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환상 올해로 끝”,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산업 ‘적신호’

160X600_GIAI_AIDSNote
신재생에너지 성장 가능성 저하, 발 돌리는 투자자들
미국 정부 주도 풍력발전 프로젝트 30% 취소
자국 내 가치사슬 구축은 먼 길, '세계의 공장' 중국과 동행할까
231206미국에너지부
사진=미국 에너지부

전 세계 탄소중립 실현에 적신호가 켜졌다. 공급망 장애를 비롯해 고금리, 보호무역주의 등이 발목을 잡으며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던 시장에 냉기를 불어넣으면서다. 태양광에너지, 풍력에너지 등이 뛰어난 경제성으로 주목받으며 관련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렸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성장 가능성이 낮은 분야로 분류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자금 빠져나간 신재생에너지 시장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음에도 최근 신재생에너지산업 전망은 2년 전과 비교해 매우 어두워졌다. 지속적인 고금리 기조와 공급망 회복 지연 등으로 사업 유지를 위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증가하는 반면 인허가 지체 등으로 수익성은 뒷걸음질 치는 탓에 손을 떼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산업에 쏠리던 자금들도 다른 투자처를 찾아 떠나는 분위기다. 2020년과 2021년 신재생에너지에 대규모 자금을 베팅했던 브룩필드, 맥쿼리 등 글로벌 인프라 투자자들은 수익성 악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일찌감치 발을 뺐다. 미 경제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막대한 자금 투입이 필수인 데다, 사업 초기부터 판매 가격을 고정해 놓기 때문에 금리 상승에 취약한 구조”라고 설명하며 “당분간 관련 기업들의 수익 악화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에서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온 만큼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청정에너지 업체 AES의 안드레스 글루스키 최고경영자(CEO)는 4일(현지 시각)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위기를 고려할 때 탄소 감축과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하며 “투자자들의 신재생에너지 외면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글루스키 CEO가 올해 들어 40%가량 폭락한 AES의 주가를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이번 인터뷰에 나선 것으로 풀이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 업체의 부진은 비단 AES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신재생에너지 상장사로 구성된‘ S&P글로벌클린에너지지수’는 최근 1년 사이 무려 32% 떨어졌다. 미국 최대 신재생에너지 기업인 넥스테라의 가치는 5일 종가 기준 1,196억 달러(약 157조원)로 석유회사 엑슨모빌(3,980억 달러-약 522조원)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불과 2년 전 넥스테라의 가치가 엑슨모빌을 추월해 에너지 업종 1위를 차지했던 것과 상반된 성적이다.

231206풍력
미국 내 풍력발전소 현황/출처=미국 에너지부

정부 주도 프로젝트 연이은 좌초, 풍력 발전에 발목 잡힌 美 정부

친환경 전환에서 가장 큰 난관에 부딪힌 국가로는 미국을 꼽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하는 등 신재생에너지 육성에 열을 올렸지만, 발전소 승인에만 평균 5년이 걸리는 등 사업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를 두고 현지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몇 년간 팽배했던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이 큰 경제적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환상은 올해로 끝이 났다”고 평가했다.

정부 주도의 각종 프로젝트가 좌초하고 있는 현실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최근 미국은 뉴욕주와 덴마크 해상풍력 기업 오르스테드가 맺은 해상풍력발전 계약이 무산되는 등 주 정부가 계약한 해상풍력발전 용량의 약 30%가 취소됐다. 아직 유효한 계약 중에서도 25%가량은 재입찰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탄소중립에 제동이 걸린 이유에 대해 시장의 흐름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기술 혁신으로 인한 투자금 유입과 수식 창출이 시장의 힘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기술 혁신이 시작되기도 전 정부가 이를 앞당기려다 보니 기술 성장과 수익성 향상 모두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유럽 금융탱크인 브뤼겔의 장 피사니-페리 소장은 “친환경 전환에 필요한 투자는 즉각적인 생산 능력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반드시 재정 조달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짚으며 “녹색경제를 위한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투자에 대한 자금 조달이 수반되는 부정적인 공급 충격”이라고 말했다.

견제의 대상이자 없어선 안 될 파트너 중국

미국 내에서는 신재생에너지 활성화와 탄소중립 실현이 결국 오랜 시간 자국의 경제를 지탱해 온 석유 기업들과 민주당의 힘겨루기에 달려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탄소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화석연료와의 전쟁’을 공언했고, 미국 셰일 유전으로의 투자 자금 차단에 나섰다. 탄소경제 기반으로는 중국의 상승세를 견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녹색경제를 지향하는 미국 정부는 ‘중국 딜레마 극복’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전 세계 태양광 및 풍력발전 설비에 들어가는 부품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탓에 이를 차단하고 자국 내 가치사슬을 구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활성화에 제동을 건 요소인 ‘글로벌 공급망 장애’는 결국 중국산 부품 확보의 어려움을 의미한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환경과 에너지로도 번진 가운데 갈 길 먼 탄소중립을 위한 주요국들의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