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없는 밸류업·여전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정부 ‘특단 대책’ 내린다지만 “배당 압박 부작용 감당 되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나선 정부, "배당 확대하면 법인세 완화" 파격적인 인센티브에 우려 목소리도, "배당은 기업의 경영전략" 배당 압박 괜찮을까, "오히려 기업 여력 약화할 수도"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린다.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준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깎아주겠다 나선 것이다. 주주 환원액 중 일정 부분을 세액공제해 법인세 과표를 낮춰주는 방식이 현재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배당을 늘린 기업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 대해서는 현재 15.4%인 배당소득세를 경감하는 방안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재부 “주주 환원 기업에 세제 지원할 것”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자본시장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주주 환원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방향을 밝혔다. 정부가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위해 파격적인 세제 혜택 카드까지 꺼내든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26일 ‘기업 밸류업’ 대책을 발표할 당시 세제 혜택 부문이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 데 대해 보완을 이루겠단 의도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최 부총리는 “보다 많은 기업이 배당,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 확대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주주 환원 증가액의 일정 부분에 대해서 법인세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배당을 늘리는 기업에 대해서는 일정 범위 이내에서 세금을 깎아주겠단 것이다. 자사주 소각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최 부총리는 이어 “배당 확대 기업 주주에게는 높은 배당소득세 부담을 경감하겠다”고 전했다.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를 추진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분리과세가 도입되면 배당소득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 소득에 합산되지 않게 되면서 누진세율(최고세율 49.5%, 지방세 포함)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될 전망이다.
현행 배당소득세 원천세율은 15.4%이다. 다만 구체적인 법인세 경감 대상 자사주 소각 규모나 배당소득세 완화 방안(배당 증가액 기준 등)은 따로 제시된 바가 없다. 이와 관련해 한 기재부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체적인 방식을 결정해 오는 7월 세법개정안 발표 전 공개할 예정”이라며 “배당소득세의 경우 세액공제, 소득공제, 분리과세 방식을 모두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엇갈리는 시장 반응, “인센티브 부여 의미 있어” vs “부작용 우려”
정부의 적극적 태도에 시장은 긍정적 반응을 쏟아냈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주주 환원을 확대하기 위해선 자사주 매입을 넘어 소각이 중요하다”며 “이를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정부가 부여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의 관심 아래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마무리되면 시장 전망이 더욱 밝아질 수 있단 기대를 드러낸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부정적인 시각도 나온다. 무조건 배당을 강요하는 게 능사는 아니란 지적이다.
정부 차원에서 배당을 압박한 사례는 지난 2015년에도 있었다. 당시 국민연금공단은 향후 배당이 지나치게 낮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합리적인 배당정책을 수립·공개하도록 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해 소액주주가 주주제안 참여를 요청하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의 자율적 경영전략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의사 표시를 한 셈인데, 이는 외국 기업과 비교해 한국 기업의 배당 성향이 낮다는 시각이 잠재된 결과물이었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도 상당한 고육지책이었음에 틀림없다. 2015년 당시는 엔저 현상 지속, 국제원자재시장의 변동 등 부정적인 대외 경제환경 속에서 경기둔화 조짐마저 보이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약세가 뚜렷하게 나타나던 시기였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기업이 망하지 않고 생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던 때란 의미다. 다만 문제는 배당으로 이익을 다 소진하면 미래에 대한 투자나 순식간에 다가오는 위기 상황을 대비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정부 차원에서 배당을 압박하면 결과적으로 기업의 유보금이 줄어 적시 투자를 오히려 방해하는 결과가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배당은 기업 경영전략 중 하나다. 기업 경영전략을 정부의 입맛대로 조정할 때 벌어질 사태를 정부는 책임질 수 있을지, 한 번쯤 재고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필요한 일이다.
조급함 느껴지는 정부, 총선 앞둔 영향인가
이런 가운데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이미 배당에 자본을 크게 사용하지 않겠단 뜻을 밝힌 상태다. 증권사·VC 인수 등을 통한 비은행 사업 진출이 최우선 순위인 만큼 자본 확충을 위해 배당을 줄이겠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증권·보험·VC 등 그간 시장이 불안정해 보류해 온 비은행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에 속도를 높여 나갈 것”이라며 “배당을 통해 자본을 사용하기보단 오히려 확충이 필요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증권사 관계자도 “우리금융의 자본비율은 경쟁사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게다가 M&A를 우선순위로 꼽고 있기 때문에 배당여력을 확대하기도 여의찮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분석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올해도 예년 수준의 배당 성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우리금융지주도 거듭된 배당 확대 압박에 부담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 바 있다. 지난해 1월 당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온라인 간담회를 통해 “우리금융이 현재 당사 PER이 2.4배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보다 높은 PER의 기업을 인수하는 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며 다올인베스트먼트 인수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성장에 자본을 활용하는 게 유리하다는 기업의 판단이 정부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사회적 흐름 아래 묵살되는 모양새가 나타난 셈이다. 올해도 정부의 압박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바,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것이 오히려 각 기업의 여력을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결국 다가오는 총선의 영향 아래 기업의 성장을 채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이 발현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당분간은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