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도우미 월급만 200만원인데 실효성 있나, “정부 차원의 대책 필요”
높은 육아 돌봄 비용에 출산 고민하는 가정↑ 외국인 도우미채용길 열렸지만 높은 임금이 장벽 저출생 해소 위해선 내국인과 임금 차등 적용해야
지난해 말부터 필리핀 가사도우미(가사관리사)를 서울 지역 가정에 채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지만, 입주 가정부가 아닌 출퇴근으로만 채용할 수 있는 데다 일당도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과 노동법을 동이하게 적용받아 월 200만원이하로는 고용할 수 없다. 이에 언어가 잘 통할 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임금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아이 돌봄 부담 높아, 둘째는 사치
13개월 아이를 키우는 A씨는 “두 달 뒤면 1년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해야 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라며 이같이 털어놨다. 정씨는 출근하면 아이를 봐줄 ‘이모님’을 구하는 중인데 월 250만원 비용도 부담스럽지만 마음도 편치 않다. 같은 워킹맘 팀장의 배려로 야근 없이 칼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면 오후 6시40분,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풀타임으로 보모를 고용해도 저녁엔 약 40분 공백이 생긴다. A씨는 “나이 든 친정어머니께 부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런저런 마음고생을 하다 보면 둘째는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각종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육아 현장의 체감 효과는 아직 높지 않다. 경기 사는 워킹맘 B씨는 “학교 돌봄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돼야 하는데 맞벌이 부부여도 3~4순위고 그마저도 2학년이 되면 순위가 또 밀린다”며 “맞벌이 부부의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원 뺑뺑이’가 시작된다”고 했다. 학교에 대한 불신도 많다. 여덟 살 아이를 키우는 C씨는 “초등학생은 보육보다 교육이 필요한 시기인데 학교보다 사설 학원의 질이 높다고 생각해 학원을 보낸다”며 “대부분 친구가 학원에 다니다 보니 아이도 학원에 가야 친구들을 만난다”고 말했다.
정부, 가사서비스 시범사업 진행하고 있지만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울지역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100여명을 도입해 가사서비스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용부가 발표한 시범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도입하는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약 100여 명 규모로 예정됐으며 구체적 규모는 나중에 확정된다. 도입 기간은 6개월이다. 이용자는 서울시 전체 자치구에 거주하는 직장에 다니는 20~40대 맞벌이 부부, 한 부모 가정, 임산부 등을 중심으로 한다. 다만 시범사업인 만큼 소득·지역 등이 편중되지 않도록 배분하기로 했다. 정부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 인증을 받은 서비스 제공기관이 외국인 가사근로자들을 고용허가제를 통한 비전문 취업(E-9)비자로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가사도우미 송출 국가는 고용허가제 업무협약국가인 동시에 가사서비스 관련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필리핀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 필리핀에서 가사 근로자가 되려면 20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고 검증을 통과해 국가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 취업할 때는 필리핀 정부에 이 자격증을 제출해야 한다. 고용부는 이와 별개로 외국인 가사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관련 경력·지식, 나이, 언어능력, 범죄이력 등을 검증하기로 했다. 입국 전후로 한국어·문화, 노동법, 가사·육아 관련 기술, 위생·안전 등 실무 관련 교육도 진행한다.
가사 서비스 제공 방식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직접 가정과 이용 계약을 맺고 가사 및 육아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가사도우미는 상시 거주가 아니라 출퇴근을 하게 되며, 가사근로자 숙소는 서비스 제공기관이 마련한다. 대신 서울시가 1억5천만원 상당의 예산을 투입해 숙소비, 교통비, 통역비 등 초기 정착 소요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임금 “너무 비싸다”
하지만 외국인 가사 근로자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에 적용되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시범사업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최저임금 적용 등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조건이 적용된다. 근로기준법 역시 적용되지만 휴게·휴일, 연차휴가 등 일부 규정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정부는 기존의 국내 가사도우미 서비스 시세인 시간당 1만5,000원보다는 낮은 수준으로 비용을 유도하겠다는 해명을 내놨다. 파트타임제 도입으로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정 지원 방안은 빠져 있어 수요자가 정부 예상 가격을 부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문제를 풀지 못하면 결국 ‘공염불’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대구에 거주하는 한 40대 여성은 “외국인을 집에 들여 일을 맡기는 것에 대한 신뢰 문제와 문화적 차이 등 불편함이 있지 않으냐”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이용하는 이유는 낮은 비용 때문인데 최저임금 이상이면 굳이 내국인 대신에 사용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30대 여성도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을 왜 맞춰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월 200만원을 지급한다면 필리핀 대기업에 다니는 것보다 대우가 좋은데 일반 가정 입장에서는 부담이 상당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 역시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해 최저임금 제외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은 “홍콩·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월급은 약 40만~70만원”이라며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국내 최저임금을 지급한다면 가계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도 “홍콩은 가사도우미의 상대임금이 1990년대 들어 30~40% 수준으로 줄면서 수요가 늘어났다”며 “한국도 가사도우미 임금이 월 100만원 정도에 머물러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는 내국인과 차별 임금 지급
반면 해외 일부 국가는 상황이 다르다. 홍콩·대만·싱가포르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해 내국인 가사도우미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한다. 홍콩과 대만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사회 시선에서 자유로워 외국인에게 내국인과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최저임금제도 자체가 없다. 다만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병원비와 사회보험료, 거주 공간 등을 제공해야 한다.
이에 외국인 가사도우미 임금에 차등을 두기 어렵다면 가정의 부담을 덜어줄 정부·지자체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주거비용이나 복지비용을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시켜 실질적인 비용을 낮추는 방안도 거론된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정부나 지자체가 저출생 해소를 목적으로 한 바우처를 발급해 각 가정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고용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예산 범위에서 지원액을 정해 지급한다면 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