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최대한 타야지” 구직 미루고 부정수급까지, 제도 허점 악용하는 ‘도덕적 해이’
실업급여 수급 기간 내 취업자 감소, '허위 구직자' 늘었다 제도 빈틈 노려 부정수급 이어가는 구직자들, 고용기금 줄줄 고용보험개선 TF 사실상 흐지부지, 실업급여 손질은 언제쯤
실업급여를 ‘최대한’ 타내기 위해 취업을 미루는 이들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형식·요식적인 구직 활동을 이어간 사례도 대거 적발됐다. ‘실업급여 손질’을 위한 정부의 고용보험개선 태스크포스(TF)가 사실상 표류 중인 가운데, 현행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부정수급 사례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최대한 받고 취업할래요” 형식적 구직 증가
19일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실업급여 수급 기간 내 재취업률은 2013년 34%에서 2022년 28%까지 하락했다. 반대로 수급 종료 후 3개월 내 재취업률은 같은 기간 16.5%에서 22.7%로 6.2%포인트 상승했다. 실업급여를 최대한 수령한 뒤 느지막이 취업처를 찾는 구직자가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실업급여 하한액(최저임금의 80%)을 적용받는 근로자에게서 특히 두드러졌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세후 최저임금 실수령액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업급여를 최대한 오래 수령하기 위해 사실상 취업을 연기, 형식적인 구직 활동만 하는 사례도 대거 적발됐다. 현행 제도상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고용센터 등에서 구직 활동을 입증해야 한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허위·형식적 구직활동을 하다 적발된 건수는 5만4,235건에 달했다. 지난해(1,273건)의 42.6배 수준이다. 2021년 175건에 불과했던 허위·형식적 구직활동 적발 건수는 지난해 7월 단속 강화 이후 크게 늘었다.
올 상반기에는 아예 재취업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으로 실업을 신고한 실업급여 부정수급자 380명이 적발되기도 했다. 고용부는 올해 5월부터 7월까지 실업급여 부정수급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 부정수급자 380명과 부정수급액 19억1,000만원을 확인했다. 이후 추가 징수액을 포함해 총 36억2,000만원에 대한 반환 명령이 내려졌으며, 고액 부정수급자 등 범죄 행위가 중대한 217명은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실업급여 부정수급, 왜 이렇게 많을까
부정수급 급증의 근본적인 원인은 ‘제도적 허점’에 있다. 우리나라는 실업급여 수급 요건이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실직 전 18개월 중 180일만 근로하면 120일 이상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하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의 경우 △덴마크 26개월 중 12개월 근로 △독일 30개월 중 12개월 근로 △스페인 6년 중 12개월 근로 △일본 2년 중 12개월 근로 △프랑스 24개월 중 12개월 근로 등 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2019년 10월 고용보험법 개정 이후 ‘소정급여일수’가 30일 증가한 점 역시 부정수급에 일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받을 수 있는 만큼’ 실업급여를 수령하려는 구직자가 증가, 이들의 취업이 줄줄이 미뤄진 것이다. 2019년 1인당 평균 128일에 불과하던 실업급여 수급 일수는 2020년 150.9일, 2021년엔 159.1일까지 늘어났다. 특히 실업급여 하한액 적용자의 수급 가능 일수 대비 수급 일수는 2021년 88.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급여 ‘반복 수급’을 섣불리 제한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고용부에 따르면 단기적으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3회 이상 반복 수급한 사람은 5년간 10만 명 이상으로, 최근 5년간 24.4% 증가했다. 이들 반복 수급자 대부분은 근속기간이 짧고,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계약 기간이 짧아 원치 않은 실업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수급자 일부의 ‘도덕적 해이’를 잡기 위해 섣불리 반복 수급을 제재했다가는 실제 수요자의 생활을 궁지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는 셈이다.
‘실업급여 손질하겠다’던 정부, 사실상 논의 흐지부지
정부 역시 이 같은 제도적 허점을 인지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제도 손질을 위해 고용보험개선 TF도 마련했다. 올 상반기 내로 실업급여를 포함한 고용보험 제도를 대폭 손보겠다는 목표였다. TF의 본질적 목표는 고용보험의 사각지대 해소였다. 현 제도상 고용보험 적용 대상자는 월 60시간 이상(주 15시간 이상) 근로자로 한정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플랫폼 근로자 등 명확한 근로계약 관계와 근로 시간이 집계되기 어려운 일자리가 늘어난 만큼, 고용보험 적용 기준을 근로 시간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월 소득 근로자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당 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실업급여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가 해소되면 가입자가 대폭 증가하고, 고용보험의 혜택으로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 수급자도 자연히 늘게 된다. 이에 고용부는 최저임금의 80%를 보장하는 실업급여 하한액을 폐지·조정하는 방안 등을 TF 논의 대상에 포함했다. 노동계는 이와 관련해 불만을 표출하며 TF 불참을 선언했고, TF 회의는 흐지부지됐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연내 고용보험 개편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제도적 개편이 흐지부지된 사이 실업급여 제도의 악용 사례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현행법상 실업급여 부정 수급은 형사 처벌 대상이다. 허위로 구직활동을 하다가 최초 적발될 경우 해당 회차(통상 28일 치 급여)를 받지 못하고, 2번째 적발되면 남은 기간 급여 지급이 아예 중단된다. 죄질이 나쁠 경우 부정수급액의 최대 5배의 금액이 추가 징수될 수 있으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지금은 실업급여 제도와 수급자 인식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