거꾸로 비연립·다가구 등 주택도시기금 대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하는 대형 건설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민간 중소 건설사 등을 집중 지원해 도심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금이 ‘무작정 더 지을 때’는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내 부동산 시장 곳곳에서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속출하며 전세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주택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전세를 놓는 집주인들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공급자도, 수요자도 전세 거래를 외면하며 ‘전세 소멸론’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부동산 거래의 주축인 전세 시장 자체가 흔들리는 가운데, 가뜩이나 수요가 없는 비아파트 물량 공급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할 뿐이다.
현재 전세 제도는 수많은 악재 끝에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차후 ‘전세 소멸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충분치 못할 경우 부동산 시장 전반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지반이 약한 땅에 무작정 새 건물을 올리면 결국 ‘재난’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은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펴 임차인·임대인의 피해를 줄이고, 시장의 혼란을 잠재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