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안 마신다” 소비자의 태세 전환, 힘 잃은 수입업체 줄줄이 ‘구조조정’
하이네켄코리아·디아지오코리아, 연달아 구조조정 소식 발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반짝 성장세' 끝났다, 실적 내리막길 과음보다 분위기 즐기는 술 소비문화, 수입 주류 설 자리 잃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급성장한 수입 위스키·맥주 업계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위스키 수입 업체인 디아지오코리아, 맥주 수입 업체인 하이네켄코리아 등은 최근 줄줄이 구조조정 소식을 전했다. 팬데믹 이후 주류 소비문화가 변화하며 수입 위스키·맥주 수요가 눈에 띄게 감소한 가운데, 업황 악화롤 견디기 위해 본격적인 ‘덩치 줄이기’에 착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조조정 단행하는 주류 수입사
네덜란드산 맥주 ‘하이네켄’을 수입하는 하이네켄코리아는 최근 구조조정 소식을 발표했다. 160여 명의 전체 직원 중 3~4%를 감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맥주 소비가 뚜렷한 감소 추이를 보이는 가운데, 일본산 맥주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시장 점유율까지 하락하자 위기 대처를 위한 자구책을 내놓은 것이다. 하이네켄을 앞세운 네덜란드산 맥주는 2021년까지 수입 맥주 점유율 1위 자리를 유지해 왔으나, 지난해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캔’ 등 일본산 맥주에 자리를 내주며 2위로 밀려난 상태다.
조니워커 등 위스키를 수입하는 디아지오코리아도 근무 10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자발적 조기 퇴직 프로그램(ERP)을 진행 중이다. 조기 퇴직 신청자에게는 8~36개월 치 임금이 위로금으로 지급된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이번 ERP에 대해 “직원들의 적합한 커리어 선택을 돕기 위한 자발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으나, 업계는 이를 위스키 매출 감소 및 실적 악화 우려 등으로 인한 ‘덩치 줄이기’ 전략으로 풀이하고 있다.
디아지오코리아가 희망퇴직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주류 시장 전반이 가라앉았던 지난 2014년과 2018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1년 등 수차례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2022년에는 ‘윈저’ 위스키 브랜드를 매각하며 희망 퇴직자를 받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디아지오코리아가 조니워커, 탈리스커, 라가불린 등 인기 위스키 포트폴리오를 갖췄음에도 불구, 국내 시장에서 좀처럼 입지를 다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팬데믹 이후 찾아온 ‘먹구름’
이들 기업은 코로나19의 엔데믹 전환 이후 실적 악화 부담에 짓눌리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 수입 맥주 시장에서 2년 연속 1위를 달성했던 하이네켄은 엔데믹 기조가 본격화한 2022년 이후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하이네켄의 2022년 영업이익은 2019년 대비 55% 낮아진 129억원에 그쳤다. 주류업계는 하이네켄코리아의 작년 실적이 2022년보다도 악화했을 것이라 추산한다. 지난해 하반기 수익성 확보를 위해 하이네켄 등의 판매가를 평균 11%가량 인상했지만, 이렇다 할 실적 개선 효과는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내리막길을 걷던 수입 위스키 업계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반짝’ 성장세를 보인 바 있다. 2022년 위스키 수입액은 전년(2021년) 대비 52% 폭증, 15년 만에 최대치까지 성장한 바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확산한 ‘홈술(Home+술, 집에서 마시는 술)’ 유행으로 인터내셔널 위스키(발렌타인·조니워커·로열 살루트), 싱글몰트 위스키 등 고가 주류 상품 수요가 증가한 결과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산한 ‘하이볼(위스키에 탄산수나 토닉 워터 등을 섞은 술)’ 유행 역시 수입 위스키 성장세를 견인했다.이에 힘입어 지난해 국내 위스키 수입량은 3만586t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십여 년 만에 찾아온 성장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 들어 위스키 수입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위스키류(스카치·버번·라이) 수입량은 2,031t으로 전년 동기(2,801t) 대비 27.4% 감소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팬데믹 이후 장기간 이어진 위스키 유행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비자의 위스키 소비가 정점을 찍은 뒤 본격적인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이제 과음은 그만” 한국 주류 소비문화 변했다
수입 주류 시장 침체의 원인으로는 청년층의 ‘주류 소비문화’ 변화가 지목된다. 청년층은 위스키 등 ‘독주’를 직접 마시는 것을 피하며, ‘믹솔로지(Mixology)’ 트렌드에 맞춘 부드러운 주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직접 술을 제조해서 마시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이들은 자신만의 ‘레시피’에 따라 술과 음료를 섞어 △알코올 도수 △맛 △향 △색깔 등을 변경, 개인 취향에 맞춘 술을 즐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음주 문화 전반이 변화하며 주류 수요 전반이 감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기 전반이 악화하고 건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장시간 이어지는 술자리 △과음 △고가 주류 등을 기피하는 경우가 늘었고, 짧은 시간 내로 간단하게 식사·반주를 즐긴 뒤 해산하는 모임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장시간 음주를 기본으로 하는 기업 단체 회식이 식사와 대화 중심의 ‘점심 회식’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음주 강요 등 과음을 유발하는 문화로 문제시되던 대학생 술자리 역시 보다 자유롭고 가벼운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다.
일부 청년층은 과음으로 통제력을 잃는 것을 피하기 위해 ‘무알코올 맥주(맥주의 맛을 지녔으나 알코올 도수는 1% 미만인 성인용 음료)’를 찾기도 한다. 취하지 않은 채 술자리 분위기만을 즐기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2014년 81억원에서 2021년 약 200억원 규모로 2.5배 성장했으며, 차후 2025년 약 2,0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주류 문화 전반이 변화하며 소비자의 주류 상품 수요 자체가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차후 믹솔로지 열풍에 올라탄 일부 위스키 상품을 제외한 수입산 주류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