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관광객은 어디로 갔을까, 아시아 관광 시장의 ‘지금’
말라붙은 중국인 관광객 수요, 한국 여행수지 적자 불어나 아시아 각국, 중국 관광객 유치 위해 '무비자 입국' 카드 꺼냈다 '엔저' 효과로 관광 수요 급증한 일본, 아시아 관광 업계 지각변동
해외 관광객의 한국 여행 수요 전반이 얼어붙은 가운데, 여행수지 적자가 대폭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1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해당 기간 여행수지는 12억8,000만 달러(약 1조6,83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0월(6억4,000만 달러) 대비 두 배가량 급증한 수준이다. 아시아 관광 수요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국 여행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 가운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관광 시장이 흔들리는 양상이다.
여행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 닫혀버린 중국
우리나라 여행수지 급감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중국 관광객의 감소가 지목된다. 지난 8월 중국 정부가 6년 만에 방한 단체 관광을 허용했음에도 불구, 중국 단체 관광객(유커) 수요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공항의 중국 노선 이용객 수는 73만7,632명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지난 2019년 11월 대비 48%에 그쳤다. 물가 상승, 환율 부담, 혐한 정서 확산 등 복합적 원인이 한국 여행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중국 내 경기 부진을 여행 수요 감소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한다. 중국인 소비 전반이 위축되며 해외 관광 수요 자체가 급감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은 올해 초 제로 코로나 정책을 마무리하며 ‘리오프닝’을 기대했지만, 결국 팬데믹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중국인의 중화권을 제외한 순수 해외 국가 출국 비중은 2019년 3분기 61.3%에서 2023년 3분기 40.9%로 줄었다.
한편 중국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의 발걸음 역시 끊겼다. 중국이 올해 초 국경을 전면 재개방했음에도 불구, 대다수 관광객이 중국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중국에 입국한 해외 여행객은 약 844만 명으로, 2019년 상반기(3,100만 명) 대비 30%에 그쳤다. 중국 관광 수요가 급감한 원인으로는 중국의 폐쇄적인 대외 정책 및 미·중 갈등으로 인한 ‘반중 정서’가 지목된다. 개정 반(反)간첩법(간첩 행위의 범위를 크게 확대한 법안) 등도 관광객의 불안감을 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아시아 각국, ‘무비자 입국’으로 중국 여행객 모시기
관광 수요 감소는 비단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 전반이 관광객 감소, 특히 ‘중국인 관광객’ 급감으로 인해 홍을 치르고 있다. 일부 국가는 원활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적극 허용하고 나섰다. 일례로 이달 초 태국은 중국과의 상호 무비자 입국을 조만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월 29일 종료될 예정이었던 중국인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 기간을 연장한 것이다.
태국의 비자 면제 정책은 태국 관광산업에 숨을 불어넣기 위한 일종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태국 관광체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태국 방문객 수는 약 4,000만 명, 관광객이 소비한 금액은 1조9,000억 바트(약 72조7,32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1년에는 관광 수요가 99% 이상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은 태국 관광 시장의 ‘큰손’으로, 팬데믹 이전 전체 방문객의 27.6% 비중을 차지했었다.
한편 지난해 4월 외교관계를 격상한 중국과 싱가포르 역시 지난달 상호 30일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기존 중국인은 싱가포르에 입국하려면 비자를 신청해야 했으며, 싱가포르인은 최대 15일까지 비자 없이 중국에 체류할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 내무부 역시 지난달 1일부터 올해 말까지 중국과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최대 30일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역대급 엔저’로 관광객 끌어모으는 일본
한편 여행 업계에서는 아시아 전반의 관광 수요 감소가 단순 ‘불황’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엔데믹에 접어들며 겨우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만큼, 터져 나오는 보복 여행 수요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 전자상거래업체 티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여행 카테고리 거래액은 팬데믹 이전(2019년)의 92% 수준까지 회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2년 해외여행 거래액이 2019년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성장세다.
일각에서는 보복 여행의 수요가 일본에 대거 유입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역대급 ‘엔저(엔화 가치 하락)’로 저렴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여행객이 몰렸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10월에는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서기도 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당시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251만6,500명으로, 2019년 동월 관광객 수(249만6,568명) 대비 0.8%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아시아 여행 시장은 ‘대격변’을 맞이했다. 관광 수요가 위축되고 분산되며 각국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관광객 감소로 인해 휘청이는 입장에 놓였다. 업계에서는 차후 경기 침체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관광 수요 감소·쏠림 현상 역시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