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인 10명 중 4명은 ‘빈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불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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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한눈에 보는 연금’ 보고서
높은 고용률에도 빈곤율은 최상위
‘은퇴 후 갈 곳 없는 노인들’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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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령 인구 빈곤율이 40%를 넘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2009년 이후 무려 15년째 불명예스러운 1위를 기록 중인 가운데 저출산·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당분간 높은 수준의 노령 인구 빈곤율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76세 이상 노인은 과반이 빈곤

19일 OECD의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Pension at a glance 2023)’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령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집계됐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14.2%와 비교해 3배 가까이 높은 수준으로, 한국은 해당 조사에서 2009년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후 줄곧 불명예스러운 1위를 지키고 있다. 소득 빈곤율은 평균 소득이 빈곤 기준선인 중위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에 해당하는 인구의 비율을 말한다.

한국에 이어 에스토니아(34.6%), 라트비아(32.2%) 등이 30% 넘는 노인 빈곤율을 기록했으며, 미국(22.8%)과 일본(20.2%)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인 20%대 초반에 그쳤다. 노인 빈곤율이 가장 낮은 국가로는 아이슬란드(3.1%)가 꼽혔으며, 이어 노르웨이(3.8%), 덴마크(4.3%), 프랑스(4.4%) 등 북유럽과 서유럽 국가들이 주를 이뤘다.

한국의 노령 인구 빈곤율은 고령층으로 갈수록 심화했다. 66세 이상 인구 가운데 중 66∼75세의 빈곤율은 31.4%인 반면, 76세 이상은 52.0%로 2명 중 1명 이상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남성보다는 여성 노령 인구가 더 큰 소득 빈곤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6세 이상 한국 여성의 소득 빈곤율은 45.3%로 34.0%를 기록한 남성보다 11.3%p 높았다. OECD 평균 노령 인구 빈곤율은 남성 11.1%, 여성 16.5%다.

성별 빈곤율 격차와 관련해 OECD는 “여성 노인은 경제 활동 당시의 소득을 기반으로 책정되는 연금 급여가 상대적으로 적고, 기대수명도 길어 남성 노인보다 빈곤율이 높다”고 설명하며 “한국의 경우 남녀 노인의 빈곤율 차이가 11%p를 넘는 등 유독 큰 격차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 노령 인구는 다른 OECD 회원국의 노령 인구와 비교해 가처분소득에서도 적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의 66세 이상 인구 가처분소득은 전체 인구 평균 가처분소득의 68.0%로, 리투아니아(67.4%) 다음으로 낮았으며, 76세 이상 인구의 가처분소득으로 범위를 좁히면 58.6%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OECD 회원국 66세 이상 인구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88.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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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 인구의 낮은 가처분 소득은 높은 고용률로 이어졌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65∼69세 고용률은 50.4%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0.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해당 연령대의 OECD 평균 고용률은 24.7%다.

한국은 계층 간 소득에서도 심한 불평등을 보였다. 한국 66세 이상 노령 인구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376으로 집계되며 OECD 평균(0.306)보다 높았다. 지니계수는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 것을 나타낸다. 한국의 전체 인구 지니계수는 0.315로 노년층의 소득 불평등이 심각함을 드러냈다. OECD는 “한국의 연금 제도는 다소 미성숙하며, 고령 노인들이 기대할 수 있는 연금도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통계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OECD의 빈곤율 조사에서는 연금이나 급여 등 ‘현금의 흐름’으로만 소득을 집계해 부동산 같은 고가의 자산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체 자산 중 부동산의 비중이 매우 높은 한국 사회의 특징을 고려하면 이같은 노령 인구 빈곤율은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을 비롯해 자산, 건강 만족도 등 다차원적인 분석을 해보면 소득도 자산도 없는 실질적 빈곤 노인은 10명 중 2명 남짓에 불과하다”고 짚으며 “현실과 괴리가 큰 OECD 노인 빈곤 통계에만 의존해 노인 복지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빈곤 노인 지원 위한 사회적 고민 절실

그럼에도 노령 인구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복지 정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는 사회적 의견이 일치한다. 농업을 평생 일거리로 삼아 은퇴를 걱정하지 않았던 과거의 노인들과 달리, 산업 현장에서 물러난 수많은 노령 인구가 생계를 위해 폐지 등을 줍는 안타까운 현실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OECD 평균 대비 높은 취업률도 기술이나 지식을 갖춘 일부 노인에만 국한된 이야기인 셈이다.

실제로 자원재활용연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폐지 수거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는 노인의 비율은 0.38%로, 전국 약 850만 명의 노인 중 3만 명이 넘는 노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들 중 적극적으로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은 하루 평균 12.3km를 이동하며 11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하지만 일평균 수입은 10,428원에 불과했다. 당시 최저 시급이 8,590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11시간을 더위 또는 추위와 맞선 대가로 최저 시급을 겨우 넘는 금액을 손에 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배재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더 이상 노인 세대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노인 빈곤의 완화와 노후소득 보장의 차원에서 빈곤 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연구의 활성화, 제도 및 정책 마련이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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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고령화 속도, 노인 천만 명 시대 ‘코앞’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도 이같은 우려를 짙게 만든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국내 65세 이상 인구는 931만 명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은 해당 수치가 2024년 1,000만8,000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나아가 2025년이면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30년에는 1,306만 명으로 인구의 25.5%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노령 인구가 증가하며 정부 지출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노인’의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65세를 넘으면 무조건 노인이라는 기준을 두는 것이 합리적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점진적으로 노인 기준 연령을 상향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절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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