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노골적인 한국 인재 사냥, 특허청 나서 기술 보호한다
국정원 '방첩업무 규정 개정안' 입법예고, 특허청도 방첩기관에 포함 "기술 유출 막아라", 기술력 확보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중국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환경 만드는 것이 근본적 해결법", 처우 개선 시급
특허청이 국익에 반하는 해외의 정보활동을 차단하는 방첩 업무를 수행할 전망이다. 최근 대내외적으로 반도체나 배터리 등 국가 핵심 산업기술을 둘러싼 유출 시도가 심각해진 데 따른 것이다. 민간 기업 차원에서 기술 유출을 방지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던 만큼 정부의 기술 유출 방지 대책에 기대가 모인다.
기술 유출 심각, 국가 차원의 방첩 활동 필요해졌다
3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특허청의 방첩 기관 신규 지정’ 등 내용을 담은 ‘방첩 업무 규정 개정안’이 작년 말 입법 예고됐다. 방첩이란 국가안보와 국익에 반하는 외국 또는 이와 연계된 내국인의 정보활동을 찾아내 차단하기 위한 정보 수집·작성·배포 등 모든 대응 활동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산업경제정보 유출, 해외 연계 경제질서 교란 및 방위산업침해에 대한 활동 등도 포함된다. 이에 그간 방첩 기관으로 지정돼 있는 국정원, 경찰청, 해양경찰청, 국군방첩사령부, 법무부, 관세청 등이 해당 업무를 수행해 왔지만, 이번에 특허청이 추가됨에 따라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국가 차원의 방첩 활동이 강화될 전망이다.
세부적으로 특허청은 외국 등의 정보활동에 대한 확인·견제 및 차단, 방첩 관련 기법 개발 및 제도 개선, 다른 방첩기관 및 관계기관에 대한 방첩 관련 정보 제공을 수행하게 된다. 또 특허심사·심판관 등 기술 전문성과 보유한 특허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방첩 활동에 일조할 방침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최근 기술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방첩 업무에서 산업스파이 등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활동이 중요해졌다”며 “향후 국정원 등 방첩 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기술 유출 수사, 기술 전문성을 활용한 타 수사·정보기관 자문, 특허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술 트렌드 분석 등을 수행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국정원은 다음 달 5일까지 입법예고를 마치고 수렴한 의견을 바탕으로 규제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 개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중국의 ‘한국 기술자 빼가기’ 갈수록 기승
국정원이 특허청을 방첩 기관에 포함한 것은 최근 산업기술 유출이 심화하면서 방첩 활동을 강화해야 한단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한국 반도체 인력 빼가기’ 행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1월 삼성전자의 전직 엔지니어 A씨가 중국 기업으로부터 이직과 막대한 보수를 약속받고, 회사 내부 시스템을 통해 파운드리 반도체 공정 기술 관련 자료 등 총 33개의 영업비밀 파일 링크를 촬영해 기술 유출을 시도하다 적발되는가 하면, 같은 해 6월에는 중국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통째로 복제하려는 시도가 발각되기도 했다. 전직 삼성전자 상무 출신인 B씨가 중국 지방정부와 공조해 반도체 제조 핵심기술을 그대로 전수한 것이다.
심지어 일부 중국 기업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견제를 의식해 제3국에 근무지를 마련하고 우리나라 반도체 고급 인력 빼가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 C씨는 지난해 중국 주요 통신업체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았는데, 5G 산업에 적용하기 위한 RF(무선통신) 반도체 개발 때문이었다. 당시 C씨는 제안에 응하지 않았지만, 업체가 제시한 내용 중 눈에 띄는 부분 중 하나가 미·중 갈등의 여파가 미치지 않는 제3국 근무지 조건이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파격적인 수준의 보상 조건을 제시하고, 특정 장비 개발에 대한 프로젝트 성공 시 40억~50억원의 별도 보수를 주는 계약을 내거는 사례도 포착됐다.
기술 중요한 만큼, 기술 인재 대우도 중요해
이 같은 중국의 인재 사냥은 현직 개발자들뿐만 아니라 퇴직한 반도체 종사자도 대상으로 한다. 승진에 실패한 임원이나 정년이 한참 남은 퇴직자 등이 갈 곳이 마땅찮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에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술 유출에 대한 단속이나 수사도 필요하지만 우수한 잉여 인력의 이동을 막는 방안도 시급하다”며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정부가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산업 인재들을 한곳에 모아 국가 싱크탱크를 만드는 방안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반도체 업계 퇴직자 D씨는 “아직 한참 일을 더 할 수 있는데 회사 내부 사정으로 자리가 없어진다면 경쟁사든 중국이든 영입 제안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며 첨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 건 중요하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숙련된 기술 인재들의 노동력을 존중하고, 그에 합당한 처우 개선을 해준다면 기술 유출 우려를 지금보다 해소할 수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 인력들이 경쟁국으로 이탈하지 않고 국내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우수 인력을 국내에 붙들기 위해서는 이들이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면 인근에 우수 인재를 위한 주택 단지를 조성하고 좋은 학교를 설립하는 등 정주 여건을 마련해 주는 방식” 등을 처우 개선 방안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낮은 임금 수준, 수직적인 연구문화, 데이터·컴퓨팅 시스템과 같은 연구인프라 미비 등 해외에 비해 떨어지는 연구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서 우수 기술자들의 해외 유출은 국가에 있어 치명타인 만큼, 인재들이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 해결 방법이다. 능력에 걸맞은 대우 없이 핵심 기술자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