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세습’ 둘러싼 기아 노사의 팽팽한 줄다리기, 12일 파업으로 이어져

8월 시작된 기아 임단협, 14차 노사 교섭에서도 ‘제자리걸음’ ‘성과금 400%’ 임금 인상 안에도 “만족 못 한다”는 노조 10년 동안 고용세습은 없었지만, 근거는 남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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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노조가 12일부터 파업에 돌입한다고 11일 알렸다. 올해 임금 및 단체교섭 협상 중인 노사 대표가 지난 10일 열린 14차 교섭에서도 견해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지난 7월 시작된 교섭을 3개월 넘게 이어가고 있는 기아는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기아 노조는 12~13일, 17~19일에는 일일 8시간, 20일은 12시간 파업을 예고했다. 필수 근무자를 제외하면 생산 특근도 거부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실제 12일 파업 진행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파업 선언을 하며 제시한 “교섭이 진행되는 날은 정상 근무한다”는 단서를 달았는데, 당일 교섭 여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대급 임금 인상안에도 노조는 “수당 부족해”

이번 협상 결렬은 소위 ‘현대판 음서제’라 불리는 고용 세습 관련 조항에 대한 노조와 회사의 견해차에서 비롯됐다. 기아의 단체 협약에는 제27조 제1항에서 “재직 기간 내 질병 등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및 정년퇴직자 및 20년 이상 장기 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부모가 기아에 근무했다면 자녀에게도 입사 기회를 열어 준다는 것이다.

사측은 향후 5년간 기아 직원 자녀 1,000명에게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고 연내 신입 사원을 채용해 현재 재직 중인 직원들의 노동 강도를 낮추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해당 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지만, 노조는 이를 반대하며 조항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기아와 같은 그룹사인 현대차도 비슷한 조항이 있었지만, 2019년 노사 합의 결과 삭제됐다.

노사는 정년 연장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노조는 현행 만 60세인 정년을 64세로 연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측은 정년퇴직자를 계약직(최장 1년)으로 재고용하는 ‘베테랑 제도’ 방안을 내놨지만, 노조는 거부하고 있다. 임금 현안에서도 사측은 현대차 타결안을 참고해 기본급을 11만1,000원 인상하는 동시에 성과금 400%+1,050만원 및 전통시장 상품권 25만원 등 파격적인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수당 등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이 밖에도 노조는 신사업 및 신공장 확대, 복지제도 확대, 주 4일제 도입 등을 주장하고 있다.

8월 6일 기아 노사가 오토랜드 광명 본관에서 2023년 임금 및 단체교섭 상견례를 진행하고 있다/사진=기아

노동 당국 시정명령에도 노조는 ‘버티기’

기아 사측은 지난 2월 노조에 고용세습 관련 조항을 단협에서 삭제할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조항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균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하는 헌법과 고용정책기본법을 위반할 여지가 있다”고 해석하며 시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측은 고객과 국민들의 부정적 시선이 노사 양측에 모두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문제의 조항을 삭제하자고 요구했지만,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고용세습에 해당하는 채용이 단 한 건도 없었는데, 굳이 손댈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2개월이 넘도록 개선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노동부는 4월 기아 노사 양측을 입건했다. 최준영 기아 대표이사는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이례적으로 대통령까지 나서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고용세습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초 기아와 함께 시정명령을 받았던 59곳의 사업장 중 54곳은 시정을 마쳤고, 기아를 제외한 나머지 5곳도 뒤늦게나마 시정 절차에 나섰다.

사문화된 조항, ‘귀찮아서’ 방치?

하지만 기아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노조에서는 해당 조항이 이미 사문화된 만큼 개정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단협을 개정하려면 약 2만7,000명의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야 하는데, 절차상의 번거로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도리어 “사측이 노동자들의 고용 세습을 지적하기에 앞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내려오는 오너 일가의 경영 세습에 대해 먼저 해명하라”고 맞불을 놓기까지 했다.

이는 올해 1월 노동부의 개선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즉각 논의에 나선 금속노조 등과는 상반된 행보다. 당시 금속노조는 즉각 논의에 나섰고, 산재 조합원 가족의 우선채용 조항을 제외한 정년퇴직, 장기근속 등을 이유로 조합원 가족을 우선채용 하는 조항은 수정하는 데 뜻을 모았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 임단협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해당 조항의 수정만을 위해 찬반투표를 진행하는 것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올해 교섭에서 해당 조항을 수정하기로 했으며, 산하 조합 대부분이 이에 동의했다.

산업계와 노동계에서는 “사문화된 조항은 즉각 삭제하고 현실에 맞게 단협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금속노조의 뜻에 크게 동의하며 기아 노조의 주장에 공감할 수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창립과 성장, 안정을 이끈 창업주와 오너 일가의 경영세습과 일반 직원의 고용세습은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에서는 성장을 위해 최상의 인재들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고용세습은 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파업, 유능한 인재들의 취업 기회 박탈 등은 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직원들의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만큼 노조는 사측의 대화 요청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 상생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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