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된 저출산고령위, 예산 문제 뒤 숨은 ‘역량 부족’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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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컨트롤타워 '유명무실', 저출산 문제 해결 '요원'
'예산 문제' 제기한 저출산고령위, "예산 권한 없어 정책 설계 어렵다"
일각선 '역량 부족' 지적도, "핵심 난제 해결 실패가 근본적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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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인구 정책의 컨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도마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다. 저출산고령위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아래 주요 부처 장관을 모두 모아놨으나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는 역할도, 그나마 있던 정책을 조율하는 역할도 해내지 못했다. 출산율이 반등할 정도의 효과적인 대책이 나오려면 ‘식물’이나 다름없는 저출산고령위의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산고령위 ‘도마’, “정책 기능 부재 문제 심각”

17일 인구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7명의 전문가들이 저출산고령위의 가장 큰 문제로 ‘예산과 정책 기능 부재’를 꼽았다. ‘공무원들의 전문성 부족’(1명)과 ‘위원장인 대통령의 무관심’(1명)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응답으로, 예산 권한이 없는 점이 부실한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5년 인구 정책을 총괄하는 범정부 협의체로 출범한 저출산고령위는 구상만 놓고 봤을 때 나무랄 데 없었다. 대통령이 위원장이고 저출산고령위를 끌고 나가는 부위원장은 장관급, 상임위원은 차관급이며, 예산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장관,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 장관 등 양대 부총리가 모두 저출산고령위에 참여한다. 이들 대통령과 장관, 각 분야의 민간 전문가까지 20여 명이 머리를 맞대 인구정책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게 바로 저출산고령위였다.

그러나 저출산고령위의 컨트롤타워 기능은 현재로서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에 일각에선 파견 공무원으로 이뤄진 소규모 조직으론 제대로 된 정책을 개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저출산고령위 실무를 맡은 사무국에는 30명 내외의 소수 인원만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각 부처에서 파견돼 1년~1년 반 정도 지나면 원래 부처로 돌아간다.

이에 대해 한 저출산고령위 민간위원은 “지금의 저출산고령위는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사명감이 생길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저출산고령위가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으려면 위원장인 대통령이 좀 더 의지를 갖고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저출산고령위 회의를 주재했지만, 그 이후 1년 가까이 대통령 없이 회의가 열렸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한 방향으로 나가도록 이끌 수 있는 건 결국 대통령”이라며 “대통령이 참여하는 회의가 정기화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한 없는 컨트롤타워, ‘식물’ 신세로 전락

저출산고령위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건 비단 윤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대통령 주재하에 개최된 저출산고령위 회의가 단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운영위원회는 지금까지 네 차례 열렸으나, 이 와중에도 다른 공동위원장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운영위에 참석한 적이 없다. 자문기구에 불과한 저출산고령위가 인구 위기를 총괄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엔 태생적 한계가 짙음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고령위가 실질적 권한이 없고 예산을 직접 집행하지도 못하는 데다 다른 부처를 조정할 힘도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당장 최근 발표된 내년 예산안만 해도 저출산고령사회위의 한계가 드러난다. 우선 기재부는 2024 예산안에 ‘저출산 극복’ 관련 예산으로 17조5,900억원을 담았다. 예산안 중 ‘출산·양육 부담 경감을 위한 전주기 지원’ 항목에 포함된 사업 기준으로, 이 항목 예산은 올해 14조원이었는데 25% 정도 늘었다.

구체적으로는 부모급여 확대, 신생아 출산 가구 대상 저금리 대출 자격 완화, 신생아 출산 가구 대상 아파트 특별공급 신설 등 대책이 담겼다. 그런데 이 같은 저출산 대책들을 저출산고령위는 종합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부모급여는 복지부가, 신생아 특별공급은 국토교통부가 맡는 식으로 각 부처가 저출산 정책에 있어 통합되지 못하고 있단 뜻이다. 정책 수립 과정에 저출산고령사회위가 관련 부처와 협의하긴 하지만, 대책이 파편화돼 종합적으로 나오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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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사진=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피상적 정책만 ‘우후죽순’, “저출산 대책 사실상 ‘실패'”

예산 부족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한 인구 전문가는 “저출산고령위와 관련해 덕지덕지 붙은 거품 예산을 걷어내 보면 육아휴직, 보육지원, 아동수당 등 저출산과 직결된 예산은 지난해 51조원 예산 중 38%인 19조5,000억원 정도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예산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1.56% 정도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2.29%에 한참 못 미친다”고도 지적했다.

이처럼 예산 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건 저출산고령위에 예산과 관련한 권한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위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각 부처에 전달하고 부처 의견을 수합하긴 하지만 그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저출산고령위 민간위원은 “예산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저출산고령위 혼자 대책을 내놓을 수도 없고 부처들은 각자 다른 일이 더 급하니 ‘어렵다’고만 한다”며 “획기적인 대책도 돈이 있어야 나온다”고 토로했다.

다만 일각에선 예산 부족보단 인력의 전문성 부족이 더 큰 문제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실제 기존 저출산 대책을 샅샅이 훑어보면, 저출산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은 거의 없다시피 한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이성용 한국인구학회장은 “저출산 대책에 수십조원을 썼지만 실제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을 찾기 어렵다”며 “한국의 현실과 직접 관련된 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또한 “백화점식 대책을 지양하고 정말로 저출산 해결에 효과적인지 고민하고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일침을 놨다.

저출산고령위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총 280조원에 예산이 저출산·고령화 대응에 투입됐다. 결코 적지 않은 액수임에도, 전문가들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에서도 합계출산율은 계속 급락해 결국 OECD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고, 급기야 지난 2022년엔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0.78명까지 하락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제활동인구 확충을 위한 경제·사회 시스템 구축이 미비한 상황에서 예산 집행에 급급하다 보니 정책의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이라며 “저출산의 핵심 요인들인 고용불안, 주거부담, 출산·육아부담, 교육경쟁 심화, 일·생활 조화 어려움 같은 핵심 난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 정부는 실패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예산 문제 뒤에 숨은 저출산고령위 자체의 ‘역량’ 문제를 다시 한번 끄집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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