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악재’에 비상 걸린 與, 정치권 ‘꼭두각시’로 전락한 가덕도 신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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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건너간 2030 부산 엑스포, 부산 현안 사업에도 '빨간불'
PK 민심 달래기 나선 정부여당,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불 붙나
'척력' 사라진 신공항 논의, '고추 말리는 공항' 재림하나
윤석열-엑스포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파리 한 호텔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대표 초청 오찬에서 오찬사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공식 페이스북 캡처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면서 가덕도 신공항 조기 개항 등 부산 주요 현안 사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으나, 부산 시민들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제대로 준비하지도 않은 엑스포 유치를 두고 언론에 ‘박빙’ 등 단어를 흘리며 기대하게 만들더니 결국 허상일 뿐이었냐며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여당은 가덕도 신공항 사업 추진 등을 통해 다시금 PK(부산·경남·울산) 지역 민심 잡기에 나섰지만, 이조차도 비판론이 쏟아진다. 사업 자체가 정치화되면서 건설적 논의가 사실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尹 “엑스포 유치 실패했지만, ‘균형발전’은 그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엑스포 유치엔 실패했지만 우리 국토의 균형발전 전략은 그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엑스포 유치 실패라는 악재가 터지면서 민심의 동요를 서둘러 차단하기 위함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는 2030 부산 엑스포 개최를 위해 가덕도 신공항을 2029년 12월 조기 개항하겠단 계획을 띄운 바 있다. 이 사업을 전담하는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설립 법안은 지난 10월 국회를 통과했고, 국토교통부는 내달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사업의 기본계획을 확정·고시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부산을 해양과 국제금융, 첨단산업, 디지털의 거점으로 계속 육성하고 굳이 서울까지 오지 않더라도 남부 지역에서 부산을 거점으로 모든 경제·산업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을 차질 없이 해 나가겠다”며 가덕도 신공항 계획 추진을 거듭 피력했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 강서구 가덕도 일대 육지와 해상에 걸쳐 총면적 666만9,000㎡ 규모에 24시간 운영되는 국제공항으로 건설하는 게 기본 골자다. 사전타당성 조사에서는 가덕도 신공항 공사 기간이 9년 8개월로 추산돼 2035년 6월 개항 계획이 제시됐지만, 정부와 부산시는 2030년 엑스포 유치를 위해 2029년 12월 조기 개항을 목표로 내세웠다. 엑스포 유치라는 단일한 목표 아래 가덕도 신공항 청사진은 빛을 보나 싶었지만, 결국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면서 신공항 건설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단 가능성이 제기됐다. 가덕도 신공항과 엑스포 개최 예정지인 부산항 북항 등 도심을 잇는 부산형 급행철도(BuTX) 건설 사업도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민간 투자 사업으로 추진하는 BuTX는 수소 전동차가 지하 40m 이상 대심도 터널을 초고속으로 운행해 가덕도 신공항에서 북항까지 18분, 기장군에 있는 오시리아 관광단지까지 33분 만에 이동하는 교통수단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었던 정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적지 않다. 애초 ‘안 될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벌려놨냔 비판이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부산 엑스포 유치는 단순히 부산만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울과 부산을 두 개 축으로 해서 우리나라의 균형 발전을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에서 보면 알려진 주요 도시로서 그 나라를 인식한다. 대한민국 하면 서울밖에 모른다”며 “그래서 부산을 알려야 되겠다. 2개의 축으로 세계에 알리고, 이것을 거점으로 해서 남부 지역의, 영호남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고자 했다”고 유치 노력의 의의를 설파했다. 총선을 앞두고 엑스포 특수를 기대했던 국민의힘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가덕도 신공항을 거듭 언급하며 PK 민심 잡기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정치화’된 가덕도 신공항 사업

다만 일각에선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지나치게 정치화되면서 사업과 관련된 건설적 논의가 정치 논리 아래 묵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의 정치화 논란은 가덕도 신공항이 다시금 급부상한 시점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당초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번번이 중앙정부의 벽에 막혀왔다. 지난 2011년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경제성이 미흡하단 이유로 백지화된 바 있다. 당시 가덕도 신공항의 BC는 0.7이 나왔다. BC는 ‘비용 대비 편익’의 약어다. BC가 1이 넘으면 비용보다 편익이 높아 경제성이 있다고 보는데, 가덕도 신공항은 이 기준을 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에도 가덕도 신공항은 불가 판정을 받았다. 당시 가덕도 대신 선택된 안은 김해공항 확장이었고, 가덕도는 밀양에도 뒤진 꼴찌를 기록하며 논의 대상에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 예타 결과 김해공항 확장안의 BC는 0.94였다.

그러던 2020년 문재인 정부 및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주도 아래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다시금 산소 호흡기를 달기 시작한다. 당시 이들이 내건 기조는 ‘균형발전’이었다. 이들은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지역개발 사업을 넘어 균형발전의 축이며, 균형발전은 서울시민의 삶도 개선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집중은 서울 과밀을 낳고, 과밀은 부동산과 교육의 무한경쟁을 낳으며, 무한경쟁은 삶의 질 저하를 낳는다”며 “균형발전 전략은 과밀을 해소하는 서울의 민생 전략이자 인구 전략인 셈”이라고 거듭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다만 공교롭게도 가덕도 신공항 사업이 재부상한 시점은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있기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 7조원 규모 국책사업이 정치 논리로 뒤집혔다는 지적은 당연히 쏟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덕도신공항

안전성 논의 이어지지만, “정치적 이익이 우선”

안전성 문제도 가덕도 신공항의 최대 쟁점 중 하나다. 지난 2020년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검증위원회에 참석한 일부 위원들은 “김해 신공항 계획안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검증위 결과가 나왔다고 가덕도 신공항안을 밀어붙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가덕도 신공항은 김해 신공항보다 훨씬 현실성이 떨어진다. 절대적으로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수심이 크고 태풍이 가는 길이라 안전 면에서 더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덕도는 현 김해공항 위에 있어 공역이 겹치는 등 여전히 문제가 많다”며 “정부가 왜 김해공항 대신 가덕도를 내세우는지 모르겠다. 정치적 의도가 뒤에 깔려 있다는 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정부여당이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사실상 묵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위원은 “전문가로서 들러리 선 기분이 든다”며 “검증위 내에서 논란이 됐던 사항을 갑자기 ‘법제처 유권해석’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결국 전문가 의견은 필요 없었던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검증위는 애초에 종합 검증을 하라는 임무를 받은 게 아니라 안전성과 환경 등 4개 분야의 일부분에 대한 검증을 하라는 훈령을 받은 것뿐”이라며 “정치 논란의 비난을 검증위에 다 덮어씌우려는 속셈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야당으로서 가덕도 신공항에 비판적 의견을 개진해 온 국민의힘도 가덕도 신공항을 정치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내년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PK 지역 표심 잡기를 위해 가덕도 신공항을 제물로 바친 셈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비록 엑스포의 꿈은 멈추게 됐지만, 국민의힘은 미래를 향한 부산과 대한민국의 힘찬 행보에 더 앞장서겠다”며 “부산 숙원 사업인 가덕도 신공항 조기 개항과 엑스포 개최 예정지였던 북항 재개발 등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KDB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도 진행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의 ‘척력’이 사라졌다. 가덕도 신공항이 ‘활주로에서 고추 말리는 공항’ 무안공항과 같은 선심성 국책사업으로 마무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시민들의 각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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