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진 내리고 초진 올려” 제멋대로 정부, 비대면 진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벼랑 끝에 몰렸던 비대면 진료, 갑자기 살아났다? 보건복지부 '완화 카드' 야간·휴일 초진 허용에 되살아나는 플랫폼 시장, 의료계 우려는 여전 수개월 만에 뒤집히는 정부 정책, 시장 혼란 야기하는 '지각변동'
의료·벤처 업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그 범위를 확대한다. 15일부터 야간·휴일에 전 국민의 비대면 진료 초진이 허용된다. 6개월 이내에 대면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의료기관에선 질병 종류와 상관없이 의료진 판단하에 재진 비대면 진료도 받을 수 있다. 시범사업 시행 초기 대비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숨구멍을 찾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이 속속 관련 서비스 재개 및 확대에 힘을 싣는 가운데, 기존부터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에 우려를 표했던 의료계는 강력한 반발을 쏟아내고 있다. ‘손바닥 뒤집듯’ 급변하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에 관련 업계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야간·휴일에는 초진 환자 본다? 비대면 진료 완화
그간 의원급 의료기관의 비대면 진료 대상자는 만성질환자는 1년 이내, 그 외 질환자는 30일 이내 동일 의료기관에서 동일 질환에 대해 대면 진료를 받은 ‘재진 환자’였다. 하지만 15일부터는 6개월 이내 대면 진료를 한 적이 있는 환자의 경우 의사 판단에 따라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단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의사는 의학적 판단하에 비대면 진료가 부적합한 환자에게 대면 진료를 요구할 수 있고, 이는 의료법상 진료 거부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를 제한 없이 허용하는 의료 취약지에 시·군·구 98곳을 추가해 그 범위를 확대한다. 의료 취약지는 지역 응급의료센터와 권역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하기까지 각각 30분,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인구가 30% 이상인 지역이다. 의료 인프라 부족 지역이 여전히 많고, 다수 국민이 의료 취약 시간대에 병의원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환자 대상으로 ‘상담’에 한해 허용돼 왔던 휴일·야간 초진 비대면 진료도 대폭 완화된다. 15일부터는 오후 6시 이후 야간이나 휴일에 한해 연령 및 진료 이력 제한 없이 비대면 진료 및 처방을 받을 수 있다. 단 의사가 비대면 처방한 의약품은 약국에서 직접 수령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의 마지막 퍼즐로 꼽히는 ‘약 배송’ 서비스가 규제에서 풀려나지 못한 것이다.
“살길 찾았다” 고개 드는 플랫폼, 의료계는 ‘반발‘
사실상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비대면 의료 플랫폼들은 부랴부랴 재기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라이프케어 플랫폼 올라케어는 15일부터 비대면 진료 관련 서비스를 확대 운영한다. 차후 평일 저녁 6시 이후 평일(야간)과 토요일 오후 1시 이후(휴일)에 초진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복지부의 시범사업 보완 방안에 발맞춰 ‘비대면 진료 예약’ 신규 기능도 도입했다.
비대면 진료 사업에서 등을 돌렸던 기업들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양상이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 이후 사업 전환을 시도했던 나만의닥터는 비대면 진료를 메인 서비스로 재배치한다. 지금껏 나만의 닥터는 병원 최저가 예약, 건강 관리 서비스 등으로 사업 중심축을 옮긴 바 있다. 비대면 진료 축소 이후 구조조정, 회사 규모 축소 등 쓴맛을 본 닥터나우도 마찬가지다. 의료 상담, 맞춤형 영양제 추천 등으로 사업을 전환했던 닥터나우는 15일부터 비대면 진료 관련 서비스를 본격 재개한다.
이에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환자를 초진부터 비대면으로 치료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민간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나서 무조건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비대면 진료의 근본적 한계를 인지하고, 전문의약품 오남용 등 부작용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랬다 저랬다’ 비대면 진료, 흔들리는 시장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두고 업계 안팎의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비대면 진료와 관련한 정부의 ‘정책 일관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정책 일관성은 사회에 대한 예측 가능성으로 풀이된다. 사회 구성원이 차후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예측하고,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일종의 잣대로 작용하는 셈이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관련 분야에서 정부는 정책 일관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지난 2020년 2월 한시적 특례를 인정받았다. 그 사이 벤처 업계에서는 수많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생겨났다. 하지만 지난 6월 1일부터 감염병예방법상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종료되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실시됐고, 이를 기점으로 혼란이 증폭됐다. 시범사업 초기 정부는 동일 의료기관 재진 환자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며 강력한 규제를 앞세웠고, 휴일·야간 진료 대상을 눈에 띄게 제한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비대면 진료 관련 스타트업 다수가 사업을 축소하거나 시장에서 발을 뺐다. 시장 자체가 한 차례 대격변을 맞이하며 크게 흔들린 것이다. 시장이 겨우 변화에 적응할 무렵, 정부는 이제 와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를 일부분 허용하며 또 다른 대격변을 안겼다. 극초기 시장인 비대면 진료 분야에서 정부의 입김은 절대적이다. 정부의 한 마디가 특정 기업의 명운을 결정할 수도, 국민 건강을 크게 좌우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수 개월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에 휘둘리며 업계 전반의 혼란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