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학교? ‘심화수학’ 수능 미도입이 낳을 폐해
수능 심화수학 외면한 국교위, 2028 입시 개편 최종안 향방은 교육과정 덜어낸다고 수포자 줄어들진 않는다, 공교육 질 악화 우려 오히려 '심화 교육' 사교육 수요 자극할 위험도, 역행하는 대학 입시
국가교육위원회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선택과목으로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을 신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교위는 22일 제24차 회의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교육부 ‘2028 대학입시 제도개편 시안’에 관한 ‘국교위 종합의견 권고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국교위의 결정이 ‘수포자(수학 학습을 포기한 학생)’를 줄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수능 중심으로 움직이는 국내 공교육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반적인 공교육 학습의 질을 낮춰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몬다는 지적이다.
심화수학 도입 않는다, 국교위의 권고안
앞서 교육부는 지난 10월 ‘2028 대학입시 제도개편 시안’을 발표,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수능에 ‘미적분Ⅱ+기하’를 심화수학 영역으로 신설하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를 접한 국교위는 “심화수학이 디지털 시대 미래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중요한 과목이라는 점은 공감하지만, 공정하고 단순한 수능을 지향하는 통합형 수능의 취지와 학생의 학습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능에 해당 과목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2025년부터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학생들이 관련 교과목을 배울 수 있고, 대학은 그 평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교위는 또한 대입 안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내신에 대해 상대평가·절대평가를 병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융합선택 과목(교과 내·교과 간 융합과 실생활 응용을 위한 과목) 중 사회·과학 교과 9개 과목을 절대평가하기로 의결했다. 절대평가 대상 과목은 △여행지리 △역사로탐구하는현대세계 △사회문제탐구 △금융과경제생활 △윤리문제탐구 △기후변화와지속가능한세계 △과학의역사와문화 △기후변화와환경생태 △융합과학탐구 등이다.
여타 사항에 대해서는 교육부 원안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더해 국교위는 수능 및 수시·정시 시기 조정 방안을 교육부와 협의·검토한다. 논의 과정에서 현행 수시 모집과 수능 실시 시기로 인해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수업이 사실상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부는 ‘국교위 종합의견’을 바탕으로 조만간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수포자는 그대로, ‘배우고 싶은 학생’은 학원으로
교육계 내외에서는 심화수학 미도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국교위 권고안이 현실화할 경우, 2028학년도부터 학생들은 대수, 확률과 통계 및 최소한의 미적분학만을 공부한 뒤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기존 미적분에 포함돼 있던 수열의 극한, 미분법, 적분법 등의 내용이 수능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수능 난이도를 크게 낮춰도 ‘수포자’의 비중은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다루는 과목의 깊이가 얕아져도 변별력을 중점에 둔 ‘문제풀이용 수학’의 장벽은 크게 낮아지지 않는 까닭이다.
졸지에 심화수학 학습을 원하는 학생들은 공교육의 허용 범위 밖으로 밀려나게 됐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심화수학을 포기한 이상, ‘수능 중심’으로 움직이는 공교육에서 충분한 교육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심화 학습을 원하는 학생들은 공교육 외부의 사립 교육 기관들을 찾아가야 한다. 국내 공교육의 기초 수학 교육 수준 자체가 낮아지고, 고가의 사교육을 병행해야만 관련 학습이 가능한 ‘악순환’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정부는 교육과정을 덜어내면 학생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전제하에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공교육과 사교육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상황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심화 학습 수요가 사교육 중심으로 이동할 경우, 고품질의 교육은 소위 ‘금수저’ 학생이 독점하게 된다. 결국 공교육이 사회 계층 구조 재생산의 단초가 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공교육은 디지털 시대 미래 역량 함양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기를 택했다. 정부가 내려놓은 책임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이를 넘어서는 대학과 기업, 사회 전반에까지 전가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