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에 85억 달러 지원 시사한 미국, 자국 우선 ‘칩스법’에 삼성 위축 우려 나오지만 “미중 갈등 사이 삼성 내치진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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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텔이 칩스법상 최대 규모 지원 시사
대만·중국 의존도 낮춘다? TSMC 선두 '판' 엎어질까
미국 중심의 '현지 유인 강화' 본격화, 삼성도 인텔 못잖은 보조금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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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에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상 최대 규모인 195억 달러(약 26조원)를 지원한다. 칩스법은 국내외 기업의 미국 내 반도체 설비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법안으로, 반도체 생산 보조금으로 총 390억 달러(약 52조원),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총 132억 달러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약 70조원)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인텔이 최대 규모 보조금을 가져간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의 자국중심주의가 더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애초 반도체 보조금 지원 자체는 인텔과 삼성전자 사이 큰 격차가 없다는 점을 들어 크게 우려할 부분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미국 “인텔에 최대 규모 보조금 지급할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각)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에서 연설을 통해 인텔에 대한 지원을 직접 발표하고 나섰다. 미 정부의 인텔 지원금 규모는 기존에 예상된 100억 달러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다. 미국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이것은 반도체 산업을 변화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생태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앞서 상무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인텔에 최대 85억 달러(약 11조4,000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보조금에 더해 칩스법에 따라 110억 달러(약 14조8,000억원) 규모의 대출 지원을 인텔에 실시하겠단 방침이다. 상무부는 “최첨단 로직 칩은 인공지능(AI) 등과 같은 최첨단 기술에 필수적”이라며 “이번 자금 지원은 이런 칩이 더 많이 개발되고 미국 내에서 생산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인텔은 향후 5년간 1,000억 달러(약 134조원) 규모의 투자를 실시할 예정이다. 해당 투자로 차후 ▲ 애리조나에 최첨단 로직 팹(fab·반도체 생산시설) 2곳 건립 및 기존 시설 현대화 ▲ 오하이오에 최첨단 로직 팹 2곳 건립 ▲ 뉴멕시코 팹 2곳을 최첨단 패키징 시설로 전환 등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인텔 관계자는 “애리조나 시설 중 일부는 연말에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오하이오주 시설 건립은 2026년 말에 완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정부는 이번 지원 등을 통해 오는 2030년 전까지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전 세계의 2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단 목표다. 백악관은 “반도체는 미국에서 발명됐지만 오늘날 미국은 세계 반도체의 10% 미만을 생산하며 최첨단 반도체는 일절 생산하지 못한다”며 “미국은 반도체법 등을 기반으로 2030년 말까지 세계 반도체의 약 20%를 생산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실제 미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세계 반도체 제조 능력 점유율은 1990년 37%에서 2020년 12%로 급감한 상태다. 현재 미국 반도체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건 중국과 대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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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엎는 미국에 부담스러운 삼성, 보조금 격차 괜찮나

이번 인텔 지원 결정과 관련해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미국이 TSMC가 앞서고 있는 파운드리의 판을 엎어 버리는 것”이라며 “앞으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도 정부의 입김이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으로는 정부의 손끝에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의 향방이 갈릴 수 있단 의미다. 이렇다 보니 당장 삼성전자는 불안한 낌새를 느끼는 모양새다. 미국 정부로부터 60억 달러(약 8조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보조금을 지급받기 위해선 각종 까다로운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칩스법은 우선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초과 이익이 발생하면 보조금의 최대 75%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한계점이 명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군다나 칩스법엔 상세한 회계 자료와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각종 정보를 제출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제품별 생산 능력과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 △연도별 생산량과 판매 가격 증감 등이 영업 기밀에 해당된다. 미국과 대만,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공개가 꺼려지는 매우 민감한 정보다. 미국 정부를 통해 경쟁 기업으로 유출되면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부담스러운 건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가드레일’ 조항이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중국에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때 ‘가드레일’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건데, 이를 어기면 보조금을 반환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보조금을 받는 순간 삼성전자는 중국 현지 공장을 첨단화하는 데 장애를 겪게 된단 의미다. 한국 기업에 있어 중국은 최대 시장 중 하나다. 중국으로 반도체를 수출하고 중국 현지 공장을 다수 보유 중인 국내 기업 입장에서 미국의 보조금이 오히려 독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중 갈등에 중국 압박 가중, “삼성도 반사이익 기대해 볼만 해”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입장을 보면 삼성전자에 특별히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 60억 달러 수준의 보조금부터가 상당히 이례적이다. 당초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에 대한 반도체 보조금은 많아야 20억~30억 달러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400억 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고 있는 TSMC가 50억 달러 수준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추가 투자 의사를 보이면서 파격적인 보조금이 책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테일러 공장 건설 비용이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크게 늘었다는 점,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삼성전자 위상, 한미 양국 관계 등이 협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미국이 통 큰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삼성전자의 추가 투자를 이끌어내고 중국 반도체 굴기를 함께 압박하자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한다. 미국 입장에서도 삼성전자와 척을 질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김 교수도 “삼성전자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뿐 아니라 메모리와 패키징(후공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TSMC 의존도를 낮추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면서 “삼성도 엔비디아, AMD, 메타 등 미국 고객을 적극 유치하며 TSMC를 추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이번 반도체 보조금 지원도 자세히 뜯어 보면 삼성전자와 인텔이 받아 가는 액수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가 60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을 동안, 인텔은 85억 달러 정도를 받아 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 정부가 인텔에 110억 달러 수준의 대출을 지원하겠다 언급하긴 했지만, 대출은 어디까지나 간접 지원이다. 정부에 의한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만 따진다면 삼성전자와 인텔 사이 큰 격차는 없는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 정부는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사이 반도체 기업을 미국 현지로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다. 미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등 기업을 향한 ‘당근’을 거듭 던지고 있는 만큼 구태여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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