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 ‘브로드컴-VM웨어’ 인수합병 가로 막은 중국 정부, 국가 간 분쟁에 등 터지는 반도체 기업들
브로드컴, “지난 8월 이후 중국 규제 승인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응답 없어” 전문가들, 대중 반도체 수출규제 확대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조치로 풀이 계속되는 미·중 분쟁, 장기적으론 미국 ‘반도체 업계 생태계’ 해칠 우려도
미국 반도체 칩 제조사 브로드컴의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VM웨어 인수합병(M&A) 건이 중국 정부의 승인 연기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업계 수출 통제 규정 강화에 대한 보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7일 중국에 대한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 수출 관련 추가 통제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에 미국 반도체 업계는 성명을 통해 정부의 과도한 규제 조치가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호소했다.
미·중 갈등에 따른 M&A 실패 사례 또 늘어나나
19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 확대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 당국이 브로드컴의 VM웨어 M&A 건에 대한 승인을 연기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M&A에 정통한 관계자는 “해당 거래에 대한 중국 외교부 및 국무원과의 추가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M&A 승인 절차에 대한 중국 외교부와 국무원의 개입은 정치적 의도를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브로드컴은 지난해 5월 VM웨어의 현금 및 주식을 690억 달러(약 93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유럽연합(EU), 캐나다, 브라질 등 9개 관할권에서 반독점 규제 관련 승인을 받았다. 브로드컴 관계자에 따르면 두 회사는 지난 8월 21일 중국을 포함해 필요한 규제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달 말까지 무사히 M&A 거래를 마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인수 제동 우려가 확산되면서 브로드컴(AVGO)과 VM웨어(VMW)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이날 종가 기준 VM웨어의 주가는 9.59% 하락한 150.31에 거래됐으며 장중 145.59까지 하락했다. 브로드컴의 주가도 2.16% 하락한 867.83달러를 기록했다. FT는 “이번 거래가 무산될 경우 2018년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가 실패한 이후 5년 만에 또 다른 미·중 갈등에 따른 거래 실패 사례가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연이은 규제에 보복과 비판 거세진 중국
중국의 이번 대응은 그간 미국이 대중 반도체 수출규제 확대 방침을 발표한 데 대한 보복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첨단 반도체 장비와 인공지능(AI) 칩 등의 중국 수출을 제한한 데 이어 지난 17일 해당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상무부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고사양 칩인 A100과 H100을 대중 수출 제한 품목으로 지정한 바 있으며, 이번 추가 규제에선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저사양 AI 칩인 A800 및 H800까지 포함했다.
미국이 추가 규제까지 발표한 이유는 최근 기술 관련 안보 문제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중국이 미국의 첨단 기술을 군사적 용도로 사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저사양 칩만으로 중국이 AI 기술 발전 시도를 꾀할 수 있는 점까지 원천 차단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의 이번 추가 규제 조치가 일대일로 10주년을 맞아 진행 중인 정상포럼 기간에 발표됐다는 점에 더욱 불쾌해하는 모습이다. 이날 주미 중국대사관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자의적 통제나 강제적 탈동조화를 모색하는 일은 시장경제 원칙과 공정경쟁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전날 미국의 추가 제재 가능성이 거론된다는 기자의 질문에 “무역과 기술 문제를 정치화하고 무기화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반도체 기업들은 ‘불안’
미국 상무부의 이번 추가 통제 조치는 미국 반도체 업체들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미국 반도체 업계의 주요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엔비디아의 중국 매출은 20%를 웃돌며,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마이크론도 16%가 넘는 매출이 중국으로부터 나왔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추가 통제 조치가 발표된 이날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PHLX) 내 30개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은 전날보다 약 730억 달러(98조7,500억원) 줄었다. 특히 엔비디아는 4.68% 하락하며 시총 533억 달러(73조1,000억원)가 증발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단기적으론 실적에 큰 타격은 없을 거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과도한 통제가 궁극적으론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최근 성명을 통해 “(정부의) 과도하고 일방적인 통제는 해외 고객 수요를 줄어들게 하고,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면서 “이는 결국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도 계속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규정에 변화를 주며 중국을 지속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AI가 적절치 못한 국가와 군대에 사용되면 결과적으로 엄청나고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다”면서 “정부의 규제는 중국 정부의 군-민 일체 전략으로 발생하는 국가 안보 위협에 맞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