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반도체 시장 명운이 네덜란드에? 尹 ‘네덜란드 국빈 방문’, 핵심은 ASML
尹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 시작, 맹점은 '반도체 동맹' 삼성 이재용·SK 최태원 동원해 'EUV 1인자' ASML 방문 독점 공급 앞세우는 ASML, 장비 기술 부족한 韓과 협력 절실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동포 간담회를 갖고, 이번 국빈 방문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반도체 분야라고 밝혔다. 소위 ‘반도체 동맹’을 통한 양국 관계 협력 증진을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12일(현지시간)에는 국내 유수의 반도체 기업 회장들과 동행, 벨트호벤에 위치한 세계 유일의 반도체 첨단 장비 제작 회사인 ‘ASML’을 방문한다. ASML은 반도체 첨단 공정에 필요한 고성능 노광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이다. 반도체 기초 장비 생산 능력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와의 ‘반도체 동맹’ 관계를 확보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기도 하다.
尹, 외국 정상 최초로 ASML ‘클린룸’ 방문
한국 대통령이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것은 지난 1961년 수교 이후 처음이다. 국빈 방문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2일에는 윤 대통령을 초청한 빌렘 알렉산더 네덜란드 국왕의 공식 환영식을 시작으로 전쟁 기념비 헌화, 오찬, 만찬 등의 일정이 예정돼 있다. 이후엔 ASML 본사 방문 일정이 진행된다.
윤 대통령은 외국 정상으로서는 최초로 관련 장비를 제작하는 ASML의 ‘클린룸’을 둘러볼 예정이다. 자리에는 네덜란드 국왕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도 동행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SML의 주요 고객사다. 특히 삼성전자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를 위해 꾸준히 ASML과 접촉을 시도해 온 기업으로, 올해 9월 말 기준 0.4% 수준의 ASML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ASML 방문은 이번 네덜란드 국빈 방문의 핵심 일정이다. 현재 ASML은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첨단 노광 장비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이번 방문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축으로 꼽히는 ASML과 협력 관계를 구축, 반도체 기초 장비 기술이 부족한 우리나라 시장을 보완할 기회인 셈이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동포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과 네덜란드 사이의 ‘반도체 동맹’을 강조하고 나선 바 있다.
ASML, EUV 노광장비 분야 ‘독점’
ASML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와 램리서치, 일본 도쿄일렉트론과 함께 세계 4대 반도체 장비 회사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 집계 기준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 2위(18%)를 기록하기도 했다. 높은 시장 점유율의 비결은 반도체 기판인 웨이퍼에 미세하고 복잡한 회로를 그리는 ‘노광 장비’ 기술력에 있다.
ASML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독점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7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급 시스템 반도체, 10나노 중반급 미만 D램 등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ASML이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EUV 장비는 최대 50대가량으로 극히 제한돼 있다. 첨단 반도체 수요 증가에 발맞춰 EUV 노광장비 수요 역시 급증하는 가운데, 반도체 제조사들은 ASML의 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강력한 시장 수요에 힘입어 ASML의 시장 영향력 역시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올해 반도체 업황이 전반적으로 부진했음에도 불구, ASML의 매출과 순이익은 나란히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ASML의 3분기 순매출은 66억7,000만 유로(약 9조4,472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5.5% 증가했다. 순이익도 18억9,000만 유로(약 2조6,770억원)로 같은 기간 11% 급성장했다.
우리나라가 ASML과 손잡아야 하는 이유는
ASML의 실적이 흔들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대만 TSMC 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는 내년 이후 시장 회복을 믿고 대규모 장비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실제 시장에서는 내년에 반도체 시장 침체기가 이어지고, 2025년 들어서야 재도약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ASML은 이 같은 시장의 기대와 경쟁을 양분 삼아 업황과는 무관한 급성장을 이어가며 시장의 ‘슈퍼 을’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문제는 그동안 ASML의 EUV 노광장비 물량 대부분이 파운드리 세계 1위인 TSMC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이처럼 첨단 장비 공급이 대만으로 쏠릴 경우, 관련 분야 기초 체력이 부족한 한국은 순식간에 시장 경쟁력을 잃게 된다. 실제 TSMC와 2나노 미세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는 ASML의 최첨단 EUV 장비를 구하기 위해 협력관계를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이번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은 이 같은 시장 상황을 고려한 선제적인 협력 강화 조치로 풀이된다. 한국과 네덜란드는 반도체 제조와 첨단 장비라는 상호 보완적 강점을 보유한 국가다. 윤 대통령의 ASML 방문은 이 같은 협력 관계에 힘을 싣고, 반도체 시장의 재도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인 셈이다. 차후 국내 반도체 업체는 치열한 EUV 노광장비 확보 경쟁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