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달리는 노정관계, 경사노위 부활에도 논의는 ‘지지부진’하기만
노사정 사회적 대화 '시동', 정작 노정은 여전히 '강대강 싸움' 저성장 넘은 '제로 성장' 시대 도래, "정책적 합의 시급해" 윤석열 정부는 '반노동적'?, "단순한 진영 논리 벗어 던져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6일 오전 서울 중구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노사정 대표자급이 참여하는 제13차 본위원회를 개최했다. 본위원회는 경사노위 내 최고 의결 기구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 일·생활 균형 제고,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에 초점을 맞춘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시장에서는 정책 갈등으로 동력을 잃었던 노사정 대화 채널이 다시 켜진 것을 반기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전히 ‘강대강 싸움’이 어이지고 있는 만큼 당분간은 갈등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사노위 ‘재가동’, 일자리 등 사회 문제 논의한다
6일 경사노위 대회의실에는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을 비롯해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등 근로자위원 4명,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회 회장 등 사용자위원 5명,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 정부위원 2명, 공익위원 4명 등 총 17명이 참석했다. 이날 노사정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의식·관행·제도 개선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고용노동 시스템 구축 △지속 가능성을 위한 미래세대 일자리 창출 등 3개 의제를 사회적 대화를 통해 다룬다는 내용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원칙과 방향’ 선언문에 합의했다.
구체적으로는 경사노위 산하에 △지속 가능한 일자리 및 미래 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 △의제별 위원회인 일·생활 균형위원회 △인구구조 변화 대응을 위한 계속고용위원회 등 총 3개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경사노위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미래 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에서 산업 전환, 불공정 격차 해소, 유연 안정성 및 노동시장 활력 제고, 대화와 타협의 노사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제별 위원회 중 하나인 일·생활 균형위원회에서는 장시간 근로 해소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 및 유연성, 건강권 보호, 일하는 방식 개선 등을 논의할 것”이라며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계속고용위원회는 정년 연장 방안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중고령층 노동시장 참여 확대 방안, 청년·고령자 상생 고용 방안, 중고령자 전직·재취업 지원 확충 방안 등을 다룰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외 특별위원회의 경우 의제별 위원회보다 논의 범위가 넓은 만큼 논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의제가 추가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화 채널 형성, 노정관계 회복 ‘시그널’ 될까
노사정 대화가 재개되면서 시장에선 노정관계가 회복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오랜 시간 지지부진한 싸움만 이어 온 상황인 만큼 서로 물러나며 일정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당분간 노정관계 개선은 요원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전히 ‘강대강’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정부는 올해에도 노동계가 반대하는 내용의 정책을 대거 꺼내 들었다. 지난 4일 정부는 “노동시장 이동성 강화, 직무 중심 인사관리 도입, 임금 격차 해소 등을 위한 이중구조 개선 대책을 상반기에 마련하겠다”며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시사했다. ‘몰아 쓰기’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노동시간 유연화도 거듭 타진했다. 정부는 “노사정 대화를 거쳐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및 보완 방안을 상반기 중에 마련하겠다”며 “주 52시간제 틀을 유지하되 우선 적용 업종·직종, 연장근로 관리 단위 및 상한 등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가 거듭 반대 의사를 내비친 바 있는 정책을 그대로 진행하겠단 의지를 내보인 만큼 노정 간 갈등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노동계 또한 정년 연장 등 숙원 정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해 7월엔 경사노위 차원에서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발족하며 거듭 정부에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당시 경사노위는 “초고령사회는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잠재 경제성장률을 저하시켜 경제사회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며, 국민연금·건강보험 지출 증가, 노인 사회보장비 증가 등 세대 간 갈등도 우려된다”며 “고용·임금 시스템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년 연장의 가장 큰 쟁점은 ‘방법론’이다. 정부는 정년퇴직한 노동자의 재고용을 장려하기 위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계속고용장려금 제도를 확대·개편하는 방향을 거의 확정 지은 상태지만 노동계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한국노총의 경우 지난해 6월 사회적 대화를 전면 중단하겠다 밝히면서 경사노위의 유명무실화에 결정적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노정 갈등의 미로에 끝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소모적 논쟁 이어가는 노정, “이제는 바뀌어야”
다만 이제는 지지부진한 논의를 끊어내야 할 때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성장을 넘어 제로 성장의 위기에 놓여 있다. 기업의 성장이 뚝 끊기면서 경제 순환 구조가 망가진 탓이다. 정부가 노동계의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 건 가시화한 경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수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차후 국내 경제가 역성장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계층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동계일 것이다. 노동계 입장에서 당장의 임금체계 개편이 불편할 수 있겠으나, 최소한 정부의 노동 정책에 천편일률적인 ‘악마 놀음’을 이어가는 행동은 멈출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 개편 정책 전반을 무작정 보수 정부 특유의 친기업적 내지 ‘반노동적’ 행보로 몰아세워선 안 된단 의미다.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는 임금체계 논의는 애초 반노동적이라 보기 힘들다. 임금체계 논의는 기존 연공급 중심의 호봉제로는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대비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됐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신입사원과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 격차는 3.3배에 달한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임금이 늘어나는 체계가 이어진다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지 않는 보편적인 사회 문제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 또한 대선 공약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내세우는 등 임금체계 개편을 타진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에 반발한다는 노동계의 태도가 ‘미성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정부는 원하는 걸 모두 내어줄 수 있는 신이 아니며, 사회는 언제나 이익만을 추구할 수 있는 형편 좋은 공간이 아니다. ‘줄 건 주되 받을 건 받겠다’는 거래자로서의 자세가 노동계에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