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미국 뒤쫓아 ‘탄소 감축’ 본격화한 한국, ‘단기적 성공은’ 어려울 듯
글로벌 아젠다로 자리 잡은 '녹색 성장', 한국도 따라간다 제조업 기반의 국내 산업계, 섣부른 정책은 산업계 붕괴 부를 수도 정책 '유도책' 확실치 않은 한국, '골든타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정부가 기업들의 탄소배출 감축 관련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탄소차액계약제도(Carbon Contracts for Difference) 도입을 구체화한다. 다만 탄소차액계약제도를 단기간 내 우리나라에 확립시키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섣불리 정책만 내걸었다간 제조업 기반의 국내 산업계 전반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탄소차액계약제도’ 타진, 탄소 경쟁력 강화한다
환경부는 25일 기업의 탄소 경쟁력 강화를 위해 ‘탄소차액계약제도 운영방안 및 시범적용 연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차액계약제도란 기업이 탄소감축설비에 투자하면 정부와의 계약을 사전에 합의된 배출권 가격을 보장하는 제도다. 재생에너지 시장의 차액계약제도(CfD)를 차용한 것으로, 이는 탄소가격의 불확실성을 해소해 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고안됐다. 환경부 측은 “탄소차액계약제도는 탄소 경쟁력 강화 방안의 일환”이라며 “올해 내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적용할 기술을 검토함으로써 내년도께 시범사업을 위한 방법론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정부가 보다 강력한 탄소중립을 타진하고 나선 건 최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탄소중립의 중요도를 더욱 높이는 추세기 때문이다. 실제 EU(유럽연합)는 탄소국경조정(CBAM)을,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기후위기와 무역을 연계하는 조치를 내놓은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구조 자체가 철강 등 탄소 다배출 업종에 집중된 만큼, 현시점은 탄소중립을 강화할 ‘골든타임’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는 탄소 경쟁력을 잃음으로써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는 위기에 놓일 수 있다”며 “탄소중립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이번 연구를 통해 CCfD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를 설계하고 시범적용을 검토할 방침이다. 업종별로 저탄소기술 개발 수준과 온실가스 배출 특성, 감축 여력, 시급성 등을 고려해 적용 가능한 기술을 검토하며, 보조금 산정 방법 등을 마련하겠단 계획이다. 배출권거래법을 활용한 법적 근거 마련, 재원 조달 방안, 기획재정부의 적합성 심사와 같은 행정 절차 등에 대한 검토도 이뤄진다. 이를 통해 CCfD 운영 절차와 기준을 규정하는 ‘CCfD 운영지침’을 만들겠단 구상이다. 환경부는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건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신기술 도입 시 감축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지원 제도 마련”이라며 “기업의 감축투자 유도를 위해 탄소차액계약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도입 방안 및 국내 적용 방안 등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기간 확립은 어려울 수도, “장기적 관점에서 봐야”
다만 탄소차액계약제도를 단기간에 확립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애초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탄소중립을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나라 중 하나기 때문이다. 특히 앞서도 언급했듯 우리나라의 가장 기본 바탕을 이루는 산업은 제조업이다. 통상 제조업 전반은 탄소 다배출 업종에 속한다. 즉 아무런 준비 없이 당장 탄소차액계약제도만 도입할 경우 우리나라 산업계가 밑바탕부터 무너질 수 있단 의미다. 정부로서도 섣부른 정책 결정을 꺼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책상 어려움이 짙다면 이산화탄소포집·활용·저장(CCUS) 설비 구축이라도 당장 시행해야 한단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오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CCUS는 설비 구축에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반면 수익화 모델이 마땅치 않아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국은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원유회수증진(EOR)에 이용함으로써 수익화했고, 유럽은 탄소세가 높고 배출권이 비싼 환경적 특성상 CCUS 투자 유인이 가능했지만, 우리나라는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t당 100유로를 오르내리는 유럽과 달리 국내 배출권 가격은 1~3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다, EOR처럼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이용할 방법도 없다. 국내 기업이 CCUS에 투자할 명분 자체가 없는 셈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정책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단기간 해결은 불가능한 위치에 서 있는 만큼 탄소중립 문제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