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성공에 방점, ‘실업급여’ 개편하는 프랑스, “獨 제치고 경제 엔진 꿰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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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실업급여 지급 기간 18개월에서 12개월로
연금개혁 성공 이끈 마크롱, 노동개혁 성공도 가시화
원조 유럽의 병자 취급 받던 프랑스, 개혁이 바꾼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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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실업급여 개편에 나선다.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18개월에서 12개월로 줄이고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로, 실업급여가 노동자의 재취업 의지를 꺾는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조처다. ‘근로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프랑스에서 또 하나의 쉽지 않은 개혁 카드를 던진 것으로, 지난해 연금개혁을 이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강성 노조의 거센 반대를 뚫고 개편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 실업급여 개편 계획 발표

27일(현지시간) 가브리엘 아탈(Gabriel Attal) 프랑스 총리는 현지 최대 민영방송 TF1과의 인터뷰를 통해 실업급여 개편 계획을 밝혔다. 아탈 총리는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프랑스 국민이 일할 필요가 있다”며 “실업 수당 제도를 개편하는 것도 실업자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고 더 많은 국민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취지”라고 전했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노동시장 활성화를 위해 실업급여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종전 18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하는 게 골자다. 단, 12개월 미만으로 단축하진 않을 예정이다. 프랑스 정부는 실업 수당 지급 기간을 개정하면서 실업수당 수급 요건도 강화할 방침이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2년 중 6개월만 근무해도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으나 앞으로는 6개월 근무 기간은 그대로 둔 채 기준 기간을 18개월로 줄일 계획이다.

프랑스 정부가 실업 수당을 개편하는 이유는 근로자들의 노동 의욕 저하 때문이다. 그간 프랑스는 실업급여를 과도하게 지급한 탓에 재취업 의지를 꺾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53세 이하 실업자에겐 최장 18개월간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있는데, 실업률이 9% 웃돌아 일자리가 부족한 경우에는 지급 기간을 6개월 연장할 수 있다. 53~54세 근로자의 경우 21~23개월간 실업 급여를 보장받고, 6~8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55세 이상 근로자는 기본 보장 기간이 최장 27개월에 9개월을 추가할 수 있다. 이처럼 연장 기간을 포함해 최장 3년에 걸친 지급 기간은 실직자들의 노동 의욕을 떨어트리는 주범으로 꼽혀왔다.

또 다른 이유는 재정 적자다. 지난 26일(현지시간)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프랑스의 지난해 재정적자는 1,540억 유로(약 224조원)로, 국내총생산(GDP)의 5.5%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4.8%에서 0.7%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정부 목표치(4.9%)도 훌쩍 웃도는 수치다. 지난해 국가 부채 비율도 GDP 대비 110.6%에 달했다. 팬데믹 당시 지원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에너지 보조금을 증액한 결과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실업급여 개편 등 긴축재정을 통해 2027년까지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2.7%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다만 개편안을 두고 노조는 물론 사용자 단체들도 반발하고 있어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드니 그라브유 노동총연맹(GCT) 위원장은 AFP에 “아탈 총리가 발표한 개편안은 내용도 문제고 방식도 문제”라며 “실업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비판했다. 마릴리즈 레옹 민주프랑스노동연맹(CFDT) 사무차장도 “실업수당 제도는 정부 예산 조정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사용자인 프랑스 전국경제인연합회(Medef)의 제오프루아 루 드 베지외 회장 역시 “기업의 고용을 막는 비효율적인 방안”이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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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의 쉼 없는 개혁 드라이브, 연금개혁 성공 이끌어

이번 실업급여 개편은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는 노동 개혁의 일환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한 이후 쉴 새 없이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부당 해고 시 지급하는 배상금 상한을 만들었으며, 제소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뿐만 아니라 노조의 근로조건 협상 권한도 축소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에도 개의치 않았다. 국민들의 시위와 총리 사임 희생까지 감내했다. 그 결과 40년 넘게 진행된 프랑스 연금개혁 역시 마크롱 대통령이 마침표를 찍게 됐다. 지난해 3월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프랑스 연금개혁안이 마침내 통과됐다. 연립 야당의 내각 불신임안이 부결됨에 따라 연금개혁법안이 발효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이는 지난 2019년 마크롱 대통령의 첫 개혁안 실패 이후 3년 3개월 만이다. 프랑스는 이에 앞서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60세로 정년을 5년 앞당기는 퇴행적 개혁 이후 연금 고갈이 가속화됐고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정년을 62세로 연장하는 ‘미완의 개혁’을 단행한 대가로 정계에서 물러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적자로 국가 재정이 도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정치생명까지 내걸고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프랑스가 더 이상 연금개혁을 늦출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민 불만이 높았지만, 연금개혁은 필요한 조치였다. 장기적으로 재정 적자가 심각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65세 이상 인구가 21%에 달하는 초고령화 사회에 이미 접어들었고, 지난해부터 적자로 돌아선 연금 재정의 적자폭은 2030년 19조원까지 확대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왔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8~2020년 프랑스가 매년 연금을 지급하느라 쓴 돈은 국내총생산(GDP)의 14.8%였다. 이는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그리스(15.7%), 이탈리아(15.4%)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개혁이 바꾼 프랑스 경제, 독일 대신 ‘유럽 성장 엔진’될까

마크롱표 개혁의 결실은 컸다. 프랑스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제고되자 외국 기업의 투자가 급증했다. 2018년 1월 메타, 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은 연구·개발(R&D) 센터 건립을 포함해 지난해까지 35억 유로(약 5조원)가량을 투자했고, 일본 도요타의 투자액도 3억 유로에 달했다. 또한 회계감사·컨설팅 업체 EY(언스트앤영)의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는 2019년부터 4년간 유럽 국가들 가운데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22년의 경우 프랑스로 모두 1,259건의 신규 투자가 들어오면서 전년 대비 3%의 증가율을 보이기도 했다. 노동개혁을 통해 고용률은 증가했고 실업률은 줄었다. 마크롱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13~2015년 64%대 머물던 고용률은 지난해 68.4%를 기록했고, 10%(2014~2015년)를 웃돌던 실업률은 지난해 말 7.5%까지 내려왔다. 41년 만에 최저치다.

프랑스의 개혁은 국가의 운명마저 뒤바꿨다. 원조 ‘유럽의 병자(the sick man of Europe)’로 취급받던 프랑스는 이제 유럽 경제의 모델로 꼽히고 있는 반면, ‘유럽의 성장 엔진’ 독일은 병자로 전락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프랑스는 0.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독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2%로, 유로존 평균을 깎아 먹는다. 두 나라의 격차는 지난해 더 크게 벌어졌다. 프랑스는 0.8% 성장했지만, 독일은 -0.3%로 침체에 빠지면서 주요 7개국(G7)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했다. 산업 구조의 차이에 더해 정부의 기업유치 정책의 성패가 상황을 역전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최근 “예전에는 프랑스가 경제 개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업률이 높아 ‘유럽의 병자’로 불렸지만 이젠 이 별칭이 터무니없게 보일 것”이라며 최근의 성장세에 주목했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겔의 아르민 스타인바흐 연구위원도 DW와의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집권 뒤 법인세 인하, 노동시장 자유화, 실업보험 개혁, 고통스러운 연금 개혁을 추진했고 이제 야심 찬 개혁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위스 매체 왓슨도 “마크롱 대통령은 1년에 한 번씩 외국 기업들을 베르사유궁전으로 초대한다”며 “작년 130억 유로(약 19조원)의 투자를 끌어왔고 화이자 노키아 액센추어 등에서 일자리 8,000개를 창출했다”고 했다. 유럽 최대 경제 강국인 독일의 경쟁성장률이 거듭 부양에 실패하는 가운데, 독일 내에서는 경쟁국인 프랑스처럼 개혁을 서둘렀어야 했다는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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