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겨냥 ‘디리스킹’ 전략 시사한 바이든, 새로운 궤도 오른 美·中 패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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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리스킹'으로 대중 유화 메시지 보낸 美에, 中은 '불편'하기만
'탈중국'과 맞물리는 디리스킹 전략, "사실상 말려 죽이기"
다변화된 美 셈법, "의도 파악해 외교 리스크 줄여야"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정상회담 자리를 갖고 있다/사진=조 바이든 대통령 X(구 트위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리는 중국 경제와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 위험제거) 및 다변화(diversifying)를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전략 기조를 공급망 등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입장을 재확인함으로써 유연한 태도를 거듭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중 디커플링? 이젠 ‘디리스킹'”

바이든 대통령인 16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회의에 참석한 기업인들 앞에서 “우리의 가치와 이익을 위해 일어설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미국이 중국과의 경제적인 완전한 단절을 원하지 않는다는 대중 유화 메시지로 읽힌다. 다만 한편으론 자국의 경제안보를 위해 일부 첨단기술에 대한 대중 수출 통제와 투자 제한을 지속하겠단 뜻을 재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이어갈 것임을 역설했다. 그는 “공정하고 평등한 경제환경을 유지하고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미국과 중국은 분명히 이견이 있다”며 “우리는 중대한 국가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조치를 취하면서 현명한 정책과 강력한 외교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도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을 공식화한 바 있다. 디커플링은 기존의 틀을 아예 바꿔 중국을 배제하자는 의미다. 대국굴기로 타국에 경제적 강압을 하는 중국을 제외하고 공급망을 재편에 사실상 국제적 왕따를 시키겠단 것이다. 반면 달리 테러·돈세탁 제재와 관련해 주로 쓰였던 용어인 디리스킹은 중국발 위험 요인 제거에 방점이 찍혀 있다. 디커플링에 비해 압박의 강도 자체는 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디리스킹에도 반발하는 모습이다. 디리스킹과 디커플링 둘 다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신화통신은 논평을 통해 미국이 ‘기만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규정하기도 했다. 신화통신은 “디커플링이란 단어를 디리스킹으로 바꾸는 건 오래된 와인을 새 병에 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둘 다 결국 중국을 봉쇄할 목적으로 타국에 강요하는 행위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디커플링보다 무서운 디리스킹

디리스킹의 ‘압박 강도’ 자체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중국 입장에서 오히려 미국의 디리스킹 전략이 디커플링 전략보다 더 위험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비유하자면 디커플링은 후퇴 없는 정면 승부와도 같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한쪽에서 무역 보복에 나서면 그에 맞먹는 또 다른 보복 조치로 맞대응하며 전면전을 펼쳤다. 자신도 상처를 입지만 경쟁자에겐 더 큰 상처를 입혀 쓰러뜨리는 일종의 ‘치킨 게임’을 이어간 셈이다. 반면 디리스킹은 간접적인 압박을 통해 상대를 ‘말려 죽이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권위주의적 조치로 미국을 겁박하려 들 때 디리스킹 전략을 취한 미국은 동맹 네트워크가 두텁게 구축된 국제사회로 이 문제를 끌고 나와 중국을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다. 실례로 지난 5월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시켰을 때 미국은 전처럼 즉각적인 보복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메우지 않도록 압박했다. 제재에 나선 중국이 오히려 공급 부족에 빠져 곤란에 처하도록 동맹국을 앞세워 힘을 빼놓은 것이다.

앞서 지난 4월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디리스킹은 탄력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특정 국가의 강압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중국이 공급망을 인질 삼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모두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최근 불어온 ‘탈중국’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디리스킹 전략에 중국도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중국은 지난 7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깜짝 초대해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을 주선한 뒤 “중국과 미국의 공동 번영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내보냈다. 디리스킹을 두고 미국과 동맹,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 내부에서 단일대오를 이루지 못하게 하려는 중국의 맞대응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외교에 대해 미국과 동맹국의 입장이 다르고 미국 내에서도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는 허점을 찌른 것으로 평가된다.

미중 패권 경쟁의 시대, “美 셈법 파악해야”

‘미중 패권 경쟁’의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지난 2018년 미중 무역 분쟁으로부터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무역을 넘어 패권의 범주에서까지 부딪히고 있다. 지난 5월 발표된 G7 공동성명에서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이 타이완과 티베트, 신장 지역을 모두 언급하며 “어떠한 힘이나 강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힌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양국은 마냥 경쟁만 하는 사이는 아니다. 긴밀한 물밑 협력도 함께 전개하고 있다. 일례로 양국의 교역액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22년 양국의 교역액은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한 6,906억 달러(약 895조원)로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는데, 이는 미중 무역분쟁이 시작된 2018년의 교역액을 뛰어넘는 수치다. 또한 미국은 중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이자 4대 수입대상국이며, 중국도 미국의 3대 수출대상국이자 최대 수입 대상국이다. 

투자 측면에서도 양국의 디커플링은 보이지 않았다. 2021년 미중 무역분쟁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탈중국 논의는 높았으나, 정작 세계 자본은 중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중국의 미국 투자도 활발하다. 미국 정부는 자국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중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고 있지만, 2021년 중국의 해외직접투자 중 미국의 비중이 가장 크며, 중국의 최대 투자 지역도 미국이다. 미국을 잇는 2위는 호주인데, 중국의 대미 투자 비중은 호주의 2배 이상에 달한다. 미국이 앞에서 디리스킹을 직접 시사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전략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과의 협력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대중 견제를 이어가고자 하는 미국의 심리가 표출됐다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미국과 중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경쟁과 협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과거 영국과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한 과정을 예로 들며 “향후 미국은 ‘하드파워도 대표되는 경제 규모’에서 중국의 역할론을 기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력은 국방 능력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높은 구매력을 통해 다른 국가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중국이 곧 미국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중국의 뛰어난 구매력을 동원해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는 의미다. 소프트파워로 대표되는 국제규범 창출 및 재편 능력도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혔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와 UN 창설을 주도하며 세계 패권국가로 부상했으며, 현재까지도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IMF 및 세계은행의 최대 지분율 등을 바탕으로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이끌고 있다. 중국 또한 일대일로 구상을 발표하고 상하이협력기구,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을 설립하며 국제규범 재편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국가판 브랜드 가치라 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는 장기간 미국의 우위가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진다.

패권 경쟁의 핵심 요소로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결합된 기술혁신 분야가 꼽혔다. 영국과 미국은 각각 1, 2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며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라선 바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중국은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며 반도체, AI, 전기차 등 최첨단 분야에서 미국의 기술력 추격을 선언했지만, 오히려 ‘미중 무역 분쟁’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최근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에 대한 대중국 견제에 집중하고 있다. 작년 10월엔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했고, 이에 네덜란드와 일본을 동참시키기도 했다. 이로 인해 중국 반도체 산업이 실질적인 타격을 입은 만큼, 중국이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단기간 좁히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삼성전자의 중국 내 반도체 설비 수출을 허용하면서 미국의 ‘셈법’에 다소 변화가 생겼음이 은연중에 드러났다. 미국이 시사하고 나선 디리스킹에 대한 의도와 가능성을 명확히 해석함으로써 외교 리스크를 줄여 나가는 게 중국 및 여타 국가 차원의 가장 큰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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