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미·중 관계, 올해도 ‘해빙’은 미지수
미·중 정상회담, 위기 관리일 뿐 근본적 해결책은 부재 바이든·시진핑, 국내 정치에서 반미·반중 압박받는 중 미·중 관계 올해 최대 쟁점은 대만과 남중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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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냉전 체제가 끝난 이후 미국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며 오랜 기간 패권국의 지위를 공고히 해왔다. 하지만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한 중국이 ‘중국몽’으로 대표되는 도전장을 내밀자, 미·중 관계는 급속히 냉랭해졌다. 각종 무역 제재, 간접적 군사 충돌과 함께 미·중 패권 다툼이 격화하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에서 성사된 미·중 정상회담은 올해 양국이 ‘데탕트(Détente·긴장 완화)’에 이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퍼뜨렸다.
하지만 미·중 관계에는 양국의 국내 정치 역학과 구조적·역사적 갈등 요소 등 여러 장애물이 얽혀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중 어느 것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상회담 직후부터 서로를 향한 적대적 제스처가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2024년에도 미·중 데탕트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1월 미·중 정상회담 한계 뚜렷
바이든과 시진핑 양국 정상이 1년 만에 성사된 회담에서 일부 전략적 상호 합의를 도출해낸 것은 사실이다. 2022년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중국이 폐쇄했던 고위급 군사협력 핫라인을 재개했고, 중국에서 원료가 공급돼 미국을 휩쓸고 있는 신종 마약 펜타닐 통제를 위한 협력을 강화했다. 분명 의미 있는 성과지만 어느 하나도 미·중 갈등의 근본적 원인에 관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양국은 위기관리를 넘어 예상 밖의 사고를 견딜만한 관계의 발판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2022년 11월 발리에서 있었던 직전 정상회담 후 퍼지는 듯했던 미·중 화해 분위기가 석 달 뒤 2월 중국의 ‘정찰풍선’이 미국의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차갑게 얼어붙은 것과 마찬가지로, 올해 미·중 관계도 위태로울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정상회담 직후 12월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중국은 우리의 친구가 아닌 사상 최대의 위협”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중국과의 협력이 가져올 기회 대신 중국이 불러온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는, 정상회담 이전의 레토릭으로 회귀한 것이다.
미·중 갈등, 내부 정치와 구조적 문제가 근본 원인
미·중 갈등의 근본적 원인 중 한 가지는 바이든과 시진핑이 각각 국내 정치권으로부터 받는 압박이다. 중국 인민보다 중국공산당의 힘이 크고, 시진핑에게 당내 권력이 몰려있는 구조는 중국 정치의 특성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외교 향방은 시진핑 개인의 득실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특히 덩샤오핑이 ‘제2의 마오쩌둥’을 방지하기 위해 헌법상 2연임 제한을 둔 것을 2018년 폐지하고 지난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에게 지금은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부 지지를 끌어내야만 하는 시기다. 이때 외부의 적과 대립하며 민족주의 이념을 강화하는 행보는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인민에게 강한 통치자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에 이익이 되는 어떤 조항도 쉽사리 양보하지 않는 이유다.
국내 정치에서 입지를 다져야 하는 사정은 바이든도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바이든 대통령은 친중 인사라는 꼬리표에 시달려왔다. 올해 재선에 도전하며 트럼프와 다시 한번 대결 구도에 진입한 바이든으로서는 지지율이 약세를 보일수록 중국에 더욱 강경하게 나갈 필요가 있다. 바이든이 국내에서 받는 압박은 미국 하원의 ‘미·중 전략경쟁 특별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보고서는 ‘미·중간의 경제적, 기술적 경쟁 판도를 재설정할 전략’에 관한 내용으로, 무려 150여 개의 정책 권고가 담겼다.
또 다른 미·중 갈등 원인에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들이 있다.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불리는, 미국이 절대 패권국으로서 평화를 수호해 이룩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라는 관념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밀어붙여 왔다. 이는 소련의 몰락 이후 군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미국에 대항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급속 경제성장기에 ‘중국몽’을 들고 나온 시진핑은 두 번째 패권국 지위를 노리기 시작했다. 중국은 미·중 두 대국이 서로의 패권국으로서의 위치를 인정하고 이권을 침범하지 말자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신형 대국관계’를 공공연히 제안하기까지 했다. 미국 대외 정책의 근간이 되는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중국과 미국의 경쟁이 결코 ‘윈윈’이 될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이해가 퍼지는 배경이 됐다.
오랫동안 개혁개방을 추구했던 중국이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로 돌아선 것도 미·중 간의 이데올로기 갈등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실제로 미국 고위 인사들과 바이든은 수차례 시진핑이 독재자라는 의견을 밝히며 중국과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중국의 권위적인 사회주의 이념과 팍스 아메리카나가 수호해야 할 이념인 자유 민주주의 시장 자본주의는 새로이 충돌하며 미·중이 서로를 안보 위협으로 인식할 명분을 제공했다. 위와 같은 요소들로 인해 평화로운 공존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잃은 양국은 서로가 얼마나 큰 위협인지를 과장하며 ‘국가 방위’의 정의를 확장했다. 방위 행동의 범위가 군사는 물론이고 무역과 기술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는 디커플링, 즉 경제적·기술적 상호 의존을 끊어내는 것을 정당화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이 미·중 모두가 자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양측 모두 적대적이고 보복적인 정책으로 기울게 되는 이러한 역학관계는 지난 정상회담에서 공언한 데탕트 의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환경이지만 어느 쪽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초,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전화 통화로 “11월 정상회담에서 이룬 진전을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양측 정상이 동의한 사항을 실현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상회담 자체가 근본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합의점도 내놓지 못하고 한계를 뚜렷이 보인 상황에서 이런 말들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한편에선 양국 정부가 서로를 향해 건설적 협력을 끌어낼 의지가 없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는데, 이는 관계 진전에서 오는 국내 정치 리스크를 떠안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회피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최대 고비는 대만·남중국해 이슈
특히 올해 미·중 관계의 기폭제가 될 만한 쟁점은 대만과 남중국해다. 중국은 대만이 분리될 수 없는 중국 영토의 일부며, 중앙정부는 베이징 한 곳뿐이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한다. 이에 대한 미국의 전통적 스탠스는 ‘전략적 모호함’이다. 공식적으로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중국의 무력 통일에도 반대하는 입장인 것이다. 이 전략적 모호함은 한동안 하나의 중국과 공존하는 듯했지만, 자국 영향력이 커질수록 중국은 이 원칙을 폭넓게 적용해 이제는 대만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인지하거나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내정간섭’이며 ‘주권 침해’라 항의하는 데 이르렀다. 특히 1월 13일 치러질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 성향 후보와 친중 성향 후보가 격돌하는 국면이 펼쳐지며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한 긴장감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까지 대만과 중국의 직접적 군사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전방위적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남중국해 논쟁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역에 영유권을 주장하며 시작됐다. 2016년 국제중재재판소에서 패소한 뒤에도 중국은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군사적 점유를 시도해 주권을 침해당한 필리핀과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미국이 해당 분쟁을 두고 필리핀과의 상호방위조약이 적용되는 경우라고 단언하며 중국에 대응하는 공동 군사 행동을 시작한 뒤로는 남중국해를 미·중 관계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11월의 정상회담에서도 미국과 중국은 역시 서로의 견해차만 재확인했을 뿐, 두 쟁점에 대한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미·중 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양국의 수뇌부가 상호 협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현재 경쟁에 쏟고 있는 만큼의 힘과 노력을 협력에 사용해 서로의 전략 의도와 영향력을 왜곡 없이 받아들인다면 양국은 건설적 논의와 공존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해 벽두에도 미국과 중국의 서로를 향한 불신은 여전히 상호 이해를 향한 길을 가로막고 있다.
원문의 저자 폴 히어(Paul Heer)는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의 비상근 시니어펠로우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국가정보국의 동아시아 담당 사무관을 역임했습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US-China detente likely to remain elusive in 2024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