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늘어나면 학원가에 학생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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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 소식에 강남 대치동 일대 학원가만 북적
의대, 서울대 갈 확률 높아진다는 기대감 확산
수능 '한방' 전략, 반(半)수생도 크게 늘어

의대 정원이 늘어날 것이라는 소식에 학원가가 들썩거리는 모습이다.

지난 21일 서울 대치동 강남종로학원에서 열린 ‘겨울방학 특강(이하 윈터스쿨) 설명회’를 찾은 학부모 A씨는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혹시나 기회가 있을까 하고 학원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고 답했다. 특히 지방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합격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냐는 기대감에 다른 학부모들도 함께 자리를 찾았다는 설명이다.

의대 정원 증가에 학원 문전성시

종로학원이 21일 온·오프라인으로 개최한 설명회에는 무려 4,300여명의 학부모가 참석했다. 종로학원 측은 지난해 1,196명에 불과했던 설명회 참석자가 4배가량 증가했다면서, 이유는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합격 가능성 상향이 주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예약자의 절반도 참석하지 않던 행사에 이번에는 80%가량의 인원이 참석한 것은 입시를 포기하고 있던 학부모들이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다.

자리를 찾은 학부모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대 가능성이 낮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있었으나 지방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생각을 바꿔도 되지 않겠냐는 것이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여전히 의대 합격 가능성이 낮은 그룹군의 학생들도 서울대 등의 속칭 상위권 대학에 합격률이 덩달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 의대 정원 확대가 낳을 파장이 크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대치동 일대의 한 학원가 관계자는 “이번 정부 들어 ‘킬러 문항’에 대한 제한도 강화되고 의대 정원도 늘어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 학부모들이 여러 차례 문의를 보내왔다”며 “국내 대학 입학 구조상 학원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찾으려는 학생, 학부모들이 많은 만큼, 정원 확대는 대치동 일대 학원가에 호재”라는 설명이다.

학령 인구 줄어드는데 의대 정원은 늘린다?

저출산 여파로 학령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중에 의대 정원까지 늘어날 경우, 대학 입학 문이 더 활짝 열릴 것이라는 것이 대치동 학원가의 분석이다. 특히 지난 20여 년간 수시모집이 강화되면서 축소돼 왔던 수능 시험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주요 대학의 경우, 수시 모집 경쟁률은 높아지고 정시 경쟁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상위권 대학에서 수시 모집을 통해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으로, 정시 입학 문턱은 상대적으로 과거보다 낮아졌다. 정시 모집 경쟁이 약화된 만큼 의대 정원이 늘어날 경우 수능으로 이른바 ‘한방’을 노리는 전략이 크게 주목을 받게 됐다.

이어 대학 입학 후 다시 수능 시험을 치르는 ‘반(半)수’ 열풍도 크게 증가세다. 올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접수자 기준 반수생은 무려 8만9,642명으로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덕분에 학원가에 몰리는 학생들의 숫자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겨울 방학 동안 압축 강의가 진행되는 ‘윈터 스쿨’의 경우 강남 일대에는 대부분 좌석이 없어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대치동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치동 일대에서 10여 년간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수학 강의를 해 왔다는 L모씨는 의대 정원이 10% 늘어날 경우 강남 일대의 학원가에 몰리는 학생 숫자도 최소한 20%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가 학원가에 널리 퍼져있다고 답했다. 학령 인구가 감소해 학원을 접으려던 일부 강사들도 의대 정원 확대 소식에 거꾸로 학원을 이어가겠다고 생각을 바꾼 사례도 있다는 설명이다.

의대 정원 논란, 결국 대한민국이 ‘의대 공화국’ 됐다는 것

서울 K대학에서 정년 퇴임을 앞둔 A모 교수는 이번 의대 정원 논란이 결국 한국 사회가 ‘의대 공화국’이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을 내놨다. 의대 정원이 확대된다는 이유로 폐업을 준비하던 학원가가 다시 영업을 재개하고, 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학원을 찾지만 정작 수능 점수 향상 이외에 다른 목적의 공부는 전혀 관심이 없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의 국내 초명문대로 평가 받는 대학들에 합격하고도 의대로 떠나는 경우가 2000년대 초반부터 비일비재하게 나타났던 것이 최근에는 의대 정원 증가 덕분에 서울대 합격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는 수준에까지 이른 것도 함께 지적했다. 의대가 진학의 최우선 목표가 됐다는 것은 한국 대학들이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인증한 ‘라이선스’를 얻을 수 있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은 의대 정원에 대한 논의를 넘어 한국 대학들이 어떻게 인재를 만들어 시장에 공급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명문대에서 전공 공부를 하는 것보다 지방 의대에서 라이선스를 받는 것이 훨씬 더 선호되는 상황이 된 것은 그만큼 다른 전공에 대한 인생의 기대 수익이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교육은 교육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와 함께 연결해야 생각해야 한다는 영국 지식인 버트런드 러셀(Bertand Russell)의 표현을 상기해야 한다”며 “의대 정원 문제 뒤에 숨어있는 한국 대학들의 교육 수준 문제, 기업들의 인재 활용 문제 등을 복합적으로 바라보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고쳐야 학령 인구가 줄어드는 다음 세대가 합리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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