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와 북한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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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2019년 북·미 회담 결렬 후 핵 개발과 고립의 외교 노선 고수
중국·러시아·미국 등 주요국간 갈등 고조되며 국제 정세도 급변
김정은 일가 후계 구도, 경제 정책 변화 등 북한 내부의 변화 포착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북한과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두 차례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비핵화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양국 간 대화는 장기간 교착 국면에 빠졌다. 당시 북한은 영변 비핵화를 조건으로 대북제재의 완전 해제를 제안했으나 미국은 북한 내 전 지역의 완전 비핵화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고 결국 미리 준비된 선언문은 채택되지 못 했다. 지난해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걸어온 외교노선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미국·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 국제사회의 제재와 국경 개방, 후계구도의 재편 등 주목할 만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일가의 권력 장악력이 그 어느때보다 강력하다는 점에서 북한 내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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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East Asia Forum

중국, ‘전략적 완충지’ 북한에 대한 원조 강화

지난해 북한을 둘러싼 주요한 변화 네 가지를 살펴보면 그중 첫 번째는 미·중 관계다.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과 긴장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북한의 국내 정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19년 중국은 미국과의 대립이 심화하자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대로 간주하고 북한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지원이 북한 경제의 성장을 촉진하지는 못했지만 경제 붕괴가 김정은 정권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북한은 ‘김일성 혁명역사’부터 중국의 개혁·개방과 북한 핵 개발까지 주요 사안에서 중국과 노선을 달리해 왔고 이로 인해 오랜 기간 중국에 대한 불신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중국과의 공조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엔의 제재 조치는 다른 국가와의 경제 교류를 어렵게 만들었고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은 북한이 핵 개발과 군사적 도발을 멈추지 않는 한 제재를 해제할 의사가 없고, 북한 역시 핵무기가 자신들의 국가 정체성과 정치적 생존에 직결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19년 이후 중국이 북한에 대한 원조를 강화하자 북한은 2012년부터 추진해 온 경제 개혁을 중단했다. 지난 2012년 북한은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도입,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 시행 등 경제관리체계 개혁을 단행한 바 있다. 이어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국영기업의 시장경제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경제특구와 지역별 경제개발구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간 북한의 지도자들과 공산당 내부에서는 경제 개혁으로 인해 통제하기 어려운 시장경제 시스템이 유입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경계해 왔다. 현재 북한은 이같은 경제 개혁의 잠재적인 위협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1970년대 추진했던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로 회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지만,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자율성을 제한하는 일련의 조처들은 오히려 경제적 비효율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 간 협력이 재개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북한에 비해 우월한 경제력을 가진 한국의 원조는 북한의 입장에선 얄팍한 위장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지난 2022년 우파 성향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정책이 강경 기조로 전환됐다. 만약 진보 성향의 정부가 집권했다고 하더라도 유엔의 제재 조치를 위반해가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원조를 강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김주애 공개하며 차기 후계 구도 공고화

두 번째는 차기 후계구도의 변화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은 차기 정권 이양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22년 11월 북한의 화성-17 발사 현장에서 딸 김주애로 추정되는 소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후 김주애는 북한의 주요 공식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이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하고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란 공식 의견을 내놨다.

김정은 위원장이 세 자녀 중 아들이 아닌 딸을 선택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지만 북한은 이미 여성을 요직에 승진시킨 전례가 있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의 정권은 물려주기까지는 최소 10~15년이 걸리기 때문에 아직 김주애는 후보에 불과하다. 만약 김 위원장이 가까운 미래에 권력을 잃고 무력화된다면 여동생 김여정이 가장 유력한 후계자가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탄약 제공-기술 이전 대가로 북·러 공조 강화

세 번째는 북·러 관계의 변화다. 지난해 러시아는 북한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서 다시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지난해 7월 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러시아 극동 지역을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그동안 북한과 러시아 간 교류는 주로 군사적인 측면에 집중돼 왔다. 외신에 따르면 북한은 북·러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지난 2022년부터 이미 러시아에 대량의 무기를 공급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는 북한 나진항의 컨테이너 사진을 공개하면서 북한이 러시아에 컨테이너 1,000개가 넘는 분량의 군사 장비와 탄약을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양측 모두 심각한 탄약 부족에 시달리고 있음을 고려할 때 북한의 이같은 군사적 공조는 국제사회에서 중대한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양국 간 군사 협력의 강화 가능성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러 정상회담은 평양으로부터 2,300km 이상 떨어져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개최됐고 두 지도자는 회담에 앞서 우주기지를 함께 걸으며 소유스-2 우주 로켓 발사시설 등을 둘러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포탄 공급에 대한 대가로 러시아는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군사 기술 이전을 약속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기술 이전은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국익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군사기술을 완전히 이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북한과 러시아가 양국 간 군사 협력을 숨기지 않고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한국과 미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행위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주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실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무기 수출국으로,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공급하지는 않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느라 재고가 부족해진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궁극적으로 한국이 우호국에 무기를 수출함으로써 우크라니아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에 대한 군사 기술 이전을 촉발시키는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국내·외 정세 변화에도 김정은 권력은 견고할 것

마지막으로 북한의 국경 개방이다. 지난해 9월 북한은 코로나19로 완전 폐쇄됐던 국경을 전면 개방했다. 2020년 1월 ‘국가비상방역체계 전환’을 선포하며 국외에서 들어오는 항공, 열차, 선박의 운항을 중단한 뒤 3년 8개월 만이다. 국경 개방에 앞서 지난해 3월에는 왕야쥔 북한 주재 중국 대사가 평양에 부임했고 같은 해 7월엔 러시아와 중국 대표단이 전승절을 맞아 평양을 방문했다.

지난해 8월에는 해외 체류 주민들의 귀국을 공식 승인하면서 국경을 개방한 이후 지난 3년간 해외에 발이 묶여 있던 북한 주민 상당수가 귀환할 수 있었다. 이어 블라디보스토크, 선양 등 러시아와 중국을 오가는 항공노선이 운항을 재개했고, 한 달 뒤인 9월부터 외국인 입국을 전면 허용했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와 중국의 관료들에게만 국한된 매우 선별적인 조치로 현재 북한에 설치·운영 중인 대사관 수는 코로나19 발생 전 23~25개에서 6~7개로 감소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스스로 고립된 채로 남아 있다. 경제 개혁을 위한 시도는 효과를 보기에는 너무 짧았고 현재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원조를 기대하며 정권을 유지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불행히도 두 나라 모두 북한을 무한정 지원할 능력과 의지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김정은 일가는 이같은 격동의 시기에 전례 없는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원문의 저자는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Lankov) 국민대학교 교수이자 NK 뉴스 디렉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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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란코프/출처=NK 뉴스

영어 원문 기사는 Diplomatic shifts belie continuity in North Korea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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