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안 가리는 ‘소아과 전문의 부족’ 문제, “‘선배격’ 日 본받아 돌파구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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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경쟁률 0.01:1, '빅5'도 공백 못 피했다
정원 확대 및 재정 지원으로 버티는 獨·日, 업무량 감소에도 주력
국회 "효용성 있는 정책 필요한 시점, '패러다임' 변화 촉진해야"

최근 우리나라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소아청소년 환자 수 감소 및 직업의 미래지속가능성 감소, 극성 부모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향한 갑질 등 사회적 문제가 겹치면서 의료 공백에 더욱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이에 국회를 중심으로 일본, 독일 등 우리보다 앞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 문제를 맞닥뜨린 국가의 정책을 본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아의료 붕괴 현실화, 獨·日이 택한 자구책은?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이권일 교수가 한국법제연구원 이슈페이퍼에서 공개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 현상에 대한 외국의 대응 사례 및 시사점’에 따르면 독일과 일본은 의과대학 정원과 정부 재정 지원 확대 등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이 선택한 가장 기본적인 해법은 의대 지역 할당제다. 해당 지역 근무를 조건으로 의대 단계부터 소아청소년과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의대에 별도 정원을 배정하고 학자금을 지원하거나 장학금을 수여한다. 다만 독일 내부에선 이민과 의료 수요 증가를 감당하기에 부족하다며 의대 정원 자체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지역 소아청소년과전문의협의회 같은 의료단체도 최대 30%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장학생 출신 의사가 의무 근무 기간 중 지역을 이탈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재정 지원도 주요 정책이다. 독일은 소아청소년과 기피 원인으로 꼽히는 장시간 근무와 많은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시간제 근무가 가능한 공동병원 확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의료지원센터도 증설했다. 지역 의사 수급을 위해 대학 장학금은 물론 지역 내 소청과 의료기관에 취업한 전문의에게 정착 지원금을 추가로 주기도 한다. 일본은 3세 미만 소아 환자 초진·재진 진찰료를 성인의 최대 5배까지 가산 적용하고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200~500%, 종합병원은 125~150% 수준이다. 야간 진료는 330~550% 가산을 책정했다. 지난 2020년에는 소아 진료비 적용 대상을 3세 미만에서 6세 미만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日, ‘임신-출산-돌봄’ 연계 정책으로 ‘두 마리 토끼’ 노린다

특히 일본의 경우 지난 2019년 12월 제정한 ‘성육기본법’을 바탕으로 지난 4월 ‘어린이가정청’을 설립해 임신-출산-돌봄에 있어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미래연)이 20일 발간한 ‘일본 성육기본법 관련 소아의료 체계 소개 및 의의’에 따르면 일본은 성육기본법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보호자가 성육의 책임을 다하도록 지역과 연계한 정책을 내놓았다. 구체적인 제도 정비 대상은 소아초기응급센터·소아응급의료거점병원·소아구명응급센터다. 소아과 의료진이 전화로 상담하는 ‘어린이 의료 전화 상담 사업’도 대상에 포함됐다. 소아의료체제를 내실화해 어린이가 지역 내에서 신속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게 성육기본법의 목표다.

일본은 우선 주산기 의료 체계를 손봤다. 주산기 의료 집약화 및 중점화, 접근성 확보를 위해 고위험 산모와 그렇지 않은 산모에 적절한 의료서비스가 효율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회는 “일본의 정책은 위험 산모에 대해선 자원을 집약해 종합 주산기모자의료센터를 중심으로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불가피하게 분만 시설까지의 접근성이 약화된 지역에 거주하는 임산부에 대해선 지역 실정에 맞게 대응책을 강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며 “고위험이 아닌 분만은 기간의료시설 외 산과의료 기관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분리’를 취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주산기 의료 관련 협의회가 구성됐단 점도 눈에 띈다. 일본은 사회적 고위험 임산부에의 대응으로서 협의회를 설치해 임산부 지원을 강화했다. ‘재택 돌봄’도 활성화했다. 임산부를 위한 돌봄 체계를 병원에서 요양·보육을 위한 재택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장기 입원 아동이 재택으로 퇴원하기 전 해당 시설의 일반 병동이나 지역 의료 시설에의 이동 등 단계를 거치도록 했다. 돌봄의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서 아동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이외에도 일본은 ▲온라인 진료와 대면 진료의 병행을 통한 소아의료 접근성 확보 ▲소아의료 협의회 설치를 통한 지역의료 복지 강화 ▲아동 의료서비스 강화 및 의료서비스 연계성 제고 ▲소아응급전화상담서비스 추진 등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의 주산기 의료체계/출처=국회미래연구원

“소아의료 공백의 시작은 저출산, 정부 대책 마련 시급”

일본이 내건 성육기본법에 대해 미래연은 아동을 건강하고 성공적으로 키우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단 성육의 목표 아래 주산기 및 소아 의료체계를 정비했다는 데 우선적인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즉 단순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육성을 넘어 구체적인 의료체계 정비까지 함께 진행함으로써 관련 정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일조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의 정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역 내 의료역량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중증도 및 위험에 근거한 서비스 전달체계를 설정하고 취약 지역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단 것”이라며 “현재 우리나라는 주산기 및 소아 관련 의료취약지역 등에 대해선 정부가 실효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상황이니만큼 일본의 정책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의료법상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은 단 2곳뿐이다. 소아청소년과 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의료 전문지 데일리메디가 밝힌 ‘2023년도 하반기 레지던트 상급년차 소아청소년과 지원 현황’만 봐도 현 실태를 잘 알 수 있다. 데일리메디에 따르면 올 하반기 레지던트 상급년차 모집엔 44개 수련기관 소아청소년과 278명을 모집했는데, 이번 모집에선 전공의 선호도가 높은 소위 ‘빅5 병원’들도 씁쓸한 성적표를 받았다. 19명 모집에 나선 세브란스병원엔 단 한 명도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하지 않았으며,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도 각각 6명과 3명씩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0명이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지원 경쟁률은 약 0.01:1이다. 이에 일각에선 “소아의료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출산율 감소로 우리나라 내 아동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자녀 건강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져만 간다. 최근엔 소아진료의 특수성을 고려해 진료과 중 하나로만 받아들여지던 소아과도 ‘소아안과’, ‘소아치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신경과’ 등으로 세분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현장의 청소년소아과 전문의들은 소아 인구 감소로 인한 적자 발생과 소아 진료를 전담할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소아 전문 진료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존 제도에서 개선점을 마련할 수 없다면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해 소아청소년과 활성화 및 저출산 문제 해결을 함께 도모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소아의료 활성화는 미래를 준비하는 역량과도 같은 만큼 정부의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이 요구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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