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금지로 인한 주가 폭등과 한국 금융시장의 MSCI 선진국지수 편입
정부 공매도 금지 선언에 개장부터 폭등세, KOSPI 5.66%, KOSDAQ 7.34% 상승 KOSDAQ은 한때 사이드카 발동해야 할 만큼 가파른 상승세 보이기도 글로벌 투자 전문가들 "한국 시장이 선진국 클럽 자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
지난 5일 정부가 6일부터 내년 6월까지 공매도 일시 금지를 전격 선언하자 6일 주식 시장이 개장부터 폭등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 종합주가 지수는 5.66% 오른 2,502.37로 마감했고, 코스닥은 무려 7.34% 상승한 839.45로 마감했다. 코스닥은 장 초반 주가 폭등에 3년 5개월 만에 사이드카를 발동하기도 했다. 코스닥 사이드카는 코스닥150선물 가격이 기준 가격 대비 6% 이상 상승하고 코스닥150지수가 직전 매매거래일의 최종수치 대비 3% 이상 상승해 동시에 1분간 지속되는 경우 발동되며 5분간 프로그램 매매가 정지된다. 시장 관계자들은 특별한 재료가 없었던 만큼, 공매도 금지가 시장 전체에 기대감을 크게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가 폭등 원인은 공매도(Short-sale) 금지?
금융시장 전문가들이 6일 주가 폭등 원인으로 공매도를 지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매도 잔고 비중이 높았던 이차전지주들이 대규모 상승폭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상위 10종목에서 LG에너지솔루션(22.76%)은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되찾았고, 포스코퓨처엠(29.93%)은 상한가까지 치솟았다. POSCO홀딩스(19.18%), 삼성SDI(11.45%), LG화학(10.62%)도 급격히 올랐으며, SK하이닉스(5.72%), 현대차(2.6%) 등도 강세 마감했다.
주가 상승과 함께 외환시장도 크게 움직였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22.4원)보다 25.1원 낮아진 1,297.3원에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 밑에서 마감한 것은 3개월 만이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지난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사실상 금리 인상 종료 선언이 주식 시장 및 외환 시장에 반영이 덜 됐던 데다 주말 사이의 공매도 금지 결정을 시장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의 시장 참여를 자극할 수 있는 ‘재료’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이차전지주, 건설주 등이 지난 수년간 반복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공매도를 당하면서 주가 상승에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이번 결정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한국 증시 저평가)’가 개선되는 데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공매도 금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반면 정부의 기습적인 공매도 금지 조치가 글로벌 투자자들의 발길을 끊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세계적 투자전문가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6일 “(한국 정부의) 공매도 금지 조치는 실수(mistake)”라며 “이런 바보 같은 짓(foolish things)을 계속하기 때문에 한국은 메이저 국제 금융 중심지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간 로저스 회장은 국내의 공매도 금지 주장에 대해서 금융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며 필요성을 일축해 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 A씨도 “이번 결정은 한국 금융 시장이 얼마나 후진적인 시장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학부 2~3학년 때 배우는 기초적인 금융시장 이론을 어기니, 시장이 폭등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금융시장의 투자 주체들이 글로벌 선진국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주가 하락 우려를 시장에서 소화시킬 수 없도록 공매도 제도를 금지한 만큼, 앞으로 해외 시장에서 파생상품이 등장하거나 국내에서도 장외 거래 상품이 나타나 오히려 시장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월가 투자 경력이 있는 한 관계자 B씨 역시 “시장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을 경우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공매도의 역할”이라며 “자칫 시장에서 ‘테마주’ 등으로 주가 부양, 주가 조작 등이 활개를 치게 만드는 제도적 실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국내에서 그간 공매도 금지 목소리가 높았던 이유 중 기관 투자자와 개인 투자자 간의 공매도 접근성에 대한 격차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냐는 지적에도 “기관 투자자들이 특별히 더 주가 하락에 베팅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며 “본질적으로 국내처럼 테마주 위주로 주가 움직임이 ‘폭탄 돌리기’ 성향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시장일수록 공매도를 통한 시장 내의 주가 조정 메커니즘이 반드시 작동해야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러니까 MSCI 선진국지수에 진입 못한다?
로이터통신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요인 중 하나로 공매도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꼽고 있다며, 이번 조치로 한국 자본 시장의 선진 시장 진입이 늦어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MSCI는 지난 6월 한국을 선진국지수에 편입하지 않으면서 그 이유를 제한적인 공매도 조치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도 선진 금융 시장에서 당연히 여겨지는 공매도 제도가 국내에서는 그간 정치적인 의사 결정, 금융시장에 대한 몰이해, 투자자들의 짧은 시야 등의 이유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는 점을 인정한다. B씨는 국내의 테마주 행태와 공매도 정책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반발을 해외 시장 동료들에게 공유하면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같은 기관이 시장 조작 행위 감시 안 하냐?’는 황당한 질문을 먼저 받는다며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도구가 시장을 왜곡한다고 주장하는 여론이 먹히고 있으니 MSCI 선진국지수에 진입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A씨도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은 정부뿐만 아니라 여의도 증권가 전체의 희망사항”이라며 “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 주가에 대한 신뢰도를 심어줄 수 있어야 정보가 부족해도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을 텐데, 한국이 이렇게 공매도 금지로 주가가 폭등하는 나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해외 기관 투자자들이 더더욱 한국 시장에서 고개를 돌릴 것”이라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