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육아 함께하자” 변화하는 한국 산업계, 출산율 제고 효과는 글쎄
'육아기 근로기간 단축' 수요 폭증, 양육 부담 경감 효과↑ 육아 지원에 힘 쏟는 산업계, 육아휴직·출산휴가에 힘 보탠다 분위기 변해도 구조적 문제는 여전해, 출산율 제고는 언제쯤
지난해 육아휴직자 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생아 수 감소와 더불어 올해부터 확대 시행되는 부모육아휴직제 등이 감소 추이를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육아휴직 대비 기업과 근로자의 부담이 적은 ‘육아기 근로기간 단축’ 사용자는 사상 최대치까지 폭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저출생 현상이 국가적 위기로 부상한 가운데, 산업계를 중심으로 근로자 육아 지원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는 양상이다.
육아휴직은 줄고, 근로 시간 단축은 늘었다
25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육아휴직자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는 12만6,008명으로 전년 대비 5,076명(3.9%) 감소했다.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3만5,336명(28%), 여성은 9만672명(72%)으로 집계됐다. 남성 육아휴직은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였으나, 5년 전인 2018년(1만7,662명)과 비교하면 자그마치 2배가 늘었다.
육아휴직자가 눈에 띄게 감소한 가운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는 오히려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자는 2만3,188명으로 전년 대비 3,722명(19.1%) 증가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전체 사용자 중 중소기업 근로자 비율이 64.4%에 달한다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 부담이 큰 만큼, 다수 근로자가 육아휴직의 ‘대체재’ 성격으로 해당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저출생 현상 심화 이후 산업계 전반의 흐름이 ‘육아 친화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한국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상위권 수준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7일 공개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보장 수준이 OECD 38개국 중 다섯 번째라는 분석을 내놨다. 기간과 급여를 종합해 분석한 결과, 한국의 출산휴가·육아휴직 보장 수준이 일본을 제외한 G5 국가(독일·프랑스·영국·미국)와 대표적 복지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 등보다 높다는 것이다.
“기업도 육아 함께해야” 산업계의 육아 지원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기업의 ‘육아 지원’은 저출생 해소를 위한 필수 요소로 꼽힌다. 최근 청년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으로는 △경제적 부담 △돌봄 공백 △맞벌이 여성의 업무·육아 이중 부담 △임신한 여성에 대한 직장 내 차별 등이 지목된다. 현실의 장벽에 부딪힌 젊은 세대에게는 임신이 축복은커녕 인생의 ‘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무수한 노력에도 출산 기피 기조는 꺾이지 않았고, 결국 2020년 우리나라는 사상 최초의 인구 데드크로스(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현상)를 맞이했다.
인구 위기가 본격적으로 가시화하자, 우리 사회에서는 저출생이 곧 국가의 위기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업·정부가 출산과 육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각 기업 역시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중심으로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문화를 선도,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회 전반이 양육에 참여하는 일종의 ‘공동 육아’ 문화가 등장한 셈이다.
단순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넘어 한층 발전된 육아 복지를 추구하는 기업들도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신청을 전제로 하는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당연히’ 사용하는 것으로 간주, 미사용 시에만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출산휴가·육아휴직 사용을 보편화해 직원이 휴가 사용 시 눈치를 보지 않도록 돕는 기업 측의 배려로 풀이된다. 또한 직원이 출산 이후 육아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기업들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육아 환경 나아진다고 출산율 오를까
사회 전반이 육아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 같은 지원책이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기업·공기업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이 육아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일어나진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금전적 여력이 부족하고 인력 보충 부담이 큰 중소기업의 경우, 여전히 근로자의 출산휴가·육아휴직 사용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수많은 근로자들은 육아 지원 제도 사용을 위한 ‘눈치 싸움’에 시달리고 있다.
곳곳에서는 육아 문제가 저출생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비교적 육아 부담이 적은 국가에서도 저출생 문제가 속속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홍콩의 경우 한국보다 1인당 소득 수준이 월등히 높은 데다, 한국의 절반 가격으로 입주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는 만큼, 양육 공백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2022년 기준 홍콩의 합계 출산율은 0.7명까지 떨어졌다. 이는 같은 해 한국의 합계출산율(0.78명)과 맞먹는 수준이다. 양육 부담 완화가 무조건 출산율 제고로 이어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셈이다.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는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대다수의 청년이 가정을 형성하고 돌보기는커녕, 당장 자신의 생존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안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 무작정 아이를 낳는 것은 일종의 ‘불행의 대물림’이라고 본다. 이에 일각에서는 실효성 없는 저출생 대책을 쏟아내기 전, 청년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우선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청년층이 잠시 숨을 고르고, 보다 확실한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