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전기차 시장은 ‘배터리 원툴’? 비효율적 R&D가 낳은 한계
韓 전기차 시장 '배터리' 호평하는 소비자, "미래 먹거리는 美" 가진 건 부품 경쟁력뿐, R&D 중심 '혁신 기술' 분야에서 인식 부진해 '적당히' 연구하는 PBS 중심 R&D의 한계, 이대로는 안 된다
한국 전기차 시장의 경쟁력이 ‘배터리’에 집중돼 있다는 소비자 평가가 나왔다. 자율주행, 혁신성 등 본격적인 R&D(연구개발)가 필요한 분야보다 ‘특정 부품’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리서치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는 2022년 시작해 올해 제2차를 맞은 ‘연례 전기차 기획조사’를 진행, 이 같은 결과를 밝혔다. 업계에서는 비효율적인 국내 R&D 관행이 전기차 시장의 미래 먹거리 창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소비자 “혁신 기술은 미국, 배터리는 한국”
이번 연례 전기차 기획조사는 전기차 새 차 구입 후 3년 이내(2021년 1월 이후 구입)인 소비자 66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주요 항목마다 ‘가장 우수한 국가’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미지 평가 항목은 △배터리 기술 △충전(속도·편의성·호환성) △디자인 △전비 △항속거리 △혁신적 기술 △자율주행 △현재 전기차 1위 △5년 후 전기차 1위 △한국 전기차가 경계해야 할 국가 등 10개다.
국내 전기차 보유자는 최고의 전기차 제조국으로 미국을 꼽았다. 한국은 미국의 뒤를 이어 2위였다. 10개 세부 항목 중 5개에서 미국을, 3개에서 한국을 가장 우수한 국가로 지목한 것이다. 미국은 ‘자율주행(75%)’과 ‘현재 전기차 1위(64%)’ 항목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혁신적 기술’ 항목에서는 52%가, ‘5년 후 전기차 1위’와 ‘항속거리’에서는 각각 38%가 미국을 꼽았다. ‘전비’ 항목에서는 35%로 한국과 동률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경우 ‘배터리 기술’ 항목에서 과반수(54%)의 선택을 받았다. ‘충전(41%)’과 ‘디자인(34%)’에서도 1위였다. 미국과 공동 1위를 기록한 ‘전비’를 포함하면 4개 항목에서 1위로 선택된 셈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미국이 미래 산업 분야 전반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반면, 한국은 배터리 분에서만 확실한 우위를 보였다는 점이다. 하나의 ‘부품’에 한해 경쟁 우위를 확보한 현재 국내 전기차 상황이 소비자 인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비효율적인 R&D 악순환 끊어내야
한국이 전기차 R&D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최근 점화한 ‘R&D 카르텔’ 논란과도 관련이 깊다. 정부는 지난 6월 국가 R&D 예산에 대해 ‘R&D 카르텔’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내년도 R&D 예산을 5조2,000억원(16.6%) 대폭 삭감하기도 했다. 국내 R&D 사업 투자 규모가 GDP 대비 4.9%로 세계 최고 수준인 데 반해, 과학기술 연구 성과는 형편없다는 논리다.
정부가 던진 ‘불씨’는 순식간에 번졌다. 연구 현장에서는 R&D가 현재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는 정보기술(IT), 바이오산업 등의 근간이라고 지적한다. R&D 카르텔이라는 용어 자체에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국내 R&D 투자의 성과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비용에 비해 연구 성과의 질이 높지 못하다는 평가다.
이들은 국내 R&D의 문제점으로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를 지목한다. PBS는 연구자나 연구 기관이 경쟁을 통해 과제를 수주해 인건비나 연구비를 충당하는 제도다. 1996년 연구 경쟁력을 키운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프로젝트별로 예산이 집행되는 PBS의 특징이 오히려 연구 현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장기적인 연구에 집중하기보다는 무조건 과제를 많이 수주하고, 최대한의 연구비를 확보해 이익을 올리는 ‘악습’이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대충 성과를 내고 연구비를 분배해 챙기는 ‘하루살이식’ R&D는 예산 집행 효율을 저하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문제는 시장이 장기간 생존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효율적인 R&D와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전기차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전기차 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R&D 예산의 효율적인 집행 및 성과 창출 방안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배터리 이후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해 겨냥할 ‘표적’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