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된 ‘정년 연장’, 청년과 노인 사이 정부 역할론 ‘급부상’
한국노총 경사노위 복귀, '정년 연장' 논의 재점화 '계속고용'에 방점 찍는 정부, 노동계는 "그런 건 안 돼" "제도 정비 우선돼야, 단계적 성과 이룰 필요 있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복귀해 노동 현안을 논의하기로 하면서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화했다. 생산연령인구(15~64세) 급감에 따라 고령층 인력 활용 필요성이 높아진 상황을 반영해 한동안 공전했던 논의를 다시금 이어가잔 취지다. 다만 정년 연장 논의를 바라보는 정부는 다소 난처한 입장이다. 노인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 사이의 상관관계와 이에 따른 세대 간 격차 문제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노인 인력 활용도 높여야, 정년 연장 논의 필요”
15일 노동계에 따르면 경사노위는 이르면 내달 초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김문수 경사노위원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과 함께 하는 노사정 간담회를 연다. 한국노총 복귀 후 경사노위 노사정 간담회 첫 안건으로는 정년 연장을 다룰 가능성이 크다. 노사정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근로시간 개편안 대신 한국노총의 주요 관심사인 법정 정년(60세) 연장을 먼저 다뤄 성과를 도출해 보겠단 의지를 내비칠 것이란 의견이다. 정부도 정년 연장을 포함한 계속고용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9년 고령자 계속고용제도 도입 카드를 먼저 제시했으나 경영계가 난색을 표하면서 한발 물러선 바 있다.
고령자 계속고용제도는 기업에 60세 정년 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연장 의무를 부여하는 것으로, 고용 방식은 재고용·정년 연장·정년 폐지 등에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법상 정년을 직접적으로 연장하는 건 아니지만 우회적인 방식으로 60세 이상 고령층이 정년 이후에도 일할 수 있도록 하면서 사실상 정년 연장과 같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계속고용 방안은 현재 경사노위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경사노위는 지난 7월 초고령사회 계속 고용 연구회를 발족하고 정년 뒤 재고용 등 안건을 논의해 왔다. 다만 한국노총이 불참하면서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반쪽’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저출산 및 고령화 가속화로 일손 부족 상황이 악화하면서 노인 인력 활용도를 더욱 높여야 할 필요성이 강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는 올해 약 3,637만 명에서 2030년 3,381만 명으로 7년 새 256만 명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인구에서 생산인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70.5%에서 66%로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정년 연장 및 계속고용 논의가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다만 향후 정년 연장 논의가 수월하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고용·임금체계 개편 등 고령층과 청년 간 고용 충돌 가능성이 높고, 정년 연장에 따라 기업이 떠안아야 할 부담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직무에 따라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직무급제를 확산하는 것이 먼저라는 공감대가 경제계는 물론 정부 안팎에도 쌓여 있다. 직무급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연공급)와 달리 각자 맡은 직무의 난이도와 책임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정하는 임금체계다.
시각차 분명한 정부-노동계
정년 연장 논의 뒤편엔 국민연금 수령 연령에 대한 고려도 깔려 있다. 국민연금 수령 연령은 현재 63세인데, 이는 2028년 64세를 거쳐 2033년부턴 65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그러나 현행 법정 정년 나이는 만 60세에 불과하다. 10년 뒤엔 월급도, 연금도 없는 기간이 5년까지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에 한국노총은 지난 9월 국회 국민청원을 시작했다. 현행 고령자고용법 제19조에서 명시한 정년 60세를 65세 이상으로 늘리되 국민연금법에 따른 노령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일치하도록 단계적으로 적용하자는 게 골자다. 한국노총이 낸 국민청원의 동의 인원은 빠르게 5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연금 수령 연령 연장 등 각종 문제의식 아래 노령층의 정년 연장 열망이 높아졌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정부 또한 논의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노동계와의 시각차가 분명하다. 정부 측은 정년 연장보단 계속고용 등 ‘재고용’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노동계는 이 방안에 부정적이다. 재고용 형태로 고령 인구의 일자리가 유연화되면 결국 노인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고 임금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마냥 법적인 정년 연장을 추진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노인 일자리가 늘어날수록 청년층 취업난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또한 “정년 법제화로 혜택을 받은 고령 근로자가 많아지면서 청년층 취업난이 심화했고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더욱 격화했다”며 “법정 정년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는 법·제도 정비 등의 과제 등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경총 임영태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10년 전 정년 60세 법제화의 상흔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법정 정년을 지금보다 더 연장하는 건 아직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더 큰 좌절감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렇다 해서 노인 일자리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극심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근본적인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력 수입까지 고려해야 할 상황에서 업무 능력이 있음에도 일을 하지 못하는 인구는 국가 차원에서 엄연한 ‘손실’이다. 노인 일자리 문제가 꼭 정년 연장을 통해 해결돼야 할 문제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최소한 정년 연장 등 노동계의 요구에 대한 사회적 대화는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도 접점이 많은 안건부터 논의를 시작해 단계적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반복된 노정 갈등에 대화 주체 간 신뢰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논쟁의 소지가 많은 안건보다는 제도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큰 안건부터 한 발씩 나아가야 한다. 한국노총의 대화 복귀 계기가 됐던 근로시간제 개편은 보이는 것보다 접점이 많은 만큼 이 안건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