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 드러난 디지털 강국 韓, “‘폭탄’만 돌리다 복원력도 상실”
행정전산망 장애에 시민 불편 '속출', '디지털 전환' 꿈꾸던 정부 어디로? '깜깜이 운영' 한계 드러나, 복원 능력 늘리는 데 주력해야 인력 수급 어려운 네트워크 엔지니어, "정부 차원 인력 육성 필요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 ‘시도새울’과 온라인 민원서류 발급 서비스 ‘정부24’가 지난 17일 일제히 멈춰 사회적 혼란이 속출했다. 이후 행정안전부는 긴급히 인력을 투입해 최초 장애가 시작된 지 사흘 만에 서비스를 복구했지만, 행정전산망이 갑작스레 멈춘 이유는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 표면상으론 ‘네트워크 장애’라고 밝혔으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단순 네트워크 장비 문제였다면 해결에 24시간 넘게 걸릴 이유가 없지 않냐”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디지털 정부를 표방하던 우리 정부 IT 역량의 민낯이 까발려지면서 정부의 ‘디지털 전환’에 의구심이 커졌다.
멈춰 선 정부24 시스템, ‘주먹구구식’ 전산망 문제 가시화
19일 행정안전부는 “18일 오전 9시부터 정부24 서비스를 정상 운영하고 있으며 19일 오전까지 24만여 건의 민원을 탈 없이 처리했다”고 행정전산망 정상화 사실을 알렸다. 새올 시스템도 이 무렵부터 정상적으로 로그인이 되고 있으나 행안부는 본격적으로 행정 업무를 재개하는 20일 오전이 돼야 안정화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가 운영하는 정부24는 가입자만 약 2,000만 명에 달하며,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해 모바일로 신청할 수 있는 서류는 371종에 이른다. 민원24가 정부24에 통합됐기 때문에 현재 각종 민원서류 온라인 발급은 정부24에서만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갑작스러운 서비스 운영 중단에 시민들은 적잖은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서비스 정상화 이후 행안부는 이번 장애의 원인에 대해 “새올 인증 시스템에 연결된 네트워크 장애였다”고 설명했다. 장애를 일으킨 장비를 교체한 뒤 서비스가 정상 작동했단 것이다. 그러나 IT 업계에선 “단순 네트워크 장비 문제였다면 해결에 24시간 넘게 걸릴 이유가 없다”며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김명주 서울여대 바른AI연구센터장은 “증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L4 스위치) 둘 다 문제였다는 행안부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두 가지는 서로 독립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행안부의 문제 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쏟아지면서 행안부 차원에서 내놓은 사후관리책도 같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전산망 사태에 대해 IT 업계는 유지·보수 비용을 제대로 들이지 않고 문제가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며 ‘폭탄 돌리기’를 하는 정부 IT 시스템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같은 ‘주먹구구식’ IT 시스템 문제가 비단 정부24에 국한된 게 아니라고도 강조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폭탄 돌리기식 정부 IT 시스템이 적지 않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소방본부의 긴급구조표준 시스템”이라며 “해당 시스템은 새올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중반 정부가 디지털 정부를 표방하면서 도입했는데, 정작 15년 이상 근본적인 보수 작업을 이루지 않아 언제 문제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작년부터 이 시스템 개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새올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보수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보니 진행이 더디다. 디지털 강국을 내세운 우리나라의 민낯이다.
디지털 전환 표방한 정부, 곳곳에 ‘시한폭탄’
결국 이번 사태는 정부가 ‘디지털’이란 이름 아래 곳곳에 시한폭탄을 두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 됐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디지털 정부의 ‘오점’이라 여기는 모양새지만, 언제든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단 점에서 이 문제를 가벼이 봐선 안 된다. 더욱이 정부는 최근 우리나라의 디지털 전환을 대내외에 홍보한 바 있다. 지난 6월엔 일본 국회의원 등이 서울 은평구를 방문해 무인발급시스템을 비롯한 선진 디지털 행정을 견학하고 갔으며, 주무부처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국외에 한국의 디지털 행정을 홍보하러 나갔다가 새올과 정부24 먹통 사태가 빚어지자 지난 17일 급작스럽게 귀국을 결정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욱 커진 이유다.
재발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사후관리책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나, 이와 관련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정부의 평가를 깎아 먹고 있다. 업계에선 정부의 폐쇄적 운영 방식부터 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공공부문의 디지털 혁신을 앞당기기 위해 ‘민간’ 역량을 육성하기로 했음에도 역설적으로 민간은 소외한 채 공공부문 활용도를 높여 화를 키웠다”며 “민간과 교류를 꺼리는 ‘깜깜이 운영’이 비상사태 발생 시 대응 능력을 떨어뜨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민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이틀이 넘도록 원인도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이제껏 북한의 사이버 공격 등을 여러 차례 받아오면서 관련 훈련을 실시하고, 대응 매뉴얼과 시스템도 갖춰놨을 텐데 왜 신속하게 복구를 못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도 백업 시스템을 가동해서 시민들 피해가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라고 거듭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민간에서도 인력 수급이 어려운 네트워크 엔지니어를 정부 차원에서 육성하고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네트워크 엔지니어는 현장에서 선호도가 떨어지는 직종 중 하나다. 업무 특성상 작업 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네트워크 업계 내에서 할 수 있는 분야가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현장 관계자는 “신입 입장에선 두 가지 분야에 대해 한 번에 배우고 익힐 수 있으니 업무를 자기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며 “그러나 10년, 20년 이상 네트워크 업계에 붙어 있을 경우 네트워크 한 분야에만 고착될 가능성이 있다.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개발자 입장에선 사실상 고립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력이 길어지면 해당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로 인식되게 마련이지만, 정작 네트워크 분야에 있어선 이들 ‘전문가’에 대한 대우가 부족한 편”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인력 양성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초거대 AI’ 꿈 물거품, 전산망 시스템 불신↑
앞서 정부는 공공부문 정보자원 1만3,276개를 오는 2030년까지 100% 클라우드 네이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초거대 AI’로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겠단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홈택스, 복지로, 고용24, 나이스, 가족관계등록 등 5대 기관 시스템을 정부24 등 한 곳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통합하고 인원 수용 풀을 늘려 갑작스러운 쏠림 현상에도 탈이 없도록 하겠다 자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초유의 민원 서비스 마비를 불러온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시민들은 적잖은 불편을 겪었고, 결국 정부의 전산망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결과가 초래됐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전산시스템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애초 시스템 장애는 IT 기술을 활용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흐름과 같은 만큼 이를 감안하고 복원력을 구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희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스템 문제가 바다 건너 우리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초연결 사회에서 IT 시스템 장애는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며 “100% 중 2%의 시스템 장애 가능성을 감안해 피해가 크지 않도록 복원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병걸 동양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오류가 발생할 수는 있다. 오류 발생 시 원인이 무엇인지, 언제 복구되는지 안내하면 국민이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할 수 있지만 이렇게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못하면 국민이 더 짜증을 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전산망 구축에 대한 패러다임을 변혁하고 나서야 한단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