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도 ‘영화’다? 영비법 개정안, 영화 업계 득인가 실인가
영화진흥위원회, OTT와 비디오물 '영화'로 흡수하는 '영비법 개정' 필요성 주장 말라붙은 영화발전기금 확보하고 시장 변화 법률에 반영하겠다는 취지 "논의서 제외당했다" 영화 업계 반발, 기존 영화시장 관습 붕괴 우려도
영화진흥위원회가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와 OTT 온라인 플랫폼 영화(OTT 콘텐츠)의 통합 개념을 제시했다.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에 따른 영화와 비디오물의 이원 체계를 통합, 영화 정의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영비법 개정안이 기존 영화계의 질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비디오 개념 통합해야’, 영비법 개정안 발의
현행 영비법은 2006년 ‘영화진흥법’과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중 비디오물에 관한 부분을 통합한 것으로, 영상물에 대한 유통 방식의 차이로 영화와 비디오물을 구분하고 있다. 특히 영화의 경우 ‘영화 상영관 등의 장소 또는 시설에서 공중에게 관람하게 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으로 정의돼 유통 방식이 한정돼 있다. 영진위는 이 같은 정의가 OTT 서비스 등 1대1 영화 소비가 많은 콘텐츠 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구시대적 법적 규율로 인해 영상산업과 영화산업이 발전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전국의 영화 제작 및 유통 지원과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등에서 영화인 발굴을 위해 쓰이는 영화발전기금(영발기금)은 매년 500억원대를 유지해 왔으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관 수입이 급감하며 지난 2020년 이후 100억원대까지 쪼그라들었다. 당장 올해 말이면 영발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법률 개정을 통해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진위는 OTT 콘텐츠가 새롭게 등장해 영화와 비디오물 간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판단, 영화의 개념을 “연속적인 영상이 필름 또는 디지털 매체에 담긴 저작물로써, 영화 상영관 등에서 상영하거나 판매나 대여 또는 정보 통신망을 통하여 시청에 제공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으로 새롭게 규정했다. OTT 콘텐츠와 같이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제작물도 영비법상 영화로 간주할 수 있도록 ‘영화’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극장 위기로 영화 산업이 더는 극장 중심이 아니게 됐다”며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영비법 개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 업계 “영화계 질서 무너진다”
그러나 영화 업계에서는 영비법 개정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다. 영화계 현장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법안이 제출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영비법 개정안 작성 및 발의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영화인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는 단 한 번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들은 법률 개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업계 관계자들이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기존 영화계 전반에 자리 잡은 질서를 뒤흔드는 개정안이 등장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독립영화다. 영비법에서 비디오의 개념이 사라질 경우, 독립영화는 등급 분류체계에서 소외된다. 극장 개봉 영화는 영화 심의를 받고, 자체 독점 콘텐츠를 지향하는 OTT 콘텐츠는 자체 등급 분류를 진행한다. 극장 개봉 사례가 적은 독립영화는 지금껏 ‘비디오물 심의’라는 대안을 통해 등급을 분류받아 왔다. 비디오물의 개념이 영화로 통합될 경우 하나뿐이었던 대안마저 사라지는 셈이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 등 오프라인 환경을 기반으로 유통되던 독립영화가 OTT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OTT 플랫폼은 별다른 규제 없이 시청 시간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한다. 수요가 적은 독립·예술영화 편성은 OTT 입장에서 별다른 메리트가 없는 셈이다. 이에 업계는 독립영화 편성이 아예 이뤄지지 않거나, 편성료가 하향 평준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OTT 플랫폼이 영발기금 규정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재정 수입 증가 여부가 불확실한 가운데, 지출은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영비법 개정이 가뜩이나 말라붙은 영발기금의 고갈을 촉진하고, 기존 사업의 부담을 가중할 위험도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OTT가 투자, 배급, 상영 등과 관련한 표준계약서, 영상 자료 보존 등 국내 영화계에 마련된 ‘질서’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OTT와 관련한 각종 규제가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무작정 영화와 그 개념을 통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