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대기업도, 부동산도 없다” 취업 기피하는 청년 ‘니트족’들
정부, 사회 활동 기피하는 '니트족(쉬었음 청년)' 고용 대책 마련 너도나도 대기업 취업 도전하는 청년들, 버거운 '실패'의 무게 "벌어봤자 의미 없다", 끊어진 부의 사다리에 무력감 느끼기도
정부가 내년 민간·공공부문 청년인턴을 내년에는 7만4,000명 규모로 늘리고, 맞춤형 고용서비스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백수’를 자처하는 청년들을 고용 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방안을 발표, 총 9,500억원대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청년들은 대기업 취업 실패, 임금 근로의 한계 등에 절망하며 근로 의욕을 상실, 속속 사회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막막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이들도 상당수다. 이들은 사회 활동을 일체 거부하는 청년들, 소위 니트(NEET)족이라고 불린다. 정부의 지원책은 과연 이들을 사회로 유인할 효과 좋은 ‘미끼’가 될 수 있을까.
‘청년이여, 사회로 돌아오라’ 국가의 유인책
니트족이란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앞 글자를 딴 단어로, 말 그대로 교육·고용·훈련 등 일체의 사회 활동을 거부하는 청년을 의미한다. 이는 일할 의사가 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실업자,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하는 프리터족과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실업자 기준으로 산출하는 ‘실업률’에는 니트족이 포함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명백한 국가의 잠재 인력이다. 니트족이 증가할 경우 자연히 고용 시장 전반이 침체할 수밖에 없다.
실제 청년층 고용률은 국내 고용 시장의 회복세를 역행하고 있다. 10월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고용률은 63.3%로 21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실업률도 2.1%로 역대 최저다. 반면 20대 이하 청년층의 고용률은 46.4%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하락했다.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데도 그냥 일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 즉 니트족의 수는 36만6,000명에 달했다. 이에 정부는 이들을 고용 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유인책을 마련했다.
우선 정부는 내년에 청년들이 선호하는 ‘인턴 기회’를 총 7만4,000명에게 제공한다. 민간 부문에서 4만8,000명, 공공 부문에서 2만6,000명에게 인턴 기회가 제공된다. 또 국가 기술 자격증 응시료를 할인해 취업 활동을 장려하고, 구직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구직 인센티브를 늘린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시험 도입했던 ‘맞춤형 고용 서비스’도 직업계고와 일반계고 비진학 청년 대상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좁디좁은 대기업의 문, 청년들의 절망
니트족이 취업을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청년층이 생각하는 ‘취업’의 기준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들이 기대하는 급여 수준, 사회적 인식 수준이 역량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청년 구직자는 대기업, 공기업 등을 목표로 삼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 상반기 진행한 ‘청년세대 직장 선호도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장은 △대기업(64.3%) △공공부문(공공기관, 공무원 등)(44.0%) △중견기업(36.0%) 순이었다. 중소기업 취직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15.7%에 그쳤다.
하지만 모두가 입사를 희망하는 삼성전자, 카카오 등 ‘대기업’은 전체 기업의 0.1%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인재는 극히 소수며, 이외 구직자는 중견·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미다. 치열한 경쟁 끝에 실패를 맛본 청년들은 본인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 취업하거나, 다시 대기업 취업에 도전한다고 해도 이 같은 실패의 ‘씁쓸함’을 지워내기는 어렵다.
결국 실패를 이겨내지 못하고 불안과 우울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20~30대 우울증 환자는 15만9,000명에서 31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활발하게 사회에서 활동해야 할 수많은 청년이 절망감과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의미다. 살기 위해 사회에서 도망쳐나온 이들은 교육도, 구직도, 취업도 기피하며 니트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월급으로는 택도 없다, 근로 의욕 상실한 청년들
‘임금 근로만으로 부를 축적하기는 어렵다’는 무력감 역시 청년 취업 기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부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근로 의욕을 저하하는 것이다. 2021년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모너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0.4%는 ‘노력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의 부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응답했다.
청년들은 근로 의욕을 저하하는 뉴스로 부동산 폭등(24.7%·복수응답)을 꼽았다. 특히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의 경우 29.2%가 부동산 폭등 소식이 근로 의욕을 저하한다고 답했다. 물가 상승(21.5%), 세금 부담(20.4%) 등의 소식도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물가로 인해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청년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들려오는 ‘일확천금’ 사례들도 무기력감을 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부각됐던 청년층의 ‘영끌’ 투자 기조 역시 이 같은 인식을 뚜렷이 보여주는 사례다.
업계에서는 국내 인력 및 기업 수준이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생산성이 월등하게 뛰어난 ‘인재’도, 인력을 적절히 활용해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업’도 현저히 적다는 것이다. 지지부진하고 정형화된 시장에 ‘혁신’은 없다. 결국 역량 부족으로 인해 형성된 비효율적인 구조가 청년들에게 무기력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청년들은 아무리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해도 꿈꾸던 대기업에는 입사할 수 없고, 죽어라 일해도 ‘현상 유지’일 뿐이라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 같은 현실을 견디지 못한 청년들이 하나둘 니트족이 돼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청년 고용 지원책에는 과연 이들을 세상으로 복귀시킬 만한 힘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