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앞세운 ‘양적 성장’은 끝났다, 한·중·일 인구 비중 급감 추세
저출산·고령화 직면한 한·중·일, 인구 비중 20% 이하까지 떨어져 인구 정책 실패로 저출산 타격 입은 중국, '양적 성장' 전략 버렸다? 질적 성장으로 성장 엔진 교체, 과도기 고통 넘어설 수 있을까
한·중·일의 글로벌 성장을 견인하던 ‘인구 경쟁력’이 무너지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23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도 전 세계 인구(약 80억4,500만 명) 중 한·중·일 인구 비중은 약 19.9%(약 16억74만 명)에 그쳤다. 한·중·일 인구 비중이 20% 이하까지 떨어진 것은 유엔이 관련 통계를 처음 발표한 1950년 이후 최초다. 동아시아 인구 경쟁력을 지탱하던 중국이 최근 ‘양적 성장’ 기조를 내려놓은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가속화하며 인구 감소가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저물어가는 동아시아 ‘인구 패권’
2000년까지 평균 25.4% 선을 유지하던 한·중·일 인구는 2000년대 중반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국과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저출생·고령화 현상의 영향권에 들며 인구 감소 추세가 본격화한 것이다. 내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은 국내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지난해 3,674만 명에서 2039년 2,955만 명으로 줄고, 2072년에는 1,685만 명까지 급감할 것이라 예측했다.
이미 2007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내년 노인 인구가 3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내 민간 지식인으로 구성된 인구전략회의는 일본 인구가 1억2,300만 명에서 2100년이면 6,300만 명으로 ‘반토막’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역시 인구 감소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인구는 14억967만 명으로, 1년 사이 208만 명 감소했다. 중국이 수년간 지켜오던 ‘세계 인구 1위 국가’ 타이틀은 인도의 품으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은 ‘인구 강국’ 중국의 풍부한 노동력과 내수 시장을 활용해 급속도로 성장했다. 동아시아 시장 기반을 제공한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서 우수한 중간재를 수입, 꾸준히 글로벌 시장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중국의 풍부한 인력이 동아시아 전반의 성장을 이끌어온 ‘열쇠’인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 구조도 본격적인 한계를 맞이했다. 20% 이하까지 미끄러진 한·중·일의 인구 비중은 2070년대에는 10%, 2090년대에는 8%대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강국’ 중국, 왜 휘청이나
동북아시아 인구 경쟁력을 떠받치던 중국이 흔들리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제도적인 한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중국은 1979년 부부당 1명의 자녀만을 용인하는 산아 제한 정책을 도입, 2015년까지 수십 년간 시행해 왔다. 이후 저출산·고령화 위기를 감지한 시진핑 지도부가 2016년 모든 부부에 둘째 자녀 출산을 허용했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지난 2021년 시작된 셋째 자녀 허용 및 출산 장려·보조금 정책 역시 저출산 현상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인구 감소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중국의 경제 정책 전략 전환이 거론된다. 중국이 인구를 내세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성장 동력을 전환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은 2000년대 투자·수출 주도의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뤘으나, 이로 인해 △사회 불균형 △환경오염 △자원 고갈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시달렸다. 한계를 직감한 중국은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질적 성장 중심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22년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보고서는 질적 성장을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의 최고 임무’로 설정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차후에도 중국이 질적 성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갈등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등 대내외 악재가 누적되며 경기 침체 기조가 본격화했지만, 이전과 같은 양적 성장 기조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 같은 대내외 환경 변화로 인해 중국의 질적 성장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 그 ‘과도기’의 고통
중국이 성장 전략을 본격적으로 전환한 이유는 양적 성장에는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성장에 비유했을 때 사람의 몸은 청소년기를 거치며 한계치까지 자라고, 이후 노화하며 오히려 조금씩 움츠러든다. 이처럼 인간의 양적인 성장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양적 성장이 끝난 이후 인간은 더 이상 키가 자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인품, 지식 등 질적인 성장을 추구한다. 한 국가의 경제 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양적 성장은 반드시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고,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질적 성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 사이 ‘과도기’가 순탄치만은 않다는 점이다. 양적 성장을 내려놓은 기업, 혹은 국가는 지금껏 의존해 왔던 양적 성장이 멈춰 서는 공포를 직면해야 한다. 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동안 표면적으로는 ‘가라앉게’ 된다는 의미다. 반대로 표면적인 실적과 양적 성장에 무게를 실을 경우, 질적 성장에는 사실상 제동이 걸리게 된다.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은 상반되는 두 개념 속 균형을 잡아야 하는 난제인 셈이다.
인구와 노동력을 앞세워 양적 성장을 이어오던 중국은 본격적인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성장 엔진을 교체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한·중·일 3국의 인구 감소 추세는 이 같은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지표로 평가된다. 안팎에서 변화와 침체의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과연 중국은 과도기의 고통을 이겨내고 질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