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서 터져 나온 이·팔전쟁 가짜뉴스, EU ‘경고’에 머스크도 꼬리 내렸다
‘표현의 자유’ 부르짖던 일론 머스크, 결국 ‘가짜뉴스’ 책임론 휩싸여 EU “X, 가짜뉴스 대응 않을 시 연 매출 6% 수준의 벌금 부과할 수도” 백기 든 일론 머스크, “키워드 조작 시도한 계정 수백 개 삭제 조치”
유럽 당국이 일론 머스크에게 “X(구 트위터)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관련 허위 정보가 확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조치를 취하라”고 엄중 경고를 내렸다. 국제 정세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X에서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무력 충돌이나 조작된 군사용 영상 등이 난잡하게 흩뿌려지자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머스크가 적극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엔 연 매출 6% 수준의 벌금 부과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U, 머스크에 “X 가짜뉴스 대응 조처하라”
10일(현지 시각) 티에리 브레통 유럽연합(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머스크에게 서신을 보내 “당신이 소유한 플랫폼(X)이 허위 정보와 불법 콘텐츠를 전파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일 X에선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병원에 긴급 이송됐다는 게시글이 확산됐으나 결국 가짜뉴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외 비디오 게임 속 연출 장면이 실제 전쟁 상황으로 조작돼 퍼지거나 반유대주의, 테러 등을 부추기는 혐오 게시글도 X에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백악관의 문서를 교묘하게 조작해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80억 달러(약 10조7,952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와 같은 거짓 정보가 진실인 것마냥 퍼지는 사고도 있었다.
이에 브레통 집행위원은 “유럽의 디지털 서비스법은 콘텐츠 규제에 매우 정확한 의무를 규정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드린다”고 머스크를 직격하고 나섰다. 이어 “X는 불법 콘텐츠에 대한 성실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불법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며 “X의 콘텐츠 규제 시스템이 효과적인지 긴급 확인 후 취해진 조치에 대해 향후 24시간 내 우리에게 보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긴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법 집행 기관 및 유로폴과 연락하고, 이들의 요청에 즉각 응답하길 바란다”며 “이와 동시에 잠재적인 조사가 개시됐으며, 법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처벌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본격 시행된 EU의 디지털 서비스법은 X와 같은 대형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유해 콘텐츠의 확산 방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으로, 이를 위반할 경우 연수익의 최대 6%를 벌금으로 물어야 한다. 디지털 서비스법이 시행된 이후 유럽 당국이 이처럼 명시적인 경고를 한 건 처음이다. 특히 이번 가짜뉴스 유포에 대해선 머스크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머스크 위기론’도 함께 축적되는 모양새다. 머스크는 최근 허위 정보를 모니터링하던 직원을 해고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에게 붙이던 ‘블루 체크’를 유료로 파는 등의 정책을 펼쳤는데, 해당 정책들이 가짜뉴스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타락한 SNS, 가짜뉴스의 ‘온상’ 됐다
현대사회에서 SNS는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다. 미국 인터넷 뉴스매체 버즈피드(BuzzFeed)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페이스북에서 상위 20개 가짜뉴스가 상위 20개 진짜 뉴스보다 많이 공유됐다. SNS가 발달하면서 1인 미디어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대표적인 예시로, 유튜브에선 누구나 콘텐츠를 제작·게재할 수 있으며 조회 수와 구독자 수를 통해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 SNS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법에 따르면 유튜브 등 1인 미디어는 정보통신 콘텐츠로 분류, 언론중재법이나 방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가짜뉴스 확산의 원인으로 ‘확증편향’과 ‘반복 노출’을 지목한다. 자신이 긍정하는 내용은 모두 진실이라 믿고 부정하는 내용은 모두 가짜뉴스라 믿는다는 것이다. 확증편향에 빠진 이들은 정통 기성 언론의 보도 역시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짜뉴스라고 호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 동일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이른바 ‘만델라’ 효과가 생긴다. 만델라 효과란 집단 거짓 기억 공유 현상을 말하는데, 만델라 효과와 가짜뉴스가 만나면 사람들은 기존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 많이 찾고, 반대되는 정보는 피하려고 한다. 뒤늦게 이를 수정하거나 바로 잡으려는 올바른 정보가 제공된다 하더라도 가짜뉴스에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대중들의 ‘자기 확신’도 가짜뉴스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람이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가짜뉴스를 잘 가려내지 못하지만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2018년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27개 국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신이 속한 국가의 일반 국민이 가짜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별할 수 있는가’의 질문에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반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때 자기 자신은 구별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정도가 높았다. 자신은 가짜뉴스에 속지 않고 가짜뉴스를 가려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역으로 가짜뉴스에 속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유료화 정책 내건 SNS, 정작 ‘사회적 책임’은?
최근 맞춤형 광고 수익 급감으로 궁지에 몰린 SNS 플랫폼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유료화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메타는 유럽에서 월 10유로(약 1만4,000원)에 광고 없이 자사 SNS(인스타그램·페이스북)를 이용할 수 있는 ‘SNA(광고 없는 구독) 서비스’ 출시를 검토 중이며, X는 최근 유료 계정 인증 상품인 X 프리미엄을 내놨다. 그러나 문제는 SNS가 유료화 정책을 시행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은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7년 IS 테러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유족들은 구글·트위터 등이 IS의 콘텐츠 유통을 방조해 테러 확산에 도움을 줬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원을 모집하고 이들이 급진적으로 활동하는 데 SNS와 추천 알고리즘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미국 대법원은 지난 5월 “SNS 알고리즘이 테러리즘 게시물을 확산하는 데 일조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빅테크의 손을 들어줬다. SNS가 IS를 지원하고 방조했다는 걸 입증하기에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뉴욕타임스는 “이 판결은 플랫폼이 사용자들의 게시물, 추천(알고리즘)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냐는 질문을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이제는 상황 자체가 달라지기도 했다. SNS가 유료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관리자 차원의 SNS 관리가 더욱 명확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X 측 또한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고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를 보였다. X 보안팀은 공식 계정을 통해 “최근 며칠간 X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에 관한 게시글이 5천만 개 이상 올라오고 있다”며 “X 경영진은 현 상황이 최고 수준의 대응이 필요한 위기 상황이라는 판단을 내렸으며, 최고 수준의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에 관한 이용자들의 알 권리와 민감한 콘텐츠를 보지 않을 권리를 모두 보호하기 위해 자사의 공익 정책을 지난 주말 동안 업데이트했다고도 전했다.
X 측은 또 “폭력적이거나 혐오 표현을 담은 게시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하마스와 연계된 것으로 확인된 계정이나 X의 ‘트렌드’ 키워드 조작을 시도한 계정 수백 개를 삭제했다”며 “온라인 테러 콘텐츠를 막기 위한 독립 기구인 ‘테러 대응을 위한 세계 인터넷 포럼(GIFCT)’과 협업해 테러 콘텐츠가 확산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머스크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규제 완화만을 강조해 왔음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는 X가 가짜뉴스와 혐오 표현의 주요 발원지가 됐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책임론까지 함께 불거진 데 따른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