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매춘’ 무죄에 논란 ‘재점화’, 학문의 자유와 2차 가해 사이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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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발언에 연속 '무죄', "학문과 표현의 자유 존중"
위안부 피해자의 눈물은 학문 아래 '무색무취'? 
문제의 본질은 '학문'인가 '학자의 태도'인가
'돌고 도는' 책임론, "사회적 합의 도출 필요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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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6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주제 강연을 하고 있는 류석춘 당시 연세대 교수의 모습/사진=유튜브 캡처

국민감정과 동떨어진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에 대해 법원에서 연이어 ‘무죄’ 판결이 나오고 있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게 판결의 주된 요지다. 다만 이 같은 판결로 인해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 사례 자체를 부정하는 등 왜곡된 발언까지 스스럼없이 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위안부 매춘’ 발언 류석춘 교수 ‘무죄’

서울서부지법은 24일 강의 중 학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의 쟁점이던 “위안부는 강제로 연행되지 않았다”는 류 교수의 발언에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재판부는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이었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류 교수 발언에 대해 “통념에도 어긋나고 비유도 부적절하지만 강의 내용 전체를 볼 때 학문적 과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 등을 설명하면서 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만큼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 전신)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강제 연행됐다”고 말하도록 교육했다는 류 교수의 주장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에는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해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문제가 된 책에는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는 동지적 관계’ 등의 표현이 나오지만, 대법원은 “전체적인 맥락에 비춰 보면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당 표현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두 판결 모두 다양한 학문적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 것으로 해석된다. 학문 영역에서는 법적 잣대가 아닌 학문적인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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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2.28기념 중앙공원’ 인근 도로에 설치된 대구 평화의 소녀상/사진=대구평화의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학문의 자유 아래 피해자 위한 낙원은 없나

법원의 취지는 학문의 영역에 있어 존재하는 ‘학자의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즉 명확하고 깔끔하게 밝혀지지 않아 사료 해석에 있어 관점이 엇갈리는 부분을 인정하겠단 의미다. 실제로 같은 사료를 보고도 관점에 따라 해석이 갈리는 경우는 결코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한 조선인 위안부 관리인의 일기다. 해당 사료에 대해 우리나라 측은 위안소의 운영에 대한 군부의 직접적 개입에 중점을 두며 사실상 일본군이 전면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일본 측은 필자가 위안부에게 부탁을 받고 성행위의 대가로 받아 저금한 액수 중 600엔가량을 본국으로 송금했다 기술한 내용에 중점을 두며 “조직적인 위안부 모집 활동은 있었으나 거액을 제시한 업자의 모집행위로 인해 군이 개입해 모집할 이유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이 학자가 학문적 분석을 통해 일정한 관점을 도출해 냈을 때 이것이 단순히 ‘국민적 감정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게 법원 판결의 요지다.

이처럼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함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연구를 통해 도출된 결과가 잘못됐다면 또 다른 연구를 통해 이를 반박하면 된다. 다만 이 과정을 지나치는 동안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학문적 충돌이 생존한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로 비춰질 수 있단 우려는 학자들도 분명 인지해야 할 지점이다. 법감정과 역사인식에 반하는 판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이 편치 않은 이유다.

재판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는 건 법조계 내부에서조차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 박유하 교수의 경우 2심 재판에선 유죄 판결이 났었다. 이에 일각에선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 이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일의 경우 이미 역사를 부정하는 발언에 대해 형법에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나치의 만행을 옹호하거나 심지어 그런 일이 없었다는 발언만 해도 최대 5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독일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2차대전 이후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드러냈더니 화내더라”, “학문은 학문으로만 봐야 하는데” 같은 인식은 선민사상에 가깝다. 일본군 위안부 중 실제 피해자와 ‘끌려가지 않은’ 매춘 행위자가 섞여 있다 판단한 학자라 할지라도 이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실제 피해자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국내에서도 학문적 이해를 존중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이들 학자의 태도는 대체로 일관적이었다. 이는 앞서 유죄 판결을 받은 류석춘 교수의 “정대협이 피해자들에 강제 연행을 말하도록 교육했다”는 발언으로 쉽게 알 수 있다. 학문에 파묻혀 현실에 도태되지 말아야 함은 학자의 자질이며,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피해 호소인’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을 경계해야 함은 국가의 의무다. 이를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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